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말레이반도의 다약과일박쥐는 수컷도 젖 분비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36호 27면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수컷도 수유가 가능할까

포유류의 진화사는 1억 년이 훨씬 넘는다. 그 사이에 주먹만 한 두더지에서 거대한 코끼리까지 그리고 하늘을 나는 박쥐에서 대지를 누비는 인간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포유류가 등장했다. 포유류와 다른 척추동물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젖’이다.

약 5400 종 포유류 중 유일 #남자도 젖 분비할수 있지만 #능력 활용하지 않도록 진화 #젖 분비 호르몬 프로락틴 #남자에게 주입하면 젖 나와

유방은 젖을 생산하여 아기에게 먹이기 위해 생긴 기관이다. 수백만 년의 인류사에서 엄마의 건강은 곧 아기의 건강이었다. 수유를 위해 소모하는 엄마의 에너지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9개월의 임신에 소모하는 에너지는 34만㎉다. 그런데 9개월의 수유에는 무려 67만㎉가 필요하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포유류 어미에게 수유는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비(非)포유류 동물들이 보여 주는 출생 직후의 높은 사망률을 생각하면 수유로 얻는 이득은 상당한 셈이다.

초식동물은 포식자를 경계하고 포식자가 나타나면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젖꼭지가 뒷다리 쪽에 배에 있어서 젖꼭지 주변에 어정거리는 새끼에게 방해받지 않는다.

초식동물은 포식자를 경계하고 포식자가 나타나면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젖꼭지가 뒷다리 쪽에 배에 있어서 젖꼭지 주변에 어정거리는 새끼에게 방해받지 않는다.

유방과 젖

포유동물의 젖은 동물에 따라 최적화되어 있다. 사자의 젖은 영양분이 많고 열량이 높다. 젖을 먹은 사자 새끼는 6~8시간 동안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 사자 젖의 3분의 1 이상이 지방·탄수화물·단백질이고 진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캥거루처럼 새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유대류의 경우에는 젖의 15%만이 영양분이고 나머지는 그냥 물이다. 주머니에 있는 새끼는 아무 때나 젖을 빨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젖은 어떨까? 원숭이와 유인원 그리고 사람을 비롯한 모든 영장류의 젖은 묽다. 유대류보다도 영양분이 적다. 이것은 영장류 역시 유대류처럼 아기를 늘 데리고 다니면서 자주 젖을 먹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양육 패턴이라는 뜻이다. 젖을 자주 물리면 배란이 억제된다. 자주 이동해야 하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삶에 매우 유리했다. 신석기시대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젖을 일찍 끊고 이유식을 먹임으로써 임신을 자주하게 되는 것이 농사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했다.

영장류의 유방은 가슴 위쪽에 있다. 나무 위에서 자주 앉았다 섰다 하면서 수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장류의 유방은 가슴 위쪽에 있다. 나무 위에서 자주 앉았다 섰다 하면서 수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방의 위치도 최적화되어 있다. 영장류는 젖꼭지가 가슴 위쪽에 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무 위에서 지내면서 나뭇가지에 앉았다 섰다 하는 일이 많은 영장류에게는 젖꼭지가 위쪽에 있어야 새끼에게 물리기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소나 사슴 같은 초식동물들은 젖꼭지가 뒷다리 쪽 배에 있다. 젖꼭지가 가슴 쪽에 있으면 새끼가 앞다리 쪽에서 어정거리기 때문에 포식자를 경계하고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재빠르게 움직이는 데 방해되기 때문이다.

배고픈 아기는 운다. 아기의 울음은 엄마가 수유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신호다. 아기가 배고프다는 것은 엄마에게 뭔가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아기의 울음은 자기 엄마가 아니라 집단 안의 다른 여성들을 향한 것이다. 아기가 울면 다른 여성들은 유모를 자처했다. 왜냐하면 아기의 울음소리는 포식자를 부르기 때문이다. 우는 아이를 젖으로 달래는 게 집단의 안전에 유리했다. 지금도 남아프리카의 산(San)족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애보리진(Aborigine) 여성이 보통 3~4년 동안 모유 수유를 하는 것으로 보아 원시 인류는 대개 4년 정도의 수유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왜 수컷은 수유능력이 없는가?

말레이시아와 인근 섬에 살고 있는 다약과일박쥐는 수컷에게서도 젖이 나온다. 사실 모든 포유류 수컷은 수유를 할 수 있는 해부학 및 생리학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인근 섬에 살고 있는 다약과일박쥐는 수컷에게서도 젖이 나온다. 사실 모든 포유류 수컷은 수유를 할 수 있는 해부학 및 생리학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젖은 포유동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왜 여태 젖이 나오는 수컷은 등장하지 않았을까? 왜 모든 수컷은 수유능력이 없단 말인가. 자연은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는데, 왜 남자의 가슴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젖꼭지가 있을까? 혹시 수컷도 수유능력이 있었는데 사라진 것일까?

1994년 과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재 존재하는 포유류 약 5400종 가운데 수컷에게서 젖이 나오는 동물이 드디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말레이반도, 보르네오섬과 수마트라섬에 사는 다약과일박쥐가 바로 그 주인공. 산 채로 잡은 성숙한 수컷 열한 마리 모두 젖샘이 발달해 있었고, 젖이 차서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손으로 짜니 젖이 나왔다.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수컷이 아니었다. 젖을 분비하는 수컷 박쥐의 고환 속에서는 정자가 정상적으로 발달하고 있었다.

적어도 일부 포유류의 경우 수컷 역시 수유에 적합한 해부학적 구조, 생리학적 잠재력과 호르몬 수용체를 가지고 있다. 영장류의 경우 사춘기 이전까지는 암컷과 수컷의 젖샘에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암수의 젖샘에 현저한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것은 호르몬의 영향이다. 수유를 위한 준비는 임신이 시작되어야 완료된다. 임신한 암컷은 유방이 더욱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젖은 아직 나오지 않는다.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 젖 분비를 막기 때문이다. 출산을 하고 아기가 젖을 빨면 옥시토신과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옥시토신은 배란을 억제시키며 도파민은 프로락틴을 분비시킨다. 이 프로락틴이 젖이 나오게 한다.

호르몬의 남녀 차이는 절대적이지 않다. 여성호르몬은 여성에게만, 남성호르몬은 남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에 따라 특정 호르몬의 농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거나 호르몬 수용체가 더 많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호르몬들을 염소와 소에 주입하면 어떻게 될까? 수컷도 유방이 커지면서 젖을 생산한다. 물론 암컷보다는 젖의 양이 훨씬 적기는 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호르몬으로 치료 중인 임신하지 않는 여자와 남자 암환자에게 프로락틴을 주입했더니 유방이 발달하고 젖이 분비됐다. 이 가운데는 64세의 할아버지도 있었다.

남자들도 생리적으로 젖을 분비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런 능력을 활용하지 않도록 진화했을 뿐이다. 출산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아빠가 젖이라도 먹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도대체 어떤 이로움이 있길래 남자들에게서 수유능력이 사라진 것일까?

1972년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정자와 난자라는 두 가지 생식세포의 서로 다른 전략이 암수의 짝짓기와 육아에 영향을 끼쳤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한 가지 사업에 왕창 투자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매달린다. 반면에 여러 사업에 조금씩 투자한 사람은 특정한 사업에 몰두하기보다는 그 가운데 어떤 것 하나만 잘 되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암컷의 난자는 크고, 수컷의 정자는 작다. 암컷은 태아를 뱃속에서 키워야 하며 낳은 뒤에도 젖을 먹여야 한다. 새끼가 자라기까지 소비하는 영양분은 모두 암컷이 제공하는 것이다. 수컷이 제공한 것이라고는 만드는 데 거의 자원이 들지 않는 정자 속의 유전자뿐이다. 정자만 뿌려 놓고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육아에 투자를 하지 않아도 자손과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별 문제가 없다.

당연히 암컷이 육아에 매달리게 된다. 수컷은 가까이 다가오는 적들을 내쫓거나 먹이를 공급하는 쉬운 일을 담당한다. 단독생활을 하는 포유류라면 수컷은 교미 때가 아니면 아무 역할도 없다. 포유류는 동물 중에서 유달리 암컷 홀로 새끼를 돌보는 축에 속한다. 수컷이 새끼를 돌보는 포유류 종은 5%도 안 된다.

육아는 강인함의 상징

영장류는 다르다. 영장류는 대부분 가족이나 무리를 이루어 산다. 그리고 수컷이 육아에 기여하는 비율도 높다. 사람의 경우는 더하다. 자식이 다 클 때까지 애지중지 돌본다. 이혼하거나 아내가 죽은 다음에도 혼자 자식을 키우는 아빠도 있다. 다른 포유류와 달리 사람이 유독 육아에 깊이 참여하는 이유 자식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DNA 검사로 조사해 본 결과 조류의 경우 절반 이상이 다른 수컷의 새끼인데 반해 사람의 경우 단 2%만이 다른 남자의 자식이었다.

자식이 있는 인간 남성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한다. 따라서 근육이 줄어들면서 젊은 시절의 무모한 행동은 피하게 된다. 한편 프로락틴은 증가한다. 덕분에 스스로 더 강해졌다고 느끼면서 여성의 육아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제 시험관 아기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은 없다. 1㎏도 안 되는 미숙아를 인큐베이터에서 정상적으로 키워 낸다. 최근에는 인공자궁에서 염소를 키워 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남성 수유 역시 가능하지 않을까?

단공류 바늘두더지, 알 낳는 포유류 

포유류는 새끼에게 양분을 공급할 젖을 만들어 내는 젖샘이 있는 척추동물이다. 대부분 몸에 털이 있고, 털이 변형된 비늘이나 가시가 있는 것들도 있다. 뇌에서 체온과 혈액 순환을 조절하는 온혈동물이다.

포유류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단공(單孔)류는 알을 낳는다. 단공오리너구리와 바늘두더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단공류라는 이름은 다른 포유류들이 배변, 배설, 생식에 필요한 구멍이 각기 따로 있는 데 반해 단공류는 이 기관들이 모두 배설강이라는 하나의 구멍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점 때문에 단공류는 파충류와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공류는 젖꼭지가 없다. 대신 젖이 피부에서 스며 나온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만 산다.

유대(有袋)류는 말 그대로 주머니가 있는 동물이다. 두 개의 자궁과 육아낭이 있다. 자궁에서 태아를 키울 때 태반이 없으며 육아낭에서 새끼를 키우는 게 특징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그리고 남아메리카에만 존재한다.

나머지 포유류는 모두 유태반(有胎盤)류다. 6600만 년 전 공룡 멸종 사건 이후 1000만 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다양해졌다.

이정모
서울 시립과학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