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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맑고 원숙한 ‘미국의 목소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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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호 06면

‘미국의 목소리’로 불리는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Renee Fleming)이 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15년 만에 두 번째 내한공연을 갖는다. 플레밍은 피아니스트 하르트무트 휠의 반주로 프랑스 가곡(포레 ‘만돌린’ 생상스 ‘저녁 바다’), 브람스 리트(‘달은 산 위에서부터’ ‘허무한 세레나데’), 뮤지컬 넘버(‘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 ‘아이 필 프리티’), 이탈리아 아리아(푸치니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레온카발로 ‘아침의 노래’)를 선보인다. 2시간 동안 플레밍의 불어-독어-영어-이탈리아어 딕션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체코에서 이민 온 조부모의 영향으로 플레밍은 드보르자크 오페라에도 능하다.

15년 만에 내한공연하는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1959년 인디애나 태생의 플레밍은 2016/17 시즌 오페라 전막 은퇴 루머에 시달렸다. 뉴욕타임스가 “메트 오페라 ‘장미의 기사’를 끝으로 플레밍이 오페라 전막에서 물러난다”고 보도하자 플레밍은 “단지 마르샬린 역에서 내려오는 이야기가 과장됐다”고 미국 공영라디오 NPR에 인터뷰했다. 플레밍이 우상으로 삼는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1915~2006)도 같은 배역으로 쉰여섯에 오페라 전막을 은퇴했으니 세간의 의심은 자연스럽지만, 플레밍은 현역 연장의 의지가 강하다. 90년대 초반 메트를 함께 호령한 소프라노 실비아 맥네어(56년생)와 던 업쇼(60년생)는 이미 10년 전 클래식 무대를 등졌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플레밍의 미국 내 대중적 인지도는 더욱 강화됐다. 2014년 슈퍼볼 결승전에서 미국 국가를 부른 게 결정적이었다. 지난 5월 메트 ‘장미의 기사’가 끝나자 미국 정부는 워싱턴DC에서 열린 전쟁기념일 전몰자 행사에 플레밍을 불렀고, 여전히 탄력적인 그녀의 목소리가 PBS를 통해 미 전역에 중계됐다. 메트 오페라 영화 극장판인 ‘메트 HD 라이브’에서 진행을 맡을 만큼 매너와 화술이 뛰어난 그다.

두 번째 내한을 앞두고 플레밍은 “한국에 다시 오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푸념했다. 2000년대는 플레밍이 가정사를 정리하는 동시에, 무거운 목소리를 요구하는 드라마틱 배역을 지양하고 리릭 음역에 자신의 목소리를 최적화하던 시기였다. 재혼과 동시에 맞이한 2010년대는 정신적 안정과 함께 필라테스를 통해 가꾼 날렵한 몸매를 오페라 전막 무대와 영상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도 미국과 유럽 메이저 악단이 말러 교향곡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가곡을 선곡할 때 플레밍은 최고의 흥행 카드다. 본인이 밝히는 목소리 음역은 풀리릭이지만 흑인 가스펠과 뮤지컬 넘버를 통해서도 미국 음악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보통 요나스 카우프만, 안나 네트렙코처럼 메트를 대표하는 성악가의 단독 공연을 오케스트라 반주로 유치하려면 보통 3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든다. 티켓가를 평균 15만원으로 잡고 2000석을 판매해야 적자를 면하니 보통 전성기를 내려오는 성악가들이 개런티를 낮출 때 한국과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플레밍의 티켓 판매는 공연 비수기임에도 호조를 보여 2000석 판매를 목전에 두고 있다. 남은 건 목소리의 상태다.

2017년의 플레밍의 목소리를 지난 3월 도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도밍고와 함께 한 듀오 무대에서 본 플레밍의 소리에 노쇠함은 전혀 없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그즈음 예정된 거의 모든 클래식 방일 공연에 톱스타들이 출연을 취소할 때, 플레밍은 일본으로 건너와 노래로 위로를 전했다. “결혼 생활과 성악가의 투어 스케줄이 양립하기 어렵다”면서 어린 성악가에게 “연인이 보고 싶다면 과감히 사랑을 선택하라”는 디바는 흔치 않았다. 경험과 학식을 갖춘 선량한 미국인이 전하는 무대는 그래서 앙코르 끝곡까지 집중해서 경청할 필요가 있다. 박수가 지속된다면 플레밍 그녀 자신의 인생을 노래하는 드로브자크 ‘루살카’ 중 ‘달에게 부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글 한정호 공연 평론가 imbreeze@naver.com,  사진  DE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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