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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문재인 정권의 근육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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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칼럼니스트·대기자

개혁의 전사(戰士)는 근사해야 한다. 그 자격은 개혁의 돌파력을 높인다. 안경환 교수의 사연은 구질구질하다. 법무장관 후보의 낙마는 중대사고다. 권력의 상징성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검찰 개혁을 상징으로 삼았다. 그것은 문 대통령과 86세대의 권력 귀환용 작품이다.

검찰 혁신의 본질은 권력게임 #안경환·조국 동종교배 시도가 #전선의 전투력 떨어뜨려 #조국 “개혁 안 한 검찰은 괴물” #견제 원리 담은 로드맵이 #정권의 근육질, 균형감각 키워

조국 민정수석 역할은 개혁 로드맵의 설계다. 그는 개혁 전사의 요건을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천정배 법무장관은 자신의 위치를 ‘장관’보다는 ‘정치인’으로 매기고 있었기에 검찰 개혁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게 아닌가 합니다. (이명박 정권에서) 만약 이재오 특임장관 같은 비중의 사람이 법무부 장관을 한다고 해 보세요. 검사들이 꼼짝 못할 겁니다. 이러한 ‘힘’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보 집권플랜』 2010년 간행) 이명박 정권 시절 이재오는 정권 실세였다. 그의 근육질은 정치판 진흙탕에서 단련됐다.

안경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삶은 그런 세계와 다르다. 그 영역은 폴리페서가 알기 힘들다. 그의 지적편력은 인상적이다. 그는 법과 문학을 묶어 글로 내놓았다. 월터 스콧은 스코틀랜드의 문학적 자존심이다. 스콧은 법률가다. 안 교수는 스콧의 문학세계를 이렇게 정리한다. “스콧의 작품을 관류하는 특징이 균형감각이다. 법률가가 큰일을 하려면 대세의 인식력과 균형감각을 갖추어야 한다.”

개혁의 큰일은 균형감각을 요구한다. 인사의 균형감각은 충돌하는 경력으로 발휘된다. 안경환과 조국은 법률 교수 출신이다. 그 파격성은 개혁의지를 과시했다. 하지만 그런 조합은 동종교배의 취약점을 갖는다. 그런 배치는 개혁의 근육질을 배양하기 힘들다. 전투력이 떨어진다. 조 수석의 안목은 정서적 유착관계에 치중했다. 안경환의 법무장관 야망은 과욕으로 끝났다. 허위 혼인신고, 아들 퇴학 무마 의혹의 폭로는 그 과욕으로 시작됐다. 안경환 파동은 개혁전선을 헝클어뜨렸다. 그의 역할은 법적 감수성 제공에 그쳤어야 했다.

검찰 개혁의 명분은 적폐 청산, 독립성이다. 그 본질은 권력 게임이다. 1987년 민주화 개막의 최대 수혜자는 검찰이다. 군은 후퇴했다. 최고 정보기관은 시련의 시작이다. 경찰은 위축됐다.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다. 그 힘으로 30년간 권력 무대에서 질주했다. 박근혜 시대는 검찰공화국이었다. 독주의 장기화는 부패를 낳는다. 검찰 내부의 자기성찰도 약해졌다. 거악 척결의 이미지는 검찰 선배들이 쌓은 성취다. 하지만 전성기 후배들의 도덕적 타락은 치명적이었다. 그 성취가 헝클어졌다. 최순실 국정 농단, 정권 실패의 그림자에 검찰 출신들이 존재했다.

검찰 개혁의 해법은 나와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 법무부의 탈(脫)검찰이다. 그것으로 검찰의 권한을 분산·재조정하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박정희의 권력 관리 방식은 분리·지배였다. 그는 청와대·정보기관(중앙정보부)·군(보안사)·검찰·경찰·국세청·여당(공화당)의 힘을 적절히 분산, 통제했다. 그것은 장기독재 체제의 기반이었다. 하지만 그 작동 방식은 시장경제의 경쟁이었다. 권력기관의 생리는 독재, 민주의 어떤 정부나 비슷하다. 검찰 개혁의 그림은 견제와 균형원리로 채색돼야 한다. 그것이 권력기관들의 건전성을 보장한다.

조 수석은 “검찰 권력을 개혁하고 재구성하지 않으면 검찰은 ‘괴물’이 될 수 있다”(『진보집권 플랜』)고 했다. 괴물은 역습의 기회를 노린다. 검찰은 여론전에 숙달됐다. 검찰은 대형 부패 수사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처벌 대상은 거물 정치인이나 재벌이 적격이다. 민심이 응원하다. 언론이 밀어준다. 검찰 수뇌부는 정권의 반대세력을 압박한다. 청와대에 대한 그런 충성은 교묘히 진행된다. 그 무렵 청와대의 자세가 달라진다. 검찰의 위상은 복원된다. 검경 수사권 분리·조정 과제는 후퇴한다. 이런 장면들은 과거 역대 정권에서 반복됐다.

검찰 개혁의 최종 관문은 국회다.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은 법을 만들고 고쳐야 한다. 검찰의 국회 로비력은 숙달돼 있다. 변호사 출신 의원들은 대체로 검찰에 우호적이다. 검찰 개혁법 통과에 소극적이다. 양쪽 관계는 업무와 인연으로 엮여 있다. 문재인 정권의 국회 환경은 척박하다. 국회는 선진화법(5분의 3, 180석 통과) 체제다. 민주당은 120석이다. 여론정치의 한계는 뚜렷하다. 그것으로 국회를 역(逆)포위하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협치의 진정한 시험대가 검찰 개혁 분야다. 거기서 정권의 솜씨가 판가름 난다.

검찰 혁신은 국민적 요구다. 그 개혁은 곡절과 파란을 예고한다. 혁신 로드맵은 정교해야 한다. 개혁의 기량은 균형감각을 주는 근육질로 커진다. 검찰 개혁은 낭만적 진보주의자들의 실험 공간이 아니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