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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베스트] 국가폭력에 맞선 쇼스타코비치의 예술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이달부터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마이 베스트’를 선정합니다. 직전 달 출간된 신간 중 콘텐트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 등을 고려해 뽑은 책들로, 단순히 판매 부수만 계산한 베스트셀러와는 순위가 다릅니다. 중앙일보 출판팀 세 명의 기자와 교보문고 북마스터·MD 23명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다산책방
272쪽, 1만4000원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지난해 최신작이다. 소음의 반대편, 정돈된 음악의 세계에서 한 정점에 올랐던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1906~75)의 예술과 인생을 복원 시도한 장편소설이다. 음악가 누구나 그렇겠지만, 쇼스타코비치 역시 소음을 극도로 싫어했고 그를 괴롭혔던 소음은 시대적이었다는 게 제목에 잠겨 있는 뜻이다. 철권통치자 스탈린, 간교한 흐루쇼프가 이어 집권한 1920~60년대 소비에트 러시아, 폭력을 앞세운 공산이념이라는 시대의 소음이 어떻게 천재 예술가의 영혼을 멍들게 했는가를 추적한다.

자연스럽게, 예술을 한낱 체제 수호를 위한 정치적 선전·선동 도구로 여겼던 소비에트 예술정책이 도마에 오른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예술상은 어떤 것인가, 예술이 복무해야 하는 대상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점이 이번 소설의 핵심 관심사다. 쇼스타코비치 마니아라면 재미와 감동이 두 배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심지어 예술과 정치의 상관관계에 흥미가 덜한 독자라도 이 책을 멀리할 이유는 없다. 국가폭력과 대치했던 쇼스타코비치의 ‘예술혼’을, 보다 보편적인 ‘시민의 양심’쯤으로 치환하면 어쨌든 정치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무거운 주제지만 소설은 딱딱하지 않다. 방대한 자료를 충분히 숙성시켜 대상을 확실히 장악한 느낌을 주는 반스 특유의 소설 작법 덕분이다. 가령 젊은 시절 쇼스타코비치는 한 창녀에 빠져 결혼 직전까지 갔었다. 윤리 감각이 정상은 아니었다. 남들은 찍소리도 못하는 스탈린과의 전화 통화에서 대담하게 자기 작품의 해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단순, 강직하기보다 복잡, 착잡했던 인물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그렇다고 인물에 감정이입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위대한 음악가가 처했던 평생의 어려움을 논리적으로 따져보게 하는 소설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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