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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윤리위,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자 징계" 권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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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한 진상조사 내용을 심의해 온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위원장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가 27일 관련자 징계와 제도 개선을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권고했다.

윤리위는 이날 4차 회의 끝에 심의 의견을 내놨다. 윤리위는 “이규진(55·사법연수원 18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징계 청구 등에 상응하는 조치를, 고영한(62·11기)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에 대해서는 주의 촉구 등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 [사진 대법원 홈페이지]

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 [사진 대법원 홈페이지]

윤리위는 앞서 진행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의 조사에서 드러난 법원행정처의 업무처리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사법행정에 법관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제도 개선도 주문했다.

이날 윤리위의 의견은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가 적정했다는 의미라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윤리위는 논란이 된 법원행정처의 판사들에 대한 부당한 지시와 간섭 사실을 인정했다. 지난 2월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이었던 이 부장판사가 임종헌(58·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아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공동학술대회를 견제하기 위해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조치를 시행하고, 법원행정처로 발령이 난 이모 판사에게 연구회와 관련한 압박을 가했다는 것이다. 윤리위는 “이 부장판사의 이런 행위가 법관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법원행정처장이었던 고 대법관은 관리감독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게 윤리위의 심의 결과다. 앞선 진상조사에서 고 대법관은 행정처의 주요 간부들로부터 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대응 방안 등을 보고 받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고 대법관은 진상조사 결과가 나온 뒤인 지난 5월 행정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외부인이 참여하는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윤리위는 법적 강제력은 없다. 그러나 그동안 대법원장이 윤리위 권고를 모두 수용하는 등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위원 명단은 공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양 대법원장도 윤리위 권고를 따를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전망이다. 이 부장판사에게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 연기와 축소 압박 등을 지시한 것으로 나타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난 3월 퇴직해 징계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윤리위의 심의 결과에 대한 법원 내부의 의견은 엇갈렸다. 일부 판사들은 “진상조사 결과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결의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규명,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책임자 및 실행에 참여한 사법행정 담당자 문책 요구와 관련된 부분은 언급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이 남용됐다면 의사결정권자 외에 이를 실행한 실무자에게도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법원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고 제도 개선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수도권의 한 지법 부장판사는 "중립적인 조사위와 윤리위의 의견을 모두 무시하는 건 국민에게 독선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번 사태의 교훈을 토대로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사법제도의 개선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7일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 대법원장이 27일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진상조사위와 윤리위 심의를 기다리며 논란에 대한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던 양 대법원장은 이번 주 안에 입장을 내놓을 전망이다. 법원 내부에선 법관대표회의에서 제시된 요구 사항에 대한 의견도 제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음달 24일에 전국법관대표회의 2차 회의가 열린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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