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론

장기이식법 개정 이후 줄어드는 신장 기증

중앙일보

입력 2017.06.17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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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진탁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2011년부터 개정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하 장기이식법)이 시행된 지도 6년이 흘렀다. 당시 개정된 법에는 ‘비의료기관은 장기이식 대기자 등록을 받지 못하고 의료기관만 등록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새로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2011년 이후 민간단체는 신규 장기 이식 대기자의 등록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민간단체에서 진행하던 신장 이식 결연사업 등이 축소되었고, 환자들의 이식 기회도 줄어들었다. 당시 이러한 법 개정은 ‘장기매매 방지와 이식 대기자의 지속적인 건강관리’라는 이유 아래 진행되었지만 정작 법 시행 후 타인 간 신장 기증만 크게 축소되고, 매매 방지의 역할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신장이식 대기 환자는 느는데
점점 줄어드는 장기 기증인들
장기 매매 근절 위한 개정법이
순수 기증 풍토까지 위축시켜

법이 개정되기 전인 2010년 신장 이식 대기기간은 828일이었으나 2015년 대기기간은 1904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로도 장기매매를 알선한 일당들이 계속해서 적발되는 등 관련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고 있다. 1991년부터 사랑의장기기증본부에서 진행된 생존 시 신장기증 결연사업의 사례를 보면 총 960명의 순수 신장 기증인들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타인을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신장 기증을 했다. 본부가 설립된 91년부터 2010년까지는 매해 평균 45명의 사람이 생존 시 순수 신장 기증을 통해 생명을 살렸다.

장기 기증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우리나라에서 타인을 위해 신장을 기증하겠다는 이들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가족 간 신장 기증도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장기이식법이 생기고 관련 제도가 경직되면서 순수 신장 기증은 점차 감소하게 되었다. 2015년에는 순수 신장 기증자가 7명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국내 장기 이식 대기자는 2만2241명인데 그중 신장 이식 대기자가 1만6011명일 정도로 신장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가 많다. 이들 중 매년 500여 명은 신장 이식을 대기하다 목숨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환자가 장기 이식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데 장기 이식법은 매매 방지를 내세우며 관련 사업을 위축시키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사실 모든 장기 이식 수술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이하 KONOS)의 최종 승인 아래 진행하고 있기에 매매 방지는 신규 이식 대기자 등록기관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KONOS에서 매매 방지를 위한 관리감독 프로그램을 보다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혹은 수술 승인 전에 기증자의 순수성을 평가하는 별도의 기구를 두어 심사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위축된 순수 신장 기증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관련법이 보다 유연해져야 한다. 장기이식법이 재개정되어 이식 대기 환자들에게 이식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창구가 더 많아져야 하고, 순수 신장 기증자의 발굴을 위한 노력도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법이 재개정되어 신규 이식 대기자를 등록받는 창구가 확대되면 가족 교환 신장 기증도 다시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다. 가족 교환 신장 기증이란 신장이식을 받아야 할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하겠다는 가족이 있지만 혈액형 등이 맞지 않아 직접 기증을 할 수 없는 경우 환자는 순수 신장 기증인으로부터 신장을 이식받고, 가족은 또 다른 환자에게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현행법으로는 의료기관 이외의 곳에서는 신규 이식 대기자를 등록받을 수 없어 가족 교환 신장 기증이 실제로 성사되기 쉽지 않다. 법 개정 이전 매해 30여 건에 이르던 가족 교환 신장 기증은 2015년에는 10건일 정도로 축소되었다. 법 재개정을 통해 가족 교환 신장 기증이 활발해지면 한 명의 순수 기증인으로 시작된 신장 기증이 릴레이로 이어질 수 있어 많은 환자가 이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신장 기증의 활성화는 이식 대기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국가에도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예를 들어 만성신부전을 앓고 있는 40세 남성이 신장 이식을 받아 사회에 복귀하게 되면 60세까지만 혈액투석을 받는다고 가정하더라도 4억6000만원 정도의 요양급여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처럼 신장 기증 활성화는 기증인에게는 자부심을, 환자에게는 새 생명을, 국가에는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은 매매방지와 업무편의라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해 재개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매해 정부와 관련 부처에서는 생존 시 타인을 위해 자신의 신장이나 간을 기증한 이들에게 표창을 하고 있다. 이는 국가도 자신을 희생해 생명을 나눈 기증인들의 정신을 높이 산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기증인들의 나눔 정신을 기리는 일은 단발적인 표창이 아니라 기증인들의 마음을 담은 정책과 제도 마련에 있어야 한다.

한 생명을 귀하게 여겨 자신의 장기를 내어준 기증인들의 마음처럼 정부도 이식 대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 하루빨리 이식의 기회를 찾아줄 수 있는 법안과 제도를 연구하고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박진탁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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