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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취향 ‘족집게 저격’ 넷플릭스의 공습 시작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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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호 15면

‘옥자’ 파문 일으킨 콘텐트 공룡

비밀을 지닌 거대동물 ‘옥자’(왼쪽)와 소녀 ‘미자’. [AP=연합뉴스]

비밀을 지닌 거대동물 ‘옥자’(왼쪽)와 소녀 ‘미자’. [AP=연합뉴스]

넷플릭스가 ‘영화=극장’이라는 대중의 상식을 뒤집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29일 극장과 넷플릭스 홈페이지에서 동시 공개하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는 그 척도가 될 전망이다. 옥자는 지난해 1월 한국 시장에 진입했으나 고전을 면치 못했던 넷플릭스가 총 제작비 570억원을 100% 투자해 내놓는 야심작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함께 자란 거대 동물(옥자)과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다.

공학도 CEO, 직원30% 엔지니어 #추천 알고리즘으로 고객 정밀 분석 #내년엔 200억원 들인 드라마 공개 #“국내 미디어·통신업체 위기 올 수도”

봉 감독만큼이나 옥자에서 눈길을 끄는 요소는 이 영화의 특이한 유통 시스템이다. 넷플릭스가 3주가량의 ‘홀드백(영화를 극장에서만 상영하는 유예기간)’을 거치지 않고 온·오프라인에서 동시 개봉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전례가 없는 일이다. 롯데시네마·CGV·메가박스 등 3대 국내 멀티플렉스는 상영을 일제히 보이콧했고 기존 영화계는 반발하고 있다. 홀드백 없는 넷플릭스의 온·오프라인 동시 상영 방침은 영화 생태계를 파괴하는 처사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프랑스서 고전하다  ‘마르세유’로 반전

넷플릭스는 유료 가입자 수만 190개국에서 9300만 명에 이르는 초대형 콘텐트 기업이다. 그렇지만 한국 시장 정착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1월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1년6개월이 지났지만 가입자 수가 13만 명 수준이다.

국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넷플릭스는 전략을 새로 수립했다. 다시 꺼내든 카드는 이른바 프랑스 모델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넷플릭스는 프랑스 진출 때에도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홀드백을 3년으로 법제화하는 등 미국 기업에 배타적인 프랑스의 미디어산업 정책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프랑스에 정착하게 된 터닝포인트는 지난해 5월 정치드라마 ‘마르세유’를 공개하면서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처럼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콘텐트면서 작가부터 프로듀서(PD), 배우까지 프랑스인이 제작에 참여했다. 한 인터넷TV(IPTV) 업계 관계자는 “뜻하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한국 시장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직접 제작·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옥자’에 앞서 올 1월 넷플릭스는 천계영 작가의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을 드라마(12부작)로 만든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에는 인기 드라마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 영화 ‘터널’의 김성훈 감독과 손잡고 좀비를 소재로 한 조선시대 드라마 ‘킹덤’(8부작)을 제작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내년 상반기 넷플릭스 독점 공개를 목표로 현재 제작 중이다. 업계에선 넷플릭스가 내년에 드라마에 적어도 2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것으로 본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넷플릭스 가입자 수가 이미 케이블TV를 넘어섰다. 미디어 시장조사업체 라이크만리서치 조사 결과 올 1분기 넷플릭스의 미국 가입자 수는 5085만 명으로 케이블TV(4861만 명)에 비해 약 200만 명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케이블TV 가입자 수가 5260만 명으로 넷플릭스(2341만 명)의 두 배 이상이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1997년 창업한 넷플릭스가 20년 새 거침없이 성장함에 따라 경쟁 업체들도 유사한 서비스를 잇따라 내놨다. 구글의 ‘유튜브 레드’, 아마존의 ‘아마존스튜디오’, 미 통신업체 AT&T의 ‘다이렉 TV’가 대표적이다.

미국 가입자 5085만, 케이블TV 능가

뉴욕 증시에선 넷플릭스를 페이스북, 아마존, 그리고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과 함께 ‘팡(FANG)’으로 부른다. 정보기술(IT) 분야 4개 기업의 앞 글자를 딴 조어다. 특히 넷플릭스 주가는 전년 대비 69% 상승해 시가총액이 680억6700만 달러(약 77조4000억원)까지 불어났다.

창작자 중심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넷플릭스는 철저히 개발자·데이터 중심으로 운영되는 특이한 기업이다. 전체 직원(3200명) 가운데 1000명이 코딩을 하는 엔지니어다. 리드 헤이스팅스 CEO는 수학을 전공한 뒤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공학도다.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은 맞춤복처럼 회원 개인의 취향과 시청 패턴을 반영한다. 성별·나이·지역 등 이용자의 기본 속성뿐만 아니라 언제·어떤 기기로 이용했는지, 어떤 페이지에 얼마나 머물렀는지, 스크롤을 내리는 시간까지 측정한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멜로 장르를 선호하는 이용자라 하더라도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에는 멜로·로맨틱코미디 같은 연성 장르뿐 아니라 액션·스릴러까지 꼭 포함된다”며 “이용자 개인뿐만 아니라 이용자의 친구들은 어떤 장르를 선호하는지까지 알고리즘을 고도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넷플릭스가 자체 서버 없이 오직 클라우드만으로 데이터를 관리한다는 점이다. 2009년 이후 7년간의 작업 끝에 넷플릭스는 자체 데이터센터(IDC)를 아마존웹서비스(AWS) 클라우드 서버로 모두 옮겼다. 미 IT 전문매체 ‘씨넷’과의 인터뷰에서 헤이스팅스 CEO는  “넷플릭스는 예술에 과학을 결합한 서비스”라며 “데이터를 관리하는 부분은 아마존이 낫기 때문에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콘텐트를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알고리즘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내 미디어 업체들이 구글 유튜브만큼이나 넷플릭스에 종속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시장조사업체 DMC미디어에 따르면 절반 가까운 인터넷 이용자(42.1%)가 모바일 동영상을 볼 때 가장 자주 이용하는 플랫폼으로 구글 유튜브를 꼽았다. 소셜미디어 페이스북(9.1%)까지 더하면 외국계 서비스가 국내 동영상 시장에서 절반 이상 점유율을 차지한다. 반면 가입자 수만 950만 명에 달하는 SK브로드밴드 옥수수는 8%, 52만 명인 푹은 3.1%에 그쳤다. 콘텐트 업계에서 주요 지표로 삼는 서비스 활성 이용자 수(DAU)가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지난해 8월 출시된 KT의 동영상 플랫폼 두비두, 11월 나온 SK텔레콤 히든은 이달 30일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했다.

이병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미국·중국 등의 IT 공룡들은 이미 국내 업체 수준에서 당해내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며 “국내 미디어와 통신사업자 또는 콘텐트 업체와 인터넷 플랫폼 업체 사이의 과감한 제휴, 인수합병(M&A)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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