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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무비] 애니메이션을 덧입은 학살의 기억 '바시르와 왈츠를'

중앙일보

입력

바시르와 왈츠를

감독 아리 폴만 장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제작연도 2008

'바시르와 왈츠를'의 한 장면.

'바시르와 왈츠를'의 한 장면.

작품을 만들 때 형식적 고민을 건너뛰는 아티스트는 없을 것이다. 그들에겐 ‘무엇을 말하는가’ 만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도 중요하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은 첫눈에 나를 강렬하게 매료시켰다. 1982년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살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기에, 애니메이션만큼 이상적인 수단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시르와 왈츠를'의 한 장면.

'바시르와 왈츠를'의 한 장면.

이스라엘 감독 아리 폴만(54)의 자전적 이야기다. 영화감독 아리(아리 폴만)는 26마리의 개떼에게 쫓기는 악몽을 반복해서 꾸는 옛 친구를 찾아간다. 꿈속의 개들은 친구가 20년 전 군 작전을 수행하며 사살했던 경비견들이다. 이를 통해 아리는 1980년대 초 레바논 내전 당시 군 시절을 돌이켜 보지만, 어쩐 일인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사라진 기억을 찾는 과정을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당시 전우들과 기자들을 만나 퍼즐을 맞춰간다.

'바시르와 왈츠를'의 한 장면.

'바시르와 왈츠를'의 한 장면.

이 작품은 본래 실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질 운명이었다. 하지만 폴만 감독은 실사 영상 위에 그림을 덧그려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하는 로토스코핑(Rotoscoping) 기법을 선택했다. 영화는 출연자의 기억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전쟁의 참상과 군인들의 후유증을 사실적이면서 몽환적인 이미지로 직조한다. 마지막 장면, 당신은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의 모호한 경계를 처절하게 찢어발기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목격할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여전히 스크린 안에 남아 쌓이고 있다.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바시르와 왈츠를'의 한 장면.

'바시르와 왈츠를'의 한 장면.

무비 TIP 전장의 참담한 살풍경에 흐르는 바흐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라르고’와 쇼팽의 왈츠 7번. 오래도록 잊기 힘든 정경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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