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그래서”로 대화 잇고 “그거 알고 있니”로 자각 끌어내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37호 29면

[2017 스포츠 오디세이] 베이스볼 대디의 ‘아이를 살리는 질문법’

야구 연구모임인 ‘코끼리 야동클럽’을 이끌고 있는 최승표 대표. 작은 사진은 김용달 한국야구위원회 육성위원과 대화하는 모습. 임현동 기자

야구 연구모임인 ‘코끼리 야동클럽’을 이끌고 있는 최승표 대표. 작은 사진은 김용달 한국야구위원회 육성위원과 대화하는 모습. 임현동 기자

아빠는 야구를 잘하는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아이가 중1 때, 전국대회 결승전에서 1점 차로 지고 있는 경기 막판 타석에 섰다. 투 아웃에 주자는 3루. 안타를 치면 동점이 되는 상황에서 3루 땅볼로 물러났다. 아이가 풀이 죽어 덕아웃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덕아웃 옆에 있던 아빠가 혼잣말을 했다. “에이 새끼. 이럴 때 못 해주네.” 아이는 몇 년 뒤 ‘야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아빠가 그 말 하는 걸 들었을 때”라고 말했다.

야구 멘털 연구 최승표 대표 조언 #실수나 일탈 행위 반복할 때 #“그러지 말랬잖아” 구박하는 대신 #“어떤 의도로 그랬니” 묻는 게 좋아

지금 그 아이는 고교 2학년 투수다. 아빠 최승표(45)씨는 야구의 기술과 멘털 등을 연구하는 모임인 ‘코치라운드’(coachround.com) 대표를 맡고 있다. 지도자·학부모들이 선진 야구 훈련법을 영상으로 보고 토론하는 ‘코끼리 야동클럽(코치끼리 야구 동영상 보는 클럽)’도 이끌고 있다. 학생 선수들의 훈련일지 역할을 하는 ‘야구소년 플레이북’도 펴냈다. 운동선수 출신도, 체육 관련 전공자도 아닌 최 대표는 “야구선수 아이를 키우면서 부족함과 한계를 절감해 이런 모임을 맡게 됐다. 프로야구 감독 출신부터 중·고등학교 코치까지 다양한 분들이 현장의 경험을 들려줘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지난달 한국스포츠코칭학회 세미나에서 ‘선수의 잠재력을 깨우는 코치의 질문’이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그 다음주에 최 대표를 따로 만났다. 스포츠 코치뿐만 아니라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새겨야 할 ‘알맹이’가 있다고 느껴서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니?”

대화가 이어지도록 연결해 주는 이런 말들을 ‘브리징 코멘트(bridging commment)’라고 한다. 어른들은 아이의 얘기를 더 들으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이나 의견을 전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코칭이 목적이라면 상대방의 경험이나 생각에 좀 더 깊이 다가가야 한다. 그런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게 브리징 코멘트다. 최 대표는 “아무리 좋은 질문을 해도 아이들은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막히는 경우가 많다. 어려운 질문이 아니라 가볍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질문이 자기탐구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넌 어땠니?”

내가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나 에너지를 전달받을 수 있는 질문이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는 잘하지만 자신을 들여다보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이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참고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하는 것, 즉 인성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성을 함양하려면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작용을 할까를 생각하고, 이에 대해 질문을 받는 경험을 해야 한다. 반복된 실수나 일탈 행위를 했을 때 “이 자식아. 그런 짓 하지 말랬잖아”라고 윽박지르는 게 아니라 “넌 어떤 의도로 그런 일을 했니? 상대는 어떻게 느꼈을까?” 라고 물어보는 게 옳다.

“너 그거 알고 있니?”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자각이다. 자각이 되려면 에너지의 방향이 자신에게 가야 한다. 지시나 명령을 받게 되면 그 에너지가 자신에게 가지 않고 지시를 한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일방적 지시와 명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분노와 우울이 쌓인다. 거칠게 저항하거나 무기력해지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자각을 불러일으키려면 “너 지난번엔 저렇게 하던데 이번엔 이렇게 하더라. 그거 알고 있니”라고 묻는 게 좋다. 언어뿐만 아니라 장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휴대전화로 동작을 찍어 보여 주거나, 관련 수치를 비교해서 제시할 수도 있다. 요즘은 배트에 붙이기만 하면 배트 스피드를 알려주는 장비가 있다. 이런 IT 장비를 활용해 “배트 스피드 시속이 3km 떨어졌네. 이렇게 한번 해 보자”고 하면 본인이 자각하고 더 노력할 것이다.

“오늘 경기에서 뭘 느꼈니?”

‘선수들의 감정 탱크를 채워 주라’고 미국 리틀야구연맹에서는 코치들에게 강조한다. 감정은 엔진오일과 같다. 이게 없어도 차는 일시적으로 굴러가지만 결국 엔진이 불타고 사고가 난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감정에 대해 유치하거나 사치스러운 것, 여자들이나 갖는 것, 누르고 감춰야 하는 것으로 배워 왔다. 그러나 멘털의 대부분은 감정이다. 일어나는 감정을 인정하고 어떻게 보살펴 줄 건지 고민해야 한다. 아이의 결정적인 실수로 게임을 졌다고 치자. 우리 코치나 학부모는 자신도 표정관리가 안 되면서 “괜찮아, 잘했어. 담에 잘하면 돼”라며 아이의 감정을 어설프게 덮어 버리려 한다.

전설적인 메이저리거 칼 립켄 주니어는 이에 대해 “그건 모욕이다. 온 힘을 다해 모든 걸 쏟아 낸 아이한테 ‘괜찮아, 한 경기 졌을 뿐이야’라고 말한다면 그가 경기를 위해 노력한 건 뭐가 되나”고 지적했다고 한다. 최 대표는 “감정이 일어나고 흘러가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고, 그 감정을 내면의 에너지로 바꿀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에 나오는 대사다. 선수가 엄청 두들겨맞다가 공이 울려 코너로 돌아왔을 때 코치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한 말이다. 선수의 각성을 유도하는 촌철살인 멘트일 수도 있지만 코치 본인도 당황하고 해결책을 찾지 못해서 한 말일 수도 있다.

코치는 신이 아니다. 자신도 대책이 안 설 때가 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실수에 대해 사과할 줄도 알아야 한다. “오늘은 내가 이 장면에서 판단을 잘못해서 졌다. 너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이다. 선수들에게 화를 낸 뒤에도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나도 노력하지만 잘 안 돼”라고 말하는 코치를 선수는 더 신뢰할 것이다.

최 대표는 “우리 스포츠계는 자기표현을 꺼리고, 실수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강하다.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도록 부모들이 ‘열린 질문’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