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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 출신 사법시험 수석 … 조재연, 대법관 후보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조재연(左), 박정화(右)

조재연(左), 박정화(右)

‘고졸 직장인에서 야간대학을 나온 사법시험 수석 합격자, 그리고 대법관으로….’

조 후보자, 월남한 탄광노동자 장남 #한국은행서 일하며 야간대 다녀 #‘서울대·남성’ 관행 깬 박정화 후보자 #쌍용차 근로자 부당해고 첫 판결

16일 양승태 대법원장에 의해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 제청된 조재연(61·사법연수원 12기) 변호사에게는 ‘상고 출신’ ‘야간 대학’ ‘사시 수석’이라는 수식어들이 따라다닌다. ‘서울대 법대’로 시작하는 기존 대법관 후보들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와 다르다. 이 때문인지 그는 본지 기자의 전화를 받고 “전혀 예상치 못했다” 고 말했다.

조 후보자는 1974년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입사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상고 진학은 선친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함경남도 원산에서 피란 와 강원도 일대에서 탄광과 벌목장에서 닥치는 대로 일해 가족의 생계를 꾸렸다.

가난한 수재들이 모이는 덕수상고를 나와 안정된 직장을 얻었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이 풀리지 않았다. 방송통신대 경영학과를 다니다가 76년 성균관대 법학과 야간에 입학해 못다 한 학업을 이어갔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의 시간 끝에 80년 대학을 졸업한 해에 치른 22회 사법시험에서 그는 수석을 차지했다. 안타깝게도 부친은 그의 합격 소식을 듣지 못했다. 같은 해 중풍으로 쓰러져 작고했다. 이후 장남으로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보는 가장이 된 그는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하다 11년 뒤인 93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

판사 시절에는 여러 시국 사건에서 소신 판결을 남겼다. 전두환 정부 때인 85년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내용의 ‘민중달력’을 제작해 배포한 이들에게 검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자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들며 기각했다. 야당 의원들의 국회 발언을 모은 『민주정치1』이라는 서적을 출간했다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즉심에 회부된 출판사 대표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이 때문에 ‘반골 판사’로 불리기도 했다. 조 후보자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남은 임명 절차를 성실히 준비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조 후보자와 함께 제청된 박정화(51·20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남성 중심의 사법연수원 기수·서열 관행을 깬 발탁 인사로 평가된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8명의 후보 중 나이가 가장 어리고 사법연수원 기수도 가장 낮았다. 광주중앙여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박 후보자는 서울행정법원의 첫 여성 부장판사란 기록을 갖고 있다.

박 후보자는 노동 관련 재판에서 근로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판결로 주목받았다.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쌍용자동차 근로자에 대해 부당해고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먼저 신고된 ‘유령집회’ 때문에 나중에 신고된 집회를 금지해선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개혁을 주도했던 진보 성향 법관들의 학술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이기도 하다. 그와 대학 동문인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은 “꼼꼼하고 공평한 재판 진행으로 법원 안팎에서 신망이 높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대법관 후보 지명에 대해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대법관의 다양성을 확보한 탁월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의 당연직 위원인 정용상(동국대 법학과 교수) 한국법학교수회장도 “이념적 성향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명분을 살린 양승태 대법원장의 묘수”라고 평했다.

두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와 임명 동의를 거쳐 문재인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면 대법관이 된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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