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사옥’ 로이드빌딩, 유대감 형성에 좋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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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호 23면

[도시와 건축] 기업의 집, 사옥

영국 런던의 금융회사 사옥인 로이드빌딩(위 사진)은 다른 층끼리 서로 바라볼 수 있는 구조다. 이런 공간은 공동체의식을 만든다. 4층 높이의 애플 사옥(아래 사진)은 동그란 도넛모양으로 중앙에 거대한 숲이 조성돼 있다. 심리적으로 무한한 공간처럼 느껴질 수 있는 구조다. [중앙포토]

영국 런던의 금융회사 사옥인 로이드빌딩(위 사진)은 다른 층끼리 서로 바라볼 수 있는 구조다. 이런 공간은 공동체의식을 만든다. 4층 높이의 애플 사옥(아래 사진)은 동그란 도넛모양으로 중앙에 거대한 숲이 조성돼 있다. 심리적으로 무한한 공간처럼 느껴질 수 있는 구조다. [중앙포토]

사옥은 말 그대로 ‘기업의 집’이다. 그래서 사옥은 ‘기업’이 만들어진 후에야 인류역사에 나타난 빌딩 형태이다. 기업의 역사는 초기 가내수공업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이때는 주요 교통수단이 걷는 것이어서 소비자들이 모이기 힘들었고 따라서 시장의 규모가 작았다. 집집이 찾아가서 파는 방물장수가 있던 시절이다. 기업은 소규모 가내수공업이었고 사옥이라고 한다면 대부분 주거와 연결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 교토에 있는 형태이다. 길가에는 가게가 있고 뒤쪽으로는 공장이 있으며 2층에 주인이 사는 구조를 띠고 있다. 짧은 거리에 많은 상점을 두기 위해서 도로와 면한 필지의 부분이 좁고 대신 뒤쪽으로 길었으며, 옆 건물과는 붙어 있는 도시구조가 만들어졌다.

각층에 중정이 있는 ‘ㅁ’자 모양 #콜로세움처럼 서로 마주 보는 형태 #애플·페이스북·구글은 저층 구조 #젊은 벤처 특성 반영된 수평형 사옥

비슷한 시기에 범선을 이용해서 더 큰 돈을 벌던 기업들도 있었다. 이들은 바다를 이용해서 국가 간의 대규모 무역을 했으며 기업의 규모도 키울 수 있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이 방식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도자기를 독점 수출해서 큰돈을 벌었던 중국 황실도 이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런 기업은 전 지구적으로 극소수였다. 이후 증기기관차의 발명으로 큰 변화가 생겼다. 증기기관차 덕분에 먼 거리를 빨리 갈수 있게 되었다. 상인 입장에서는 내 물건을 멀리까지 팔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빠르게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엘리베이터가 개발되면서 도시가 고밀화되었다. 이제 굳이 기차나 마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아도 내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많아졌다. 공간구조가 기업가들에게 더욱 유리해졌다. 이때부터 우리가 들어 본 기업가들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한다. 록펠러나 카네기가 있으며 이 시대에 만들어진 포드 같은 기업은 아직까지도 유지될 정도로 탄탄한 기업들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전 세계의 경제정치사회문화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군사력을 제외하고는 세계적 다국적기업들은 웬만한 국가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과거 최고 권력자였던 왕들이나 교황이 궁궐과 대성당을 짓던 것처럼 지금은 다국적 기업들이 대형 사옥을 짓는다. 우리나라에도 대기업 두 곳이 100층이 넘는 사옥을 지었고 짓고 있다. 전 세계에 있는 대형사옥들을 살펴보면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기업은 낮고 넓게 자리 잡고 있고, 어떤 기업은 초고층을 선호한다. 과연 이 사옥들은 건축적으로 어떻게 그 기업의 문화 형성에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자.

가장 일반적인 고층형 사옥

아트리움에 테라스가 있다면 직원들에게 마당처럼 사용될 수 있다. [사진 유현준건축사사무소]

아트리움에 테라스가 있다면 직원들에게 마당처럼 사용될 수 있다. [사진 유현준건축사사무소]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고층건물이다. 대표적인 것이 뉴욕에 있는 자동차회사 사옥인 클라이슬러 빌딩이다. 완공된 지 얼마 후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지어져서 비록 세계 최고층 타이틀을 11개월 만에 내주어야 했지만 당시에 유행했던 아르데코양식의 첨두는 지금도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빌딩 첨두로 평가된다. 이 같은 고층건물은 엘리베이터와 강철의 도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디자인이다.

고층건물로 지어진 사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을 들게 한다. 높은 건물은 누군가가 무거운 건축 재료를 높이 올려서 구축한 결과물이다. 물리학적으로 엄청난 위치에너지를 보여 주는 것으로 동시에 그 건물을 지은 회사의 힘을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여러 개 층으로 나누어진 사옥은 내부 간의 소통을 막는 단점이 있다. 기업이 사옥을 지었을 때 좋은 점은 직원들이 모여서 생각을 교류하는 중에 나타나는 시너지효과이다. 그런 이유에서 페이스북이나 애플 같은 최첨단 IT기업들도 재택근무가 아닌 사옥을 고집한다. 하지만 초고층사옥에서는 층간을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것은 오래 기다렸다가 타서, 좁은 상자에 갇혀 있다가 문이 열리면 나가는 그다지 기분 좋지 않은 비연속적인 공간체험이다. 층간의 소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동체 의식도 만들어지기 어렵다. 실제로 거트만(Gutman)의 연구에 의하면 고층주거에 사는 사람보다 2층짜리 주택가에서 자라난 사람이 3배나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러한 고층건물의 단점을 해결한 사옥이 런던의 로이드빌딩이나 홍콩의 HSBC사옥이다.

공동체 의식 높이는 아트리움 사옥

금융회사 사옥인 이 두 건물은 고층건물이지만 엘리베이터 코어가 주변에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큰 보이드 공간이 있어서 각층은 중정이 있는 ‘ㅁ’자 같은 모양이다. 이렇게 될 경우 다른 층끼리 서로 쳐다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10층에서 일하는 직원이 자기 자리에서 아트리움 건너편의 8층부터 12층까지의 사원들과 시각적 소통이 가능하다. 중앙에 있는 수직의 공간이 전체 층을 아우르면서 공동체의 의식을 형성한다.

이처럼 서로 바라볼 수 있는 대형공간은 공동체의식을 만든다. 우리가 밥상에 둘러앉아서 마주보면서 밥을 먹는 식구가 더 돈독한 가족애를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 로마의 콜로세움이다. 로마는 정복지마다 콜로세움을 지었다. 콜로세움은 둥그런 형태로 관객이 서로 마주보는 구조이다. 다같이 검투사 경기를 보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계승해서 미국은 각 계절마다 농구, 야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경기장을 통해서 국민통합을 만든다. 로이드빌딩과 HSBC사옥은 고층건물로 외관상으로는 기업의 존재감을 강조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유대감을 형성하는 좋은 사옥의 형태이다. 로이드빌딩이 ‘밥상머리 사옥’이라면 가운데에 엘리베이터  코어가 있는 대부분의 사옥은 등 돌리고 밥을 먹는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중정형 사옥이 누구에게나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직원들은 자기가 퇴근하는 시간이 항상 사내 다른 직원들에게 노출이 되는 단점도 있다. 사장님이 더 높은 층에 있으면 부하 직원들의 많은 부분을 감시할 수 있게 되어서 직원들에게는 선호되지 않을 수 있다. 위계질서가 분명한 회사에서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창의적인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사옥타입이다.

사막지대라는 지리적 조건 반영

일반적으로 사옥은 고밀화된 도시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고층사옥의 형태를 불가피하게 띠고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저층형 사옥도 있다. 기술력중심의 IT기업들이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페이스북·구글이다. 이들 대표적인 IT기업 삼인방의 사옥은 모두 저층형 구조를 띤다. 건축에서는 높은 층일수록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내려다볼 수 있어서 권력을 가진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전통적 기업은 꼭대기층에 회장실을 둘 수 있는 고층형 사옥을 선호한다.

그런데 비교적 젊은 사원들로 구성된 IT기업은 수평적 구조를 강조하고 저층형 사옥을 선호한다. 게다가 이들 IT 3인방은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있다. 뉴욕 맨해튼은 단단한 암반의 섬이고 땅이 제한적이어서 고층건물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캘리포니아는 지진이 많고 땅이 남아도는 사막지대여서 고층의 고밀도의 도시가 형성되지 않는 지역이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LA는 계란프라이처럼 퍼져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러시아워 때의 교통대란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리적 배경과 젊은 벤처기업이라는 조직문화는 수평형 사옥을 만들었다. 수평적인 사옥은 중심점이 있는 방사상구조로 되어있지 않는 한 어느 곳이나 같은 권력의 위계를 가지는 공간구조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수평적 사옥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보이기는 하나 높지 않아서 멀리서 바라보는 외부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는 힘들다. 또한 저밀화된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 도시조직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클라이슬러 빌딩의 사원들은 문만 열고 나오면 도시 전체를 자신의 캠퍼스로 이용하는 데 반해 저층형사옥은 그 내부에서 다 해결해야 한다. 수평적 사옥들 중 특이한 사옥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애플사옥이다.

애플사옥의 장단점

영국건축가 노만 포스터가 설계한 4층 높이 애플사옥은 동그란 도넛모양으로 중앙에 거대한 숲이 조성돼 있다. 페이스북과 애플사옥은 모두 수평구조이지만 애플사옥의 특별한 점은 공간이 순환구조라는 것이다. 동그란 모양과 상자모양 사옥의 차이를 살펴보자. 상자모양은 왼쪽 구석에서 오른쪽 구석으로 이동한 후에 다시 자기자리로 돌아가려면 되돌아가야한다. 하지만 동그란 도넛모양에서는 한 방향으로 계속 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는 심리적으로 큰 차이를 가진다. 평면이 도넛형태로 계속해서 순환할 수 있는 애플사옥 같은 경우는 심리적으로 훨씬 더 넓게 느껴진다. 비슷한 예로 일본의 아사이야마 동물원은 적은 양의 물로 펭귄에게 넓게 느껴지는 우리를 짓기 위해서 동그란 모양으로 순환할 수 있는 수족관을 만들었다. 애플사옥은 막다른 벽이 없기 때문에 공간구조상 직원들이 그 안에서 심리적으로 무한한 공간처럼 느껴질 수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실패한 부분도 있다. 가운데 숲은 자연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라고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 숲은 바라보기는 좋지만 실내공간에서 너무 멀어서 자주 나가게 될지는 의문이다. 먼 곳의 커다란 녹지는 사실 바라보는 대상은 될지언정 내 바로 앞의 다섯 평짜리 마당보다도 쓸모가 적다. 둥그런 형태의 오피스는 어디를 가나 동일한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변화가 없을 것이다. 자연채광은 캘리포니아에서는 독이기에 긴 차양으로 모두 차단하였다. 그래서 태양의 위치가 바뀌어도 내부에서는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연과의 경계를 무너뜨려야한다. 애플사옥은 외부는 그대로 두더라도 가운데 숲과 접한 부분은 남해안의 리아스식 해안처럼 자연과 접하는 면을 늘리고 다양한 형태로 작게 분절된 자연공간을 가깝게 배치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테라스나 발코니를 도입하는 것도 좋다. 2,3층에서 직접 숲으로 내려가는 직통외부계단을 둘 필요도 있다. 건물의 중간 중간에 작은 중정의 도입도 고려해 볼 만하다. 사옥이 만들어 낸 공간구조는 향후 수십 년간 그 회사의 조직과 사회,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옥설계는 회사의 미래를 만드는 중요한 결정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현대건축의 흐름』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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