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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공간 찬물 냉방, 1위 미국에 LG 도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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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신세계가 지난해 9월 경기도 하남에 문을 연 복합쇼핑몰 ‘스타필드’는 연면적이 15만6000㎡에 달한다. 축구장 25개쯤 되는 거대한 실내 공간이다. 요즘처럼 더운 날에도 스타필드에 들어서면 시원하다. 이렇게 넓은 실내 공간에 냉방을 하려다 보니 기존 에어컨과는 전혀 다른 원리의 냉방이 시도됐다.

LG전자 평택 칠러공장 가보니 #파이프 속 찬물 이용해 온도 조절 #1대 무게 50t, 크레인 동원해 제작 #중동 발전소·공항시설 잇단 수주

해답은 ‘칠러’에 있다. 칠러는 상온의 물을 섭씨 6~7도 정도로 차갑게 만드는 기계를 말한다. 대개 지하에 설치되는데, 칠러가 만든 찬물이 파이프를 타고 구조물 천장 곳곳을 돌고 여기에 팬을 틀면 찬바람이 생성되면서 냉방이 된다. 찬 공기를 내보내는 동안 뜨거워진 열기는 옥외에 설치된 냉각탑을 통해 배출된다. 칠러는 찬물을 냉매로 쓴다는 점에서 프레온 가스를 주로 쓰는 시스템 에어컨과는 구별된다.

지난 27일 경기도 평택에 있는 LG전자 칠러 공장에서 한 직원이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LG전자]

지난 27일 경기도 평택에 있는 LG전자 칠러 공장에서 한 직원이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 LG전자]

넓은 공간을 한번에 냉방하는 데는 칠러가, 내부가 여러 개의 작은 공간으로 쪼개져 있어 각 공간 별로 냉방 관리를 따로 해야 할 경우에는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스타필드에 들어간 칠러는 LG전자가 만들었다. 칠러 제작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27일 LG전자 평택 칠러공장을 찾았다.

칠러 생산동에 들어서자 조선소에서나 볼 수 있는 주황색 대형 크레인 10여기가 나란히 줄지어 선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칠러는 냉각기, 열교환기 등이 제조 공정을 거치며 결합돼 거대한 제품으로 완성되는데 완제품에 가까워질수록 무게가 급속도로 늘어난다. 일부 대용량 제품의 경우 무게가 50t에 달한다. 인력으로는 옮길 수가 없어 크레인을 공장 내부에 들인 것이다. 실제 이곳에선 생산 라인을 조선소와 마찬가지로 ‘베이(bay)’라 부른다. 크레인 5개가 한 세트가 돼 칠러를 생산한다. 평택 칠러공장 생산동은 축구장 4개 정도 넓이에 5개의 생산 구역이 들어서 있다.

LG전자가 칠러 사업에 뛰어든 건 2011년 LS엠트론의 공조사업부를 인수하면서다. LG전자 H&A본부 칠러개발1팀 황윤제 연구위원은 “LG전자는 1968년 국내 최초로 에어컨을 출시하면서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부문에서 50여년간 에어솔루션 역량을 축적해 왔다”며 “칠러 사업에 뛰어들면서 B2C를 넘어 B2B(기업간 거래)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단순 냉방 기술을 넘어 최적의 공조 환경을 제공하는 업체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구조물이나 건물 지하에 설치되는 칠러 제품. 칠러는 상온의 물을 차가운 물로 바꾼다. 이 물이 파이프를 통해 건물 천장으로 가면 팬이 이를 활용해 찬바람을 실내로 보낸다. [사진 LG전자]

대형 구조물이나 건물 지하에 설치되는 칠러 제품. 칠러는 상온의 물을 차가운 물로 바꾼다. 이 물이 파이프를 통해 건물 천장으로 가면 팬이 이를 활용해 찬바람을 실내로 보낸다. [사진 LG전자]

칠러는 100% 주문 제작형 제품이다. 대형 건물, 병원, 발전소 같은 고객의 현장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현장을 보고, 지하 어느 위치에 어떤 크기의 칠러를 넣을지 따져보고 맞춤 제작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평택 칠러공장에선 여러 공정이 하나의 라인에서 이뤄지는 컨베이어벨트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주문 받은 제품 하나를 놓고 숙련도 높은 작업자들이 달라 붙어 완성때까지 전체 공정을 책임지는 셀(Cell) 방식으로 일한다.

칠러는 제품 만큼이나 시장도 독특하다. 장비가 크고 내구성 있는 제품이어서 고객들이 건물을 리노베이션 할 때 새로운 업체나 새로운 브랜드로 교체하지 않고 기존의 믿을 만한 업체를 고수하는 특성이 있다. 트레인·요크·캐리어 등 미국의 빅3가 전세계 50% 이상을 장악할 정도로 견고한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시장 규모는 140억 달러로 청소기 시장과 비슷하다.

LG전자는 지난해 칠러사업에서만 3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와 해외 매출 비중은 5대5 가량이다. 국내에서는 시장의 40%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 1위이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점유율이 미미하다. 시장 확장의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칠러사업부문 해외영업담당 이상민 상무는 “전주에 있던 칠러 공장을 지난해 11월 평택으로 확장 이전한 뒤 연구·개발(R&D)에 거액을 투입했다”며 “최근 기술력이 크게 향상돼 해외 유수업체들과 수주 경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 올들어 해외에서 ‘수주 낭보’가 이어졌다. 1년 내내 더운 곳이어서 시장이 가장 크다는 중동에서 성과가 먼저 나타났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대규모 상업지구 수크와산빌리지의 냉방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앞서 아랍에미리트 원자력발전소, 사우디아라비야 쿠라야발전소에도 LG전자의 칠러가 들어갔다. 발전소의 터빈을 돌리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공기를 넣어 줘야 하는데 유입 공기의 온도가 높으면 터빈의 효율이 낮아진다. 차가운 공기를 넣어야 발전 효율이 높은데 여기에 LG전자의 칠러가 공급된 것이다. 이 밖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청사, 킹칼리드 국제공항의 냉방 시설도 입찰 경쟁 끝에 LG전자가 따냈다.

LG전자는 중동에 이어 동남아 시장 공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상민 상무는 “동남아는 LG전자에 대한 브랜드 신뢰도가 높은 데다 근거리여서 기술지원과 협력에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든다”며 “이곳에 진출하는 한국 건설업체들과 손을 잡고 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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