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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차 알뜰주유소, 입찰공고 났지만 끊이지 않는 ‘실효성’ 논란

중앙일보

입력

기름값을 내리겠다며 2012년 도입한 알뜰주유소를 놓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알뜰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할 사업자를 다시 모집한 게 계기가 됐다. 논란의 핵심은 알뜰주유소의 기름이 별로 알뜰하지 않다는 점과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개입이 오히려 시장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석유공사와 농협중앙회는 전국 1200여 개의 알뜰주유소에 휘발유와 경유를 공급할 사업자를 선정하는 입찰공고를 냈다고 4일 밝혔다. 올해 입찰공고는 석유공사와 정유업체의 신경전으로 계약만기를 불과 1달 앞두고서 발표됐다. 이번에도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사업자를 선정한다. 선정된 사업자는 오는 8월부터 2019년 8월까지 2년 동안 알뜰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한다.

 알뜰주유소는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이 “(국제유가는 내렸는데)기름값이 묘하다”는 말 한마디에 당시 지식경제부가 이듬해 도입한 정책이다. 당시 정부는 정유 산업의 부산물을 재가공하는 석유화학사의 기름을 재처리해 소비자 가격을 떨어뜨리는 구상을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물량이 턱없이 부족해 정유사를 참여시켰다. 알뜰주유소에는 법인세 10% 감면(초반 2년 한시)에 시설개선 비용도 3000만원까지 지원했다. 지난 2012년부터 올해까지 국고 지원 예산만 213억이 넘는다. 법인세 감면 등 세제 지원까지 합하면 1000억원 이상의 나랏돈이 들어갔다.

 규모로만 보면 알뜰주유소는 성장추세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5월 현재 알뜰주유소는 1174개로 도입 첫해인 2012년 884곳에 비해 많이 늘어났다. 전국 주유소 중 10%를 차지한다. 그러나 알뜰주유소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서울 도림동에 거주하는 최 모씨(35)는 “알뜰주유소를 이용하고 싶어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바쁠 때면 출퇴근 길에 비싼 택시도 타야 하는 마당에 알뜰주유소를 찾아다니느니 할인되는 제휴카드를 만드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에 설치된 알뜰주유소는 11곳으로 서울 소재 주유소의 2%에 불과하고 제주도가 17.3%로 가장 많다.

더 큰 화두는 과연 알뜰주유소가 알뜰하냐는 것이다.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올 5월 알뜰주유소의 휘발유 평균판매가(보통 휘발유 기준)는 L당 1454.3원으로 정유사 주유소의 1484.7원보다 30.4원 싸다. 자가상표(PB)주유소 평균가와 비교하면 4.7원밖에 싸지 않다.
경유는 오히려 PB주유소가 알뜰주유소보다 L당 1.2원이 더 쌌다. 소비자 입장에선 L당 50~400원 할인받는 정유사 제휴카드를 쓰는 게 나을 수 있다.
  알뜰주유소의 가격경쟁력이 점점 떨어지고 데에는 저유가 기조도 한 몫한다. 이를 증명하듯 자영알뜰주유소 수는 감소세고, 정부지원 예산도 2013년 64억7000만원에서 올해 6억4400만원으로 줄었다.

 공기업의 주유소 시장 진입이 시장 질서와 경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석유공사 관계자는 “그동안 진입장벽 높은 주유소 시장에서 정유재벌 4사가 과점을 하면서 판매가를 마음대로 해 왔는데 알뜰주유소가 생겨 일종의 기준가격을 제시하게 된 것”이라며 “대기업들도 땅짚고 헤엄치면서 부당이득을 보려는 마인드를 버려야한다”고 비판했다. 일반 주유소와 가격차이가 30~40원 밖에 나지 않는 데 대해선 “정유사가 판매가격을 많이 못 올렸으니 차이도 줄어든 것”이라며 “일반 주유소의 알뜰 주유소 전환을 더욱 독려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유업계는 “입찰에 참여하고 싶지 않아도 정부가 하는 사업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최저입찰 방식이어서 남는 게 별로 없다"고 주장한다. 수출을 하면 더 큰 이문을 남길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석유공사는 알뜰주유소 계약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다가 업계 반발로 기존 2년을 유지하기로 했다.
 김병배 공정거래실천모임 대표는 “정부가 직접 시장에 참여하기보다는 유통과정에서의 담합 감시, 석유 소매가격 공시제, 수입유류 유통확대 등 시장에서 소비자 선택권을 늘리는 방식으로 석유 가격을 조절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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