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 속으로] 3만원에 체험하는 카레이싱 … 스피드보다 안전이 먼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현대드라이빙스쿨 참가기

지금은 다소 엄격해졌지만 한국의 운전면허엔 ‘물면허’란 별칭이 붙었다. 직각주차(T 코스)는 ‘운전대 두 바퀴 반 돌리고 후진’ 등 일종의 ‘공식’만 외우면 됐다. 주차 브레이크 당기는 것을 깜빡해 시험에 떨어질 정도였다.

교관 전원 프로 레이서 #급커브·젖은 노면 등 주행기술 익혀 #“긴급 상황서 무의식적으로 대처” #길이 구불구불할 때 #페달을 살짝 놓거나 브레이크 밟고 #시야 넓게 확보해야 안전하게 통과 #노면이 미끄러울 때 #핸들을 역방향으로 꺾은 후 원위치 #뒷바퀴가 밀려 접지력 잃는 것 막아

운전면허증 소지자 3000만 명 시대가 열렸지만 주행 중 갑자기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미지수다.

이런 ‘물면허’ 운전자들이 제대로 된 운전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현대자동차가 운전 기술 향상을 위해 부정기적으로 개최하는 현대드라이빙아카데미다. 본지 기자도 참가비 3만원을 내고 10일 현대드라이빙아카데미에 참가했다.

현대드라이빙아카데미 참가자들이 정의철 교관(오른쪽)의 지시에 따라 아반떼 스포츠를 몰고 노면이 젖은 상황에서 단 한 번 브레이크를 밟아서 정지선 앞에 정확히 멈춰 서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문희철 기자]

현대드라이빙아카데미 참가자들이 정의철 교관(오른쪽)의 지시에 따라 아반떼 스포츠를 몰고 노면이 젖은 상황에서 단 한 번 브레이크를 밟아서 정지선 앞에 정확히 멈춰 서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문희철 기자]

안개가 자욱한 토요일 오전 7시30분. 행사가 열리는 경기도 화성 오토시티 분위기는 생각과 전혀 달랐다. 운전면허학원처럼 친절한 강사가 두 손을 흔들면서 인사할 것이라고 상상했지만 강렬한 스키드 마크(skid mark·노면의 검은 타이어 자국)와 한 치 오차 없이 ‘칼 대오’로 나열한 현대차 수십 대가 전조등을 켜고 맞이했다.

현대드라이빙아카데미 참가자는 51명(3명 불참). 2만 명이 신청했는데 입금 순으로 54명만 선발했다고 한다. 이 중 운전면허학원을 생각하고 온 사람은 기자뿐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폭발적인 배기음과 엔진소리, 아찔하게 추월할 때 터져 나오는 함성 등 카레이싱에 대한 로맨스를 실현하기 위해 ‘광클(빠르게 클릭한다)’한 사람들이 주로 모였다. 한 참가자는 “카레이싱은 참가비만 80만원에 타이어 10짝 가는 비용도 300만원은 드는 걸로 안다”며 “이번 아카데미는 비용은 물론 차량 고장, 손상 걱정 없이 마음대로 차를 운전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참가 동기를 설명했다.

10일 현대드라이빙아카데미가 열린 화성 오토시티 앞에 도열한 아반떼 스포츠 차량.

10일 현대드라이빙아카데미가 열린 화성 오토시티 앞에 도열한 아반떼 스포츠 차량.

젖은 노면, 슬라럼(slalom), 원 선회 등 커리큘럼만 보면 카레이서 양성 과정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대드라이빙아카데미는 더 큰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연습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실제로 교육 과정에서 강사들이 가장 강조한 건 안전 운전 방법이었다.

카레이서 8년차인 박규승 현대드라이빙아카데미 교관은 “도로에서 가끔 이상하게 운전하는 사람을 만나면 확 받아버리고 병원에서 쉬다 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서도 “막상 차가 들어오면 무의식적으로 몸이 대처를 해버리는 바람에 사고가 안 나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기자 같은 ‘물면허’ 운전자에게 드라이빙아카데미가 꼭 필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조훈현 현대드라이빙아카데미 수석교관이 올바른 자세로 운전석 시트에 앉은 모습을 직접 보여줬다.

조훈현 현대드라이빙아카데미 수석교관이 올바른 자세로 운전석 시트에 앉은 모습을 직접 보여줬다.

예컨대 운전석의 의자를 조정하는 일은 너무 사소해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훈현 수석교관은 “운전자는 노면을 몸으로 느끼는데, 노면을 인체에 전달하는 직접적인 통로가 바로 의자”라고 말했다.

계기판과 눈높이를 조절하려면 천장에 주먹이 하나 들어갈 정도로 높이를 조절하라거나 안전벨트를 쇄골에 맞춰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기자는 왼발을 의자에 올리고 운전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조훈현 수석교관 덕분에 풋레스트(footrest·브레이크 페달 좌측에 왼쪽 발을 올려놓는 공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는 “긴급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강력하게 조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왼발이 풋레스트에 고정돼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긴급제동구간에서 왼발이 풋레스트에 올라가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제동거리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긴급제동구간은 40~50㎞로 주행하다가 차량을 최단거리에 정지시키는 연습을 하는 곳이다. 비에 젖은 노면이나 마른 노면 등 상황을 바꾸기도 하고, 매번 다른 위치의 고깔 모양 러버콘(rubber cone) 바로 앞에서 정차하며 브레이킹을 연습했다. 교관들은 “브레이크가 부러지면 아반떼를 준다”고 농담하면서 “브레이크가 부러지도록 밟으라”고 강조했다.

과거 운전하다가 대형 교통사고를 경험한 적이 있는 기자는 러버콘이 꽤 멀리 있는 상황에서 매번 급브레이크를 밟아 교관들을 당혹시켰다. 기자가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전난희 교관이 다가와 “도로에서 빨간불 신호가 들어올 때 단 한 번만 밟아서 정확히 정지선 바로 앞에 멈추는 연습을 하면 브레이킹 감을 효과적으로 익힐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운전대를 두 바퀴 꺾은 상태에서 원형으로 차량을 계속 돌리는 원선회 구간에서는 언더스티어(understeer·자동차가 코너링하면서 가속할 때 목표 지점보다 바깥쪽으로 튀어나가는 현상) 대처 방법을 배웠다. 30㎞로 달리다가 가속할수록 차량이 회전하는 반경이 확실히 커졌다. 이럴 때 가속페달을 살짝 놓거나 브레이크를 밟아 주면 언더스티어를 억제할 수 있다. 요즘 운전자들 중에는 자동차의 성능만 믿고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급커브를 도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럴 경우 타이어의 한쪽 단면이 마찰로 납작해지거나 심할 경우 차체가 뒤집어질 수 있다. 코너링에서 감속이 중요한 이유다. 교관들은 차량에 비치한 무전기로 ‘차체를 안쪽으로 더 붙여라’ ‘운전대를 덜 꺾어라’는 식으로 운전법을 일러 줬다.

바닥에 비눗물을 뿌린 저(低)마찰로 주행에서는 브레이크만으로 장애물을 피하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바닥이 워낙 미끄러워 차량이 코너를 돌면서 가속을 하면 뒷바퀴가 순간적으로 바깥쪽으로 쭉 밀리는데(오버스티어·oversteer), 이런 현상을 처음 경험한 기자는 당황해 러버콘을 줄줄이 치고 달리면서 코스를 이탈했다. 힐끔 교관 눈치를 봤더니 “시선은 전방을 유지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반떼 같은 전륜구동 차량의 경우 가속페달을 밟을 때 앞바퀴가 눌리고 뒷바퀴가 살짝 뜨면서 접지력을 잃는다. 이때 노면이 미끄러우면 뒷바퀴가 밀려서 오버스티어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순간적으로 운전대를 주행 중인 방향의 역방향으로 확 꺾었다가 원위치 하는 기술(역핸들·counter steer)이 필요하다.

러버콘을 일정 간격으로 배치해 지그재그로 통과하는 슬라럼은 차량의 길이와 폭에 익숙해지고 운전대를 정교하게 조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교관들은 슬라럼 구간 대처 요령으로 시야를 넓게 확보하라고 강조했다. 장애물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노동기 교관은 “포수가 공을 미리 보고 있어야 미트로 공을 잡는 것처럼 미리 다음 장애물(러버콘)을 봐야 차선을 급히 변경해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교육이 끝나고 교관이 직접 운전하는 차량의 조수석에 시승하는 기회(택시 드라이빙)도 주어졌다. 알고 보니 교관 전원이 레이싱 대회 수상 경험이 있는 프로 레이서였다. 한 참가자는 지난해 ‘올해의 드라이버상’ 수상자 정의철 교관의 차량에 탑승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가속과 브레이킹·코너링 등 교관의 차량은 참가자들이 몰던 것의 움직임과 차원이 달랐다. 행사 참가자인 자동차블로거 윤모(30)씨는 택시 드라이빙에서 “정말 내가 몰던 것과 같은 차량이냐”며 “i30가 엄청나게 저평가된 차량이었다”고 탄성을 내질렀다.

교육 효과는 당장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확실히 느꼈다. 시동을 켜자 “레이싱의 두 번째 목표가 스피드라면 첫 번째 목표는 안전”이라던 정훈현 수석교관의 말이 떠올랐다. 무리한 차선 변경을 자제하고 긴급 상황 대처 방법을 되새기면서 주행했다. 레이서를 꿈꾸지 않는 평범한 ‘물면허’ 운전자가 드라이빙아카데미에서 받은 선물이었다.

[S BOX] 기초·중급·레이스 클래스 수료하면 경주대회 참가 가능

현대드라이빙아카데미는 체계적인 과정을 마련해 평범한 일반인도 카레이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단계별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하면 진짜 카레이서가 될 수 있다.

중앙일보 기자가 참가한 ‘펀&세이프티 클래스(Fun and Safety Class)’는 가장 기초 과정이다. 주로 안전한 주행 능력을 확보하고 차량을 컨트롤하는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서 기초 교육을 진행한다. 이 과정을 수료하면 중급 과정인 ‘스포트 클래스(Sport Class)’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 강원도 인제 등 실제 서킷에서 진행을 교육한다. 서킷 체험까지 성공적으로 수료한다면 진짜 레이싱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레이스 클래스)가 주어진다. 여기서는 국내 최고 레이서들이 교관으로 참여해 레이싱 테크닉을 일러준다.

레이스 클래스까지 수료하면 ‘아반떼컵’이라는 경주대회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진다. 국내 최대 완성차 업체 현대차가 주최하는 레이싱 대회다. 아반떼컵은 일반인이 겨루는 ‘챌린지 레이스’와 레이싱 경력자가 겨루는 ‘마스터스 레이스’가 있는데, 이 중 챌린지 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다. 여기서 입상할 경우 인제 스피디움 서킷에서 열리는 KSF(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에 참가할 수 있다. 아마추어 레이서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낸다면 전문 레이서 자격으로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에서 운전을 할 수 있다. 만약 우승할 경우 현대차는 1년 동안 연 4000만원으로 추정되는 참가 비용을 전액 후원한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