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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약 조심 … 두 병원 처방약 한번에 먹고 응급실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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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달 9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청파노인복지관 1층 강당.

노인 약물 오·남용 실태 들여다보니 #이미 먹은 것 잊고 또 두 봉지 먹기도 #속쓰림·저혈당 쇼크 등 부작용 #전문가 “의사의 복용 지시 지켜야”

노인 30여 명이 약물 오·남용 예방 교육을 위해 모였다. 이날 강사로 나선 서기순(사진) 대한약사회 교육단장이 “약을 먹고 난 뒤 탈이 난 경우가 있나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한동안 서로 눈치를 살피다 한 명이 손을 들자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고혈압을 앓고 있는 문순기(69·여)씨는 “약을 두 번 먹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침에 약을 먹었는데 먹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또 하나를 먹었다는 것이다. 문씨는 “좀 지나니까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서 하루 종일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며 “이제는 약을 먹고는 이를 잊어버리고 또 먹는 걸 피하려고 먹은 약의 포장지를 식탁 위에 놓아둔다”고 말했다.

골다공증 환자 변정자(73·여)씨는 “4년간 골다공증 약을 먹었는데, 이 약이 식도 점막을 손상시켜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듣고는 의사에게 묻지도 않고 그냥 내가 약을 끊었다. 그런데 이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골밀도가 뚝 떨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변씨는 “그 일을 겪고 나서 다시는 약을 맘대로 중단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서 단장이 “골다공증 치료제는 위·식도 점막을 손상시킬 수 있지만 의사 지시대로 제대로만 먹으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노인들 사이에 약물 오·남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약은 많이 먹으면 좋다’는 잘못된 인식이 여전해 약을 많이 먹거나 잘못 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보건복지부가 2014년 실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의 89.2%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노인 한 명당 만성질환이 평균 2.6개가량 되고 평균 5.3개의 약을 먹는다. 이렇게 약을 많이 먹다 보니 오·남용이 빈번해져 약이 ‘독’이 되기도 한다.

고혈압·당뇨병을 앓는 정모(70)씨도 평소 약 먹는 걸 좋아했다. 용하다는 병원 두 곳에서 약을 처방받아 동시에 먹곤 했다. 그러다가 두 번이나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다. 원인은 약물 과다 복용에 의한 저혈당 쇼크였다. 정씨는 항상 기운이 없고 멍한 상태였는데 그게 약 때문인지 몰랐다고 한다. 가족도 정씨가 치매에 걸린 줄 착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어떤 약이든 두 개를 한꺼번에 먹을 때는 약 성분끼리 충돌해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13%, 7가지 이상 먹을 때는 82%나 된다(미국응급의학회지 발표 논문). 또 한림대성심병원이 2008년 노인복지관을 방문한 65세 이상 만성질환자 80명을 조사한 결과, 속쓰림·저혈당 등 약물 부작용을 경험한 사람이 14명이었다. 이들은 평균 11.8개의 약을 먹는데 부작용이 없는 환자(6.3개)의 두 배 가까이 됐다(대한가정의학회지 발표 논문).

윤종률 한림대동탄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나이가 들면 체내 수분이 줄고 간·신장 등 장기 기능이 떨어져 약을 잘 해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약을 많이 먹는 경우도 문제지만 앞의 변씨 사례처럼 의사와 상의 없이 임의로 끊는 것도 병의 원인이 된다. 전립샘비대증 환자 백모(80)씨는 “약을 먹는 게 너무 귀찮아서 한동안 안 먹었더니 화장실을 더 자주 가야 해서 불편했다”며 “약을 안 먹는 사이에 병이 악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연고는 3개월 지나면 버리는 게 좋아

집 서랍에 들어 있는 오래된 연고를 잘못 쓰는 것도 위험하다. 최헌수 대한약사회 홍보실장은 “연고는 오염 우려가 있어 개봉한 뒤 3개월 이상 지나면 버려야 한다. 약 포장지를 버리지 말고 보관했다가 또 멍이 들면 약국에서 사용해도 좋은지 물어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냉장고에 약 보관 땐 습기 탓 변질 가능

대한약사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약을 나눠 먹는 사례도 적지 않다. 증상이 비슷하다고 자신이 먹는 약을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다른 사람의 약을 얻어먹는 것이다. 한림대 윤 교수는 “같은 고지혈증이라 하더라도 환자의 체중·키에 따라 약의 용량을 다르게 써야 하고 간·신장 상태도 고려하는 등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예컨대 와피린이라는 항응고제는 개인에 따라 용량이 최대 열 배 가까이 차이 난다. 본인에게 맞지 않는 용량의 약을 먹으면 자칫 몸속에 혈전이 생기고 이것이 혈액을 따라 순환하다 중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서기순 단장은 “한꺼번에 2회분을 먹는다고 효과가 두 배가 되는 게 아니라 부작용만 커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약에 날짜를 크게 써놓거나 양면테이프로 달력에 약봉지를 붙여두면 제때 약을 챙겨먹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약 보관도 주의해야 한다. 약이 상할 수 있다는 생각에 냉장고에 보관하면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냉장고는 습도가 높은데 약에 습기가 차면 곰팡이·침전물이 생기고 성분이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은 직사광선이 없고 바람이 잘 통하는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다만 안약이나 당뇨병 치료에 쓰는 인슐린 주사는 냉장 보관해야 한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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