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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면피에 급급한 서울대병원, 원칙도 신뢰도 무너져

중앙일보

입력

“생각보다 많은 취재진이 자리해서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2시 서울대병원,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外因死)’로 수정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나온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회견장으로 사용된 소아 임상 제2강의실은 177석 중 3분의 1이 취재진으로 차 있었다.

15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씨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에서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씨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변경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에서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는 병사를 뜻하는 ‘급성경막하출혈로 인한 심폐 정지’에서 외인사를 뜻하는 ‘외상성격막하 출혈로 인한 급성신부전’으로 변경됐다. 병원 측은 “병사로 기록한 최초 사망진단서는 관행에 따른 오판이었다. 면밀한 검토를 통해 수정했으며 정치적 외압은 없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숭덕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입원 기간이 한 달을 넘어가면 대부분의 임상의사들은 병사로 기록한다. 적절치 못한 상황이지만 그동안 현실이 그랬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현실, 즉 관행이었단 설명이다.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에 대해선 “내가 동기이기 때문에 안다. 정치적 외압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관행에 따라 병사로 기록했고 외압은 없었다”는 거다.

이에 대해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런 관행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망진단에서 중요한 건 기간이 아니라 인과관계”라며 “어떤 경우라도 선행사인이 급성경막하출혈이면 자살이든 사고사든 외인사로 표현해야 한다는 게 진단서 작성지침에 나온 내용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남기 농민의 빈소에 조문을 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남기 농민의 빈소에 조문을 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포토]

사망진단서를 수정 발표한 시점을 두고서도 논란이 일었다. 기자회견이 열리기 하루 전인 14일, 감사원은 서울대병원에 대한 기관운영 감사에 들어갔다. 2008년 이후 9년 만이다. 이번 감사에서는 백남기 농민 사망 진단서 작성 논란, 지난 정부의 청와대 주치의로 활동한 뒤 지난해 2월 병원장에 선임된 서창석(56)원장에 대한 ‘낙하산 인사’ 의혹 등이 주요 조사대상이 될 전망이다.

병원 측은 “공교롭게도 감사 날짜와 진단서 수정 날짜가 겹쳤을 뿐 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사망진단서에 관한 논의는 지난 1월부터 시작됐고 교수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듣고 조율했을 뿐이다”며 “500명의 의사가 모인 서울대 병원은 각자의 의견이 서로 다를 뿐더러 그런 일을 벌일 만큼 타락하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발표를 맡은 김연수 부원장은 20분 만에 회견을 마무리하려 했지만 “이해할 만한 설명이 전혀 없었다”는 기자단의 항의에 질의 응답시간은 40분 가까이 늘어났다. 40분 내도록 기자단의 질문과 병원 측의 답변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최초 사망진단서가 병사로 기록된 이유’, ‘진단서를 수정한 시점’에 관해 물으면 ‘관행’과 ‘우연’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 부원장은“더 궁금한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추가로 질문을 받겠다”며 3차례에 걸쳐 추가 질문을 받았지만 ‘관행’과 ‘우연’에서 더 들어간 설명은 없었다. 이날 회견에 서창석 병원장은 ‘정식 기자회견이 아닌 일반 간담회’라는 이유로 불참했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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