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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종이통장 없애도 괜찮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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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Q. 9월부터 은행들이 종이통장을 없앤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금융당국과 은행은 종이통장을 왜 굳이 없애려고 하나요. 종이통장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어르신들도 많던데, 종이통장이 폐지되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은 혹시 없을까요.

ATM·인터넷거래 늘며 효용 떨어져 #통장 1개 5000원 넘는 비용도 부담 #미국·영국 2000년 이후 발급 안해 #중국도 고객이 요청해야 통장 줘 #9월부터 신규계좌 열 땐 통장 없어 #60세 이상 고객은 만들어 주기로

예금액 안 찍혀서 불안? 백업·조회시스템 더 안전하대요"

A. 여러분은 은행 창구에 가서 입출금통장을 만들어 본 적 있나요. 보통 14세 이상이면 부모와 함께 가지 않아도 입출금통장을 만들 수 있답니다. 사진과 생년월일을 확인할 수 있는 학생증 같은 신분증, 주민등록등본과 함께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기 위한 증빙서류(휴대전화 요금 고지서 등)를 챙겨서 가면 됩니다. 인감 또는 본인 서명이 필요한데, 대부분 은행에서 인감을 서명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 입출금통장 계좌를 개설해서 종이통장을 발급받으면 은행에 얼마의 수수료를 내야 할까요?

옛 한성은행이 발급한 책자 형태의 종이통장.[사진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

옛 한성은행이 발급한 책자 형태의 종이통장.[사진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

수수료는 한 푼도 없습니다. 공짜입니다. 종이통장 1개당 제작 원가가 300원 정도라고 하는데, 그냥 줍니다. 은행과 거래를 시작한데 대한 일종의 서비스인 셈입니다. 통장 제작 원가만이 아니라 인건비와 관리비까지 계산하면 종이통장 하나를 발급하는데 은행이 드는 비용은 5000~1만8000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매년 새로 만들어지는 종이통장 개수가 연 3000만 개가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비용입니다.

계좌를 만들면 종이통장을 준다, 그것도 공짜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관행입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원을 따져보니 국내 최초의 상업은행인 한성은행이 1897년(고종 34년)이 설립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과거엔 종이통장이 아니면 본인 계좌에 돈이 얼마가 있는지, 거래내용이 어떤지를 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었으니 종이통장을 발급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은행에서 종이통장을 만들어줘도 실제 이것을 꺼내보는 사람이 드뭅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뱅킹으로 거래 내역이나 잔액을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입출금이나 계좌이체 같은 금융거래도 창구에서보다 인터넷·모바일뱅킹, 자동화기기(ATM)을 통해 대부분 이뤄집니다.

게다가 요즘엔 아예 온라인으로 가입하는 온라인 전용 금융상품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가입하니까 당연히 종이통장은 처음부터 발급되지 않습니다. 온라인 전용 상품은 창구거래 상품보다 우대금리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서 소비자로선 더 이익입니다.

또 통장을 분실, 훼손하거나 인감이 바뀌는 등의 이유로 종이통장을 재발행하는 경우엔 2000원의 수수료를 소비자가 내야 합니다. 이렇게 통장 재발행에 드는 수수료만 연간 약 60억원에 달합니다.

종이통장 거래 계좌인 경우엔, 예금주 본인이 직접 영업점에 방문했더라도 통장이 없으면 일단 통장분실 신고 절차를 거친 뒤에야 출금을 할 수 있는 불편함도 있습니다. 통장을 분실했을 때 통장에 담긴 인감이나 서명 같은 정보가 도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종이통장이 불법으로 거래돼 대포통장으로 이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결국 이런 자원 낭비와 거래의 불편 등의 이유로 종이통장 무용론이 최근에 힘을 얻고 있습니다.

신한은행의 종이통장.[자료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

신한은행의 종이통장.[자료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

미국·영국 등에서는 이미 금융거래가 전산화되면서 오래 전부터 재래식 종이통장은 발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영국은 2000년대 이후엔 종이통장을 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저축은행(미국)이나 주택대부조합(영국)만 예외적으로 종이통장이 발행된다고 합니다.

주요 선진국 중 일본은 우리처럼 여전히 은행 거래 시 종이통장을 발행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금융거래 증가로 일본에서도 종이통장 발행이 갈수록 줄고 있는 추세입니다. 중국은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면 직불카드를 우선 발행하되 고객이 요청을 따로 하면 종이통장을 추가로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종이통장을 발행하는 비율은 전체 고객의 20%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종이통장 발급 비중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전체 신규 계좌 중 종이통장을 발행하지 않는 온라인 전용 계좌의 비중이 2012년엔 18.8%였지만 해마다 비율이 높아져 지난해엔 33.2%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런 추세에 맞춰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5년 7월 종이통장 단계적 폐지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15년 9월부터 2년 간은 종이통장을 발급 받지 않는 고객에게 우대금리와 같은 인센티브를 줘서 가급적 통장을 만들지 않도록 유도합니다. 이후 2017년 9월부터는 계좌를 새로 만들 때 종이통장을 발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리고 2020년 9월부터는 종이통장을 만드는 사람에겐 종이통장 발급에 드는 원가 중 일부를 부담토록 합니다. 종이통장이 더 이상 공짜가 아니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9월부터는 은행 창구에 가서 새로 입출금통장 계좌를 개설해도 별도로 요청하지 않는한 종이통장을 주지 않게 됩니다. 대신 소비자가 요청하면 희망하는 경우에 한해 종이통장을 공짜로 주긴 합니다. 60세 이상인 고객도 예외를 인정 받아서 종이통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모바일 뱅킹 사용에 익숙치 않은 고령층에 대한 배려인 셈입니다. 물론 60세 이상인 고령층이라고 해도 종이통장을 만들지 않으면 금리나 수수료 우대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1970~1980년대 조흥은행이 발급한 종이통장. [사진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

1970~1980년대 조흥은행이 발급한 종이통장. [사진 신한은행 한국금융사박물관]

종이통장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불안해하는 고객들도 많습니다. 막연하게 ‘종이통장에 찍힌 숫자를 확인해야만 믿을 수 있다, 기계는 왠지 못 믿겠다’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고객들도 있습니다. 사실 미국·영국 등 무통장 거래가 일반화된 국가에서도 이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모든 금융거래 내용은 메인 전산시스템과 함께 물리적으로 분산된 공간에 구축된 백업시스템을 통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기도 합니다. 또 통장이 없더라도 필요하면 예금증서를 발행해주거나 e메일을 통해 거래명세서를 송부해줄 예정이기 때문에 금융거래사실을 확인·증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금융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 고객들을 위해 은행 창구에서 인터넷·모바일 뱅킹 이용법을 안내해주는 등 홍보와 교육이 좀더 필요하겠습니다.

노란색 월급봉투가 이미 자취를 감췄듯이, 빨간 우체통이나 공중전화 부스가 예전만큼 눈에 띄지 않듯이 종이통장도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게 시대 흐름입니다. 이를 거스를 순 없겠지만 세뱃돈을 저금한 뒤 종이통장에 찍힌 숫자를 확인해보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틴틴 여러분에게도 어쩌면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로 14㎝, 세로 8.7㎝의 20여쪽 종이로 구성된 종이통장은 이렇게 역사 속으로 물러납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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