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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여성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왼쪽부터) 배우 줄리아 옌체,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 배우 비얀 미들.

(왼쪽부터) 배우 줄리아 옌체,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 배우 비얀 미들.

[매거진M] 낙태를 둘러싼 고뇌 그린 ‘24주’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

뱃속의 아이가 다운증후군과 심장에 선천적 장애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건가. ‘24주’는 출산을 석 달 앞두고 뱃속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독일인 부부가 낙태를 결정하기까지 윤리적 고민과 압박감, 죄책감을 섬세하게 그린다. 그리고 영화는 이들을 통해 낙태는 감추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앤 조라 베라치드(35) 감독은 magazine M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이 낙태에 대해, 여성의 선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레즈비언 커플의 임신이란 소재로 만든 ‘투 머더즈’(2013)에 이어, 이번엔 뱃속 아이에게 문제가 생겨 선택의 기로에 놓인 부모에 대한 이야기다.

“수년 전, 낙태했던 경험이 지금까지도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극한 상황에 처한 여성의 갈등과 고통스러운 고민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잡지를 통해 ‘독일에서는 태아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 출산 직전까지 낙태가 합법’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태아의 운명이 법적·윤리적·철학적 질문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정답이 없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임신과 낙태, 다운증후군, 선천성 심장병 등 다양한 공부와 취재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

“처음엔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가면서 정보를 얻고 연구했다. 그러다 이 주제에 대해 전문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의료진을 찾았다. 실제로 낙태를 한 여성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대부분 이야기하기를 꺼려해서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여성을 알게 됐고, 그가 자신의 경험을 말해 줬다. 카페에서 서로 이야기하다가 손을 잡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자료들로 1년 반 동안 시나리오를 썼다.”

-아스트리드(줄리아 옌체)는 ‘슬퍼도 남을 웃겨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란 직업을 설정한 이유가 있다면.

“아스트리드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고통스러운, 극단적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을 웃겨 주는 일을 하게 만들어서 웃음과 눈물의 균형을 맞추고 싶었다.”

-샤워, 세수, 임신부 수영 등 물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아스트리드가 샤워와 세수를 하고, 임신부 수영을 하는 장면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뱃속에서 꼬물거리는 실제 태아다. 관객들에게 아스트리드가 뱃속에 있는 자신의 아기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알려 주고 싶었다.”

영화 '24주'

영화 '24주'

-중요한 순간마다 아스트리드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내 의도는 ‘당신이 나라면, 어떻게 할 건가요?’라고 관객에게 직접 묻는 것이었다. 관객들이 임신부가 느끼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대해서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길 바랐다. 또한 캐릭터가 아닌 배우의 자아가 드러나도록 만들고 싶었다. 많은 스태프들이 이러한 연출 방식을 반대했지만,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상적이었다고 해주니 너무 기쁘다.”

-독일은 1993년부터 낙태를 합법화했다. 지금 독일에서 낙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떤지 궁금하다.

“독일에서도 임신부가 늦은 시기에 낙태를 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일이다. 처음 이 영화를 기획했을 때, 낙태 반대론자 때문에 ‘투자를 받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 섞인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아스트리드의 선택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쪽도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제작비를 마련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줄리아 옌체의 현실적인 감정 연기가 공감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만들더라.

“캐스팅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나는 캐스팅 할 때 시나리오와 작업 방식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을 함께 보낸다. 철저하게 계산된 것보다 배우들의 진짜 모습을 즉흥적으로 영화에 담고 싶기 때문이다. ‘24주’의 시나리오를 본 배우들은 처음엔 흥미를 보이지만, 깊은 몰입이 필요하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대부분 거절했다. 줄리아 옌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만간 둘째 아이를 갖고 싶은데 나와 프로젝트를 함께하면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배우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었고, 줄리아 옌체와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함께 영화를 하기로 결정했다. 용감하게 연기해 준 줄리아 옌체 덕분에 아스트리드의 감정을 더욱 실감 나게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고맙다.”

'24주'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

'24주'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

-아스트리드는 라디오에 출연해 ‘낙태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이 장면에 대해 고민은 없었나.

“우리 영화는 낙태 찬반을 다루는 게 아니라 낙태를 대하는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내가 원하는 건 스스로 힘든 결정을 내린 여성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감추거나 마음속에 묻고, 상처로 간직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이를 더욱 공론화하고, 낙태가 자신들에게 얼마나 큰 아픔이었는지를 털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가 독일에서 어떻게 회자되고 있나.

“지난해 베를린에서 처음 공개되었을 때부터 많은 비판과 논란을 예상했다. 혹자는 여성들의 낙태를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다며 내가 이 영화를 만드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인 건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내 의견에 동의를 해줬다. 영화에서 산파가 이런 말을 한다. ‘실제로 문제에 직면하기 전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어. 아무도 너를 비판하거나 심판할 수 없어’ 극심한 고뇌를 했을 여성의 선택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영화로 하고 싶은 말이다.”

-한국 관객들이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봐 줬으면 좋겠나.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관객들과 만났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 문화는 내가 독일에서 경험한 문화와 매우 달랐다. 특히 영화의 주제를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더라. 영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문화와 법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지만, 삶이란 그렇지 않다. ‘24주’는 독일영화상에서 은상을 받았다. 그것은 심사위원들이 아니라 관객들이 준 상이다. 나는 독일 관객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 관객들이 ‘24주’를 통해 중요한 영화적 가치를 발견해 주길 바란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사진=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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