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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中 단둥은행 조치, 12년 전 ‘BDA 제재’ 효과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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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재무부가 29일(현지시간) 중국 단둥은행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해 미 금융시스템으로의 접근을 막는 조치를 내렸다. 2005년 9월 북한과 거래했던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에 가했던 제재와 유사하다. 당시 BDA 제재는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위력을 발휘했다. 따라서 이번 미국의 조치가 어떤 효과를 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시 北 2500만 달러 마카오 BDA에 동결 # 해외자금줄 막혀 통치자금 조달 비상 # 당시 김계관 부상 “피가 얼어붙는 느낌” # 전문가 “BDA 제재 결국 흐지부지, 교훈 삼아야” #

12년 전 미국은 애국법 제311조에 근거해 BDA를 북한의 불법자금 세탁과 연루된 우려대상으로 지정했다. 당시 미 재무부는 “북한 당국이 100달러 짜리 위조지폐(수퍼노트) 유통과 돈 세탁을 위해 BDA를 이용한 혐의가 있다”며 “이 자금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통치 자금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2005년 미 재무부가 `돈세탁 은행`으로 지정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전경. [마카오=연합뉴스]

2005년 미 재무부가 `돈세탁 은행`으로 지정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전경. [마카오=연합뉴스]

사실 BDA는 마카오 내 6위 정도의 소규모 은행으로 국제적으로 알려진 금융기관이 아니었다. 하지만 BDA 제재에 따른 파급력은 강력했다. 미 재무부가 BDA에 예치된 북한 자금을 동결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는데도 북한과 거래하던 무역국들과 업체들은 관계를 끊었다. 북한의 해외자금 거래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달러 유입 급감뿐 아니라 자금 이동 조차 쉽지 않았다. 북한의 거래처들이 미 재무부 조사 리스트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차관은 “BDA가 북한과 불법거래하는 은행이라는 신호만 던져줬는데 시장이 알아서 움직였다”고 말했다. ‘살계경후(殺鷄儆猴ㆍ닭을 죽여 원숭이를 가르친다)’라는 중국 고사성어가 딱 들어맞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실제 북한 계좌 동결 조치는 미국의 제재 이후 마카오 당국에 의해 이뤄졌다. BDA의 파산을 우려한 예금자들의 대규모 인출 사태가 발생하자 마카오는 2005년 9월 30일 예금 동결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BDA가 관리하던 북한 관련 계좌 52개에 있는 2500만 달러도 동결됐다.

북한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BDA 문제를 해결하라”며 9ㆍ19 공동성명 이행을 거부했다. 2006년 7월에는 미사일 시험발사를, 10월에는 1차 핵실험을 실시하는 등 벼랑끝 전술로 맞섰다. 북한이 그만큼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 반증이다. 당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BDA 제재 2년이 흐르고 대북 관계에서 우위를 확보했다고 판단한 미국은 북한이 요구한 2500만 달러 송금을 허용했다. 푼돈을 풀어주면서 북한에 대해 강력한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 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BDA 사태 때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맡았던 크리스토퍼 힐.

BDA 사태 때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맡았던 크리스토퍼 힐.

그러나 BDA에 예치된 2500만 달러를 북한에 보내는 절차도 문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미 국무부와 재무부가 대립하기도 했다. 제재를 해놓고 이를 번복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이 재무부 측에선 탐탁치 않았다. 특히 국제적 신인도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사안이었다. 당시 미 재무부의 한 인사는 “중국에 북한 돈 2500만 달러 송금과 관련해 도와달라고 하니, ‘협박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도와달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하더라”며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6자 회담 재개를 강력히 원했던 국무부에서는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가 직접 나서 송금 문제를 해결했다. 결국 자금은 BDA→마카오 중앙은행→뉴욕 연방준비은행→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상업은행을 거쳐 북한으로 넘어갔다.

전문가들은 “이번 단둥은행 제재는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자 북한에 대한 압박”이라고 분석하면서도 “BDA 제재가 결국 북한의 핵포기로 이어지지 못하게 된 과정을 면밀히 살펴 교훈을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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