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망막 국내 첫 이식 … 실명 50대 “사람 알아봐”

중앙일보

입력 2017.06.30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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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내 첫 인공망막 이식수술을 받은 이화정씨(왼쪽)와 수술을 집도한 윤영희 서울아산병원 교수. 이씨는 10년 만에 시력을 찾았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국내 첫 인공망막 이식수술을 받은 이화정씨(왼쪽)와 수술을 집도한 윤영희 서울아산병원 교수. 이씨는 10년 만에 시력을 찾았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수술 전에는 손으로 일일이 물건을 만져서 구분했어요. 물건의 위치가 바뀌면 못 찾았습니다. 지금은 물건의 형태를 어렴풋이 볼 수 있기 때문에 휴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망막색소변성으로 10년 전 시력 상실
수신기·칩 이식해 시각정보 인식
개그맨 이동우 등 국내 환자 1만명
수술비 2억 … 미국 등선 230건 시행

유전병(망막색소변성)으로 실명했다 극적으로 시력을 일부 회복한 이화정(54·여·서울 동대문구)씨는 29일 통화에서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이씨는 “만지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생활이 바뀌었다”며 “바깥에서 혼자 독립적으로 거동하기가 아직 힘들지만 집 안에서 혼자서 하는 일상생활의 범위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윤영희 서울아산병원 안과 교수의 집도로 지난달 26일 인공망막 이식수술을 받았고, 한 달여 만에 시력을 다소나마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이 수술은 미국·유럽·중동 등지에서 230여 건이 시행됐고, 국내에선 이번이 처음이다.

이씨는 수술 직전엔 눈앞의 강한 빛을 희미하게 감지하는 정도였다. 혼자 생활하는 게 불가능해 하루 24시간 남편이 옆에서 도와야 했다. 이랬던 이씨가 앞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지금은 도로에 자동차가 지나가는지, 앞에 사람이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게 됐다. 29일 시력검사에서 0.03으로 측정됐다.

“시력판의 큰 글씨를 다시 읽게 됐을 때 온몸에 전율이 흘렀어요. 딸이 결혼할 때 제가 부축받지 않고 단상 위를 걸어가 화촉을 밝히고 싶어요.”

이씨는 29일 서울아산병원 외래 진료를 받으러 와서 “교수님! 머리 묶으셨어요”라고 물어 머리를 묶고 진료하던 윤 교수를 놀라게 했다. 이씨에게 시력에 이상이 생긴 건 20년 전이다. 어두운 곳에서 길이 잘 안 보였으며, 점차 주변이 흐릿하게 보이고 시야가 좁아져 2007년 시력을 잃었다. 4000명당 1명꼴로 생기며 국내에선 이 질환 환자가 약 1만 명이다. 개그맨으로 활동하다 시력을 잃은 이동우씨가 대표적이다.

의료진은 수술을 위해 환자의 망막에 수신기·칩 등을 이식한다. 환자는 안경과 비슷하게 생긴 장치를 쓴다. 이 장치엔 카메라와 특수 컴퓨터가 달려 있다. 이 장치가 인식한 시각정보가 망막에 이식한 수신기로 보내져 시각중추로 전달된다. 그럼 환자는 카메라로 촬영된 시각정보를 인식하게 된다. 윤 교수는 “첫 수술이라 5시간 정도 걸렸다. 세계적으로 보고된 수술 성공률은 80~90%”라고 말했다. 이씨는 앞으로 20여 차례 재활훈련을 받게 된다. 시력을 최대 0.1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윤 교수는 “망막색소변성은 시세포가 점차 소멸되는 병이라 약물치료가 안 된다. 망막은 각막처럼 장기 이식을 하기에는 불가능한 신경조직”이라며 “현재 인공망막(아르구스2) 이식만 치료법으로 허가가 났다”고 말했다.

이 수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며 약 2억원이 든다. 수술은 후원을 받아 가능했다. 윤 교수는 “망막색소변성 환자들은 시력을 완전히 잃은 뒤에는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제 망막 이식수술이 성공한 만큼 병원을 찾아 치료 가능성을 상담해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성공으로 국내 환자 1만 명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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