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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0% 예술 종사, 면적 20%는 숲·녹지, 실험에 굶주린듯 실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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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호 14면

[르포] 크리에이티브 베를린<3> 예술 도시의 원동력은

하우스 슈바르첸베르크의 대안예술.

하우스 슈바르첸베르크의 대안예술.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과 최고 예술가상 모두 독일관과 독일 작가에게 돌아갔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작가들이 그 주역이어서 세계 예술계는 깜짝 놀랐다. 어둡고 투박한 인상이 짙었던 도시가 어떻게 최고의 창의력 기지로 변신하게 됐을까?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주요 상 #베를린 활동 작가에게 돌아가 #포츠담 광장 주변은 건축 경연장 #거리는 온통 그래피티 캔버스 #국적·나이 안 가리고 마음껏 활동 #예술의 최전선에 사람·자본 몰려

그 비결은 20%라는 숫자에서 찾아야 한다. 크리에이티브 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두터운 예술 인력을 말한다. 베를린 인구가 350만 명인데, 약 20%에 달하는 70만 명 이상의 인구가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즉 시민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창의적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도시에는 3개의 오페라하우스, 50여 개의 연극극장, 170여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 600여 곳에 이르는 상업용 갤러리, 베를린 영화제와 130여 개의 극장이 있지만 이들은 크리에이티브 경제의 일부일 뿐이다.

녹지는 창의력 키우는 정신적 공간

20%는 베를린을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어 주는 마력의 숫자다. 도시 전체 면적에서 숲과 녹지가 차지하는 비율 역시 약 20%다. 짙은 숲과 그림 같은 호수에 홀려 자칫 미로에 빠지기 쉬운 티어가르텐. 2014년 새로 오픈해 독일조경건축대상을 받은 글라이스드라이에크(Gleisdreieck)공원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녹지 공간이 도심 속 건강한 허파 기능을 담당하고 더 나아가 창의력을 키우는 정신적 공간 역할도 한다고 그들은 믿는다. 베를린 정부가 정책의 최우선을 바로 ‘20% 확보’에 두고 있는 이유다. 푸른 숲과 문화, 예술은 때로는 개별적으로, 때로는 상호작용하면서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명성과 부를 가져다주고 있다.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포츠담 광장의 건축물.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포츠담 광장의 건축물.

포츠담 광장 주변은 렌초 피아노, 한스 콜호프, 노만 포스터, 리처드 로저스, 렘 쿨하스 등 이름 하나하나가 하나의 전설이 되어 버린 건축가들이 각각 자신의 명성을 걸고 실력을 겨루고 있는 현대 건축의 오픈 경연장이다. 최근 클래식 음악 연주장인 ‘피에르 불레즈 홀’의 실내 건축을 설계한 거장 프랭크 게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최고 작품은 바로 당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훌륭하게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 자신을 표현하다 보면 당신은 당신 예술의 유일한 전문가가가 될 수 있다.”

그렇다. 매력이 있으려면 남과 다른 자신만의 특징을 표현해야 한다. 미로를 헤매봐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사람이건 도시건 마찬가지다. 베를린이란 도시는 마치 예술의 혁신과 실험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 같다. 기차역을 현대미술관으로 변모시킨 함부르크 반호프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이곳에서는 국적과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더 젊고 이름이 덜 알려져 있던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로 하여금 유대박물관의 설계를 맡겼다. 자유베를린대의 언어학 도서관 건물을 영국 출신 노먼 포스터에게 맡겨 ‘두뇌’라는 별명의 멋진 작품을 얻게 만든 것도 좋은 예다. 베를린은 2006년 유네스코에 의해 ‘디자인 도시’에 선정돼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도시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건축학도들뿐 아니라 예술·디자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필수 견학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다섯 개의 거대한 박물관이 몰려 있는 박물관섬(Museum Insel)은 분명 귀중한 보물이지만 문화와 예술은 박물관 안에만 갇혀 있지 않다. 한 도시의 진정한 매력을 알고자 한다면 겉이 아니라 속을 봐야 한다. 마치 양파를 까듯 건물 안에 또 다른 건물과 중정(中庭)이 나오는 특이한 건물 하케셰 회페가 대표적 사례다. 개성 있는 공방과 세련된 카페들로 연중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인데, 나란히 있는 ‘하우스 슈바르첸베르크’는 대안 문화의 중심지다.

베를린은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아픔과 상처까지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피티 예술가들에게 스트리트 아트의 오픈 캔버스로 허용한 곳이다. 마치 미술관이 거리로 나온 듯, 아니 미술이 폭발하는 듯하다.

“베를린은 유일무이한 곳이다. 이 도시는 기득권 의식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나치 시대 방공호를 ‘벙커’라는 이름의 혁신적인 아방가르드 갤러리로 변모시킨 수집가 크리스티안 보로스의 말이다. 그는 과거 서독 지역에서 사업을 하던 사람이고 그 스스로가 사업적으로 성공한 기득권층의 한 명이지만 그 도시가 주는 매력에 빠져 자신이 몇십 년 동안 수집한 작품들과 함께 거주지도 벙커 옥상으로 옮겼다. 저명한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최근 슈타츠오페라의 음악감독 다니엘 바렌보임과 함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전혀 새로운 시도다. 마치 실험에 굶주린 듯 도시 전체가 끝없는 실험을 하고 있다.

아트바젤에 베를린 갤러리 30개 참여

유대인 박물관의 나치 희생자를 형상화한 빈공간. [사진 손관승]

유대인 박물관의 나치 희생자를 형상화한 빈공간. [사진 손관승]

박물관섬 뒤편, 황금색 쿠폴라로 빛나는 유대인 성전인 시나고그 뒷골목에 아우구스트 슈트라세와 리니엔 슈트라세가 있다. 세계 미술 컬렉터들이 주목하는 갤러리 거리다. 베를리날레를 이끌고 있는 ‘KW(Kunstwerk·독일어로 작품이라는 의미)’, 그 옆에 나란히 위치한 ‘me(Moving Energy)’는 이 지역을 이끄는 양대 기둥이다. 2009년 ‘안도(Aando)’라는 이름의 갤러리를 오픈한 변원경 대표는 이곳이 지닌 위치적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세계적인 박물관섬 뒤에 위치해 있다는 공간적인 위치, 독일뿐 아니라 유럽 더 나아가 미국의 굵직굵직한 컬렉터들이 몰려든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겠죠. 세계 최대의 아트페어인 아트바젤에 베를린 한 도시에서만 30개 정도의 갤러리가 참여합니다. 한국 전체에서 한두 곳의 갤러리가 참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대단한 규모지요. 뉴욕이나 런던이 물론 유명하지만 그곳은 거래는 활발한 데 비해 예술의 생산이 적은 곳입니다. 반면에 이곳은 양질의 작품이 생산되고 있으니 감히 현대미술의 메카라 말씀드릴 수 있어요.”

막다른 골목이 때로는 최고의 최전선이 되기도 하던가. 장벽에 의해 막혀 있던 도시 베를린은 이제 예술의 최전선이 됐다. 실험적 공기 속에서 시민들은 자연스레 꿈의 폐활량이 커지고 영감을 받는다. 사람을 꿈꾸게 하고 설레게 만드는 곳에 자연스레 젊은 피와 새로운 정신, 그리고 새로운 자본이 몰리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정신은 곧 최고의 연금술사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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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손관승 자유기고가 ceonomad@gmail.com
MBC 베를린 특파원을 역임한 언론인 출신. iMBC 대표이사와 세한대 교수를 지냈으며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그림형제의 길』 등 독일을 무대로 다수의 책을 쓴 저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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