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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이런데 청년창업하라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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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양선희 논설위원

산나물 밥집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소녀방앗간’의 김가영(31) 이사는 청년창업시장에선 성공한 인물로 꼽힌다. 자신을 ‘농부’라고 소개하는 그는 이화여대 2학년 재학 중 갔던 농촌봉사활동에서 “30년간 농활 왔던 대학생들 중 농사짓는 사람은 하나도 없더라”는 동네 어르신의 말씀이 가슴에 남아 그 길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단다. 그러면서 동네 어르신들의 농산물도 팔아주었다. 이렇게 농사짓고 농산물을 팔아본 경험으로 회사를 차려 10년 만에 수십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농업회사를 키웠다.

비싼 임대료와 아이디어 베끼기 #청년 창업자 괴롭히는 시장환경

얼마전부턴 자신이 키운 농산물로 밥을 지어 파는 식당 소녀방앗간을 시작했다. 직접 만든 고추장·된장·간장·과일효소와 산나물 등을 소비자에게 체험시키고 상품을 팔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직영점이 10개로 늘었다. 또 ‘반듯한 경영’을 고민하는 젊은이답게 직원을 정규직으로만 뽑는다. 회사대표는 따로 두고 자신은 여전히 매달 반 이상을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면 표가 난단다. 그런 그에게 의례적으로 성공 노하우를 물었다가 돌아온 대답에 가슴이 쿵하고 떨어졌다.

“둔해야 한다. 맞아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무덤덤함, 반항보다 피하는 두려움이 힘이다.” 그가 덤덤하게 털어놓는 사업이야기엔 열정·패기 같은 교과서적 언어가 없었다. 그는 청년창업시장에서 열 중 여덟아홉이 실패하는 모습을 지켜봤단다. 그들에게 일어난 일은 그에게도 일어났는데 자신은 맞으면 아픔을 느끼기보다 빨리 피해 나가려는 무서움을 많이 타는 성격 덕분에 그저 고비를 넘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중 누구나 겪는 일상적 어려움은 이런 거다.

모든 창업자의 고민거리인 임대료. 지금도 그의 밥집은 중심상권으론 못 들어간다. 강남은 꿈도 못 꾸고, 중심상권 가까운 곳에 냈다가는 서둘러 철수하기에 바빴다. 서울의 외곽지역에서는 그나마 적자를 면하는 정도는 된단다. 프랜차이즈를 하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직영점을 해도 이익이 박한데, 가맹점주들은 어떻게 이익을 낼 수 있을지 답을 못 찾아 양심상 할 수 없다고 했다.

또 하나는 남의 상품을 금세 베끼는 업계 풍토. 실제로 우리 시장에선 대기업에서도 베끼는 걸 꺼리지 않다 보니 중소기업은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역시 몇 차례 당하고 나서야 한국 시장에서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됐단다. 이런 풍토에 반항하다 깨지면 직원들 생계도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차라리 해외시장으로 가자는 결론을 내렸단다. 지금 진출을 모색 중인 홍콩 시장을 보고, 그가 놀란 건 이런 거였다. “홍콩에선 남의 아이디어와 상품을 베끼는 게 나쁘다는 걸 아는 ‘상도의’ 같은 게 있더라.”

요즘 청년창업은 청년 일자리의 대안으로 꾸준히 권장된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청년창업펀드를 만들고, 청년창업을 지원한다는 각종 경진대회가 열리는 등 정부와 사회 각계의 지원도 다양하다. 그런 한편에선 ‘심각한 청년실업 상황에서 좋은 일자리 타령만 하고 창업은 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질책하는 기성세대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정부도 지원하고 사회도 열망하는데 약고 게으르고 패기가 없어 창업을 안 하거나 창업에 실패하는 것일까. 오히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우리의 암울한 시장환경, 지대(地代)추구형 자본주의와 베끼기가 만연한 약탈적 시장환경이 무통각증(無痛覺症) 청년이 아니고선 접근할 수 없도록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년창업이 활성화되는 시장을 만들려면 ‘돈과 격려의 말씀’에 앞서 우리 시장의 ‘상도의’부터 정돈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