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특별시 위한 생각의 텃밭을 맵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7.06.2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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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호 08면

[정재숙의 공간탐색] 도시 디자이너 박원순 시장실
중앙 정면에 새로 설치된 ‘디지털 시민시장실’ 앞 벽면과 뒤 쪽방에 서울 시정과 관련된 주제별 파일함 2000여 개가 서고처럼 늘어서 있다. 안충기 기자

중앙 정면에 새로 설치된 ‘디지털 시민시장실’ 앞 벽면과 뒤 쪽방에 서울 시정과 관련된 주제별 파일함 2000여 개가 서고처럼 늘어서 있다. 안충기 기자

창작의 산실은 내밀한 처소다. 한국 문화계 최전선에서 뛰는 이들이 어떤 공간에서 작업하는지 엿보는 일은 예술가의 비밀을 훔치듯 유쾌했다. 창조의 순간을 존중하고 그 생산 현장을 깊게 드러내려 사진기 대신 펜을 들었다. 펜화가인 안충기 섹션에디터는 짧은 시간 재빠른 스케치로 작가들의 아지트 풍경을 압축했다.

벽엔 시민 의견 포스트잇 빼곡
방 옆의 도서관형 서고엔
주제별 정리 파일함 2000여 개

이 연재물의 여섯 번째 주인공은 도시디자이너 박원순(61) 서울특별시장이다. 변호사, 사회운동가로 활동할 때부터 자신을 스스로 ‘소셜 디자이너’라 부를 만큼 세상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시장 임기를 1년 남겨둔 그는 3선 도전 여부를 묻자 “시민이 원한다면”이란 짧은 답을 내놓았다.

시장실 입구에 탁구대가 놓여 있다. 전시용인가 했더니 실제 시합용이란다. 박원순 시장도 선수급은 아니지만 틈틈이 탁구 라켓을 잡고 직원들을 독려해 가며 땀을 흘린다. 분초를 쪼개 움직이는 일정 중에도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상징이랄까.

“어서 오세요, 전화번호를 따도 되겠지요. 제가 요즘 전화를 많이 해요. ‘불쑥 전화놀이’라 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지요.”(취재 이틀 뒤 정말 시장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 3월 화이트데이 때는 새벽 2시까지 1000명 가까운 이들에게 사탕 그림을 담은 문자를 보냈다. 전화기에 저장된 가나다순으로 했는데 어떤 이는 스팸문자로 오인해 지우기도 하고, 깜짝 놀라 시장님 맞느냐는 회신을 보내온 사람도 있었다. 강직하면서도 부드럽고, 큼직하면서도 섬세한 자화상을 디자인하는 ‘박원순 스타일’ 변화의 한 예인 셈이다.

“오늘 아침에 분기별로 하는 표창을 했어요. 초과근무 적은 부서, 유연근무 많이 한 부서에 상을 줘 격려했지요. 제가 버릇처럼 ‘좀 노세요’를 노래하고 다닙니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게 제 지론이거든요. ‘여가 스포츠팀’을 만들어 연구도 시켰어요. 서울시 공무원들 정말 힘듭니다. 저부터 잘 놀자고 다짐하고 있어요. 같이 일하는 분들 편하도록 가능하면 일찍 퇴근하고 집식구와 시간을 보냅니다.”

개장 한 달을 맞은 도심 속 공중정원 ‘서울로 7017’을 찾은 방문객이 200만 명을 넘었다. 서울을 세계가 손꼽는 명품 도시로 디자인하겠다는 박 시장의 계획이 하나씩 성과를 내고 있다. ‘푸른 도시국’을 부서로 독립시켜 서울둘레길, 무장애숲길, 치유의 숲길 등을 조성해 녹색복지 시대를 열어가는 것도 지속가능한 미래 서울을 위한 큰 걸음이다.

“보행자 중심 서울, 사람을 위한 ‘사람특별시’ 서울로 가기 위한 프로젝트가 착착 진행되고 있어요. 세운상가 일대를 보행 중심축이자 창의제조산업기지로 만드는 ‘다시·세운 프로젝트’의 공중보행로가 8월 완공 예정입니다. 앞으로 물길, 하늘길, 지하길로 다변화하는 서울을 지켜봐 주세요. 매력 넘치는 서울로 세계인들 발길이 절로 이어지도록 만들 겁니다.”

이 모든 구상이 그의 집무실에 집적돼 있다. 시민들이 보내온 의견을 적은 노란 포스트잇이 벽 한 면에 유리 덮개를 쓴 채 빼곡하다. 주제별로 정리된 파일함이 얼추 2000개가 넘는다. ‘세계적 소기업’ ‘장수기업’ 옆에 ‘한류관광’ ‘문화관광’ 파일이 나란하다. ‘시각장애인 이동권’ ‘구급차 혁신’ ‘의료 사각지대’ 같은 주제도 보인다. 방을 둘러싸고 있는 도서관형 서고가 그의 생각 텃밭처럼 영글어가고 있다. 어떤 주제 분류함이 어느 서가 몇  번째 줄에 있는지 박 시장은 컴퓨터처럼 바로 찾아냈다. 그가 관찰하고 조사하고 연구해서 쌓아둔 서류철은 평소 개인사를 수첩에 일기 쓰듯 시간대별로 정리하는 그의 해묵은 습관에서 왔다.

“기록하는 민족이 발전합니다. 내년 하반기께 은평구 통일로에 개원하는 ‘서울기록원’은 공공기록과 민간기록을 망라한 서울 아카이브가 될 겁니다. 핵 공격이 와도 안전하도록 땅을 파고 들어가는 설계를 했을 만큼 공을 들였어요. 2000년 역사도시의 기억을 앞으로 어떻게 변주해 갈 것인가를 옛 기록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박 시장은 도시 디자이너답게 통일 이후 평화가 찾아온 뒤 평양을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까지 준비해 두었다고 했다. 올해 서울에서 열리는 건축비엔날레는 ‘사람특별시’ 서울을 세계에 알리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그는 자신했다. 며칠 전 세계 최초로 구축한 ‘디지털 시민시장실’도 사람특별시를 위한 도구다. 벽에 설치된 가로 3.63m, 세로 1.67m 대형 터치스크린은 재난, 교통상황 등 서울 각 지역의 현황을 앉아서 들여다볼 수 있고 서울시 주요 사업 담당자와 음성·화상통화가 가능해 실시간 업무지시까지 내릴 수 있는 첨단 시설이다.

시장 책상 옆에 ‘배달의 민족’ 철가방이 놓여 있어서 혹시 배달음식을 시켜 드시느냐고 물었더니 박 시장 특유의 하회탈 웃음이 터졌다. “시민이 주신 의견을 잘 배달하겠다는 다짐을 아침마다 되새기게 해주는 제 죽비이지요.”

외부 손님과 대화 5년째 기록 중
‘디지털 시민시장실’을 설명하는 박 시장 오른쪽에 이를 속기하는 기록관의 손이 보인다. 가운데 등 받침 높은 의자가 ‘시민석’이다. 정재숙 기자

‘디지털 시민시장실’을 설명하는 박 시장 오른쪽에 이를 속기하는 기록관의 손이 보인다. 가운데 등 받침 높은 의자가 ‘시민석’이다. 정재숙 기자

서울시청 6층 시장실에 들어서자 미디어 담당관 뒤에 여자 사무관 한 명이 따라왔다. 방문객을 맞는 긴 탁자 앞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자마자 속기용 키보드가 달린 타자기를 두드린다. 시장과 외부 손님이 나누는 이야기는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원순씨’의 철칙이다. 기록관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가 대화나 보고가 시작되면 바로 타자를 쳐 분류한 뒤 보관한다. 기록이 정확하게 남기 때문에 이 방에 들어오는 이들은 시장과 나눈 언행에 책임을 져야 한다. 박 시장의 기록관은 조선시대 사관(史官)인 셈이다. 시장 재임 5년 동안 이렇게 기록과 보존에 힘쓰다 보니 시정(市政)이 투명해지는 결실을 보았다.

자리 배치도 재미있다. 시장 자리이려니 짐작했던 상석(上席) 큰 의자를 비워 두고 박 시장은 기록관 건너편에 앉았다. 중앙 자리는 ‘시민석’이라 불리는데 시장을 찾아온 보통 사람들을 받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응접실용 소파가 아니라 재활용품 의자들인 점도 인상 깊다. 편안하게 파묻혀 어물쩍 대화를 나누기보다 엉덩이가 딱딱해 정신 바짝 차리면서 생산적인 의견을 주고받는 효과가 있을 법했다.

박원순
1956년 경남 창녕 생. ‘늘 연결된 시장’을 자임하는 ‘원순씨’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팔로어가 250만 명을 넘을 만큼 소통의 달인이다. 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 재단·희망제작소 상임이사 활동 등으로 ‘만해상’과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을 수상했다. 『박원순의 대한민국 희망 프로젝트』 『세기의 재판』 『박원순, 생각의 출마』 등을 펴내 저술가의 면모도 강하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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