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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다시보기] 여름엔 평양냉면? 줄서 먹는 함흥냉면집도

중앙일보

입력

맛대맛 다시보기⑨오장동흥남집
매주 전문가 추천으로 식당을 추리고, 독자 투표를 거쳐 1·2위 집을 소개했던 '맛대맛 라이벌'. 2014년 2월 5일 시작해 1년 동안 77곳의 식당을 소개했다. 1위집은 '오랜 역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집이 지금도 여전할까, 값은 그대로일까. 맛대맛 라이벌에 소개했던 맛집을 돌아보는 '맛대맛 다시보기' 9회는 냉면(2014년 7월 2일 게재)이다.

여전한 오장동흥남집 인기

함흥냉면은 매콤하게 양념해 얹은 꾸미(고명의 북한말)가 특징이다. 오장동흥남집은 간재미(가오리)를 식초에 하루 동안 절여 꼬들꼬들한 식감을 살렸다. 김경록 기자

함흥냉면은 매콤하게 양념해 얹은 꾸미(고명의 북한말)가 특징이다. 오장동흥남집은 간재미(가오리)를 식초에 하루 동안 절여 꼬들꼬들한 식감을 살렸다. 김경록 기자

서울 오장동 중부시장 앞은 여름마다 사람으로 북적인다.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건 냉면. 오장동흥남집을 비롯해 신창면옥, 오장동 함흥냉면 등 냉면집이 모여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함흥냉면 전문점이라는 것이다. 2~3년 전부터 평양냉면이 인기를 끌지만 여전히 오장동 냉면거리엔 함흥냉면을 찾는 사람이 많다. 6·25 전쟁 후 오장동엔 북한에서 피난 내려온 실향민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이 냉면과 순대 등 북한에서 먹던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처음엔 동네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점차 '맛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서울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3대 잇는 원조 함흥냉면집  

오장동흥남집의 섞임냉면. 간재미무침과 쇠고기를 함께 얹어낸다. 송정 기자

오장동흥남집의 섞임냉면. 간재미무침과 쇠고기를 함께 얹어낸다. 송정 기자

오장동흥남집은 냉면거리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6·25때 피난 온 고(故) 노용언(1991년 작고) 할머니가 1953년 쓰러져가는 판자집에 자신의 고향인 흥남을 내건 간판을 붙이소 장사를 한 게 시작이다. 처음부터 냉면을 판 건 아니었다. 면에 따뜻한 국물을 부어주는 잔치국수를 팔았다. 단골 손님 대접하느라 어쩌다 내놓은 냉면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냉면을 팔기 시작했고 그게 대표 메뉴로 굳어졌다. 노 할머니의 며느리 권기순(79)씨의 기억 속 노씨는 뭐든지 주물럭주물럭 하면 금세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냈다.

한국 첫 여성 지폐 모델

1962년 발행된 100환 화폐. 2대째 가게를 꾸린 권기순씨와 아들 윤재순씨가 모델로 등장했다. 김경록 기자

1962년 발행된 100환 화폐. 2대째 가게를 꾸린 권기순씨와 아들 윤재순씨가 모델로 등장했다. 김경록 기자

스무살이던 1959년 결혼과 함께 가업을 잇기 시작한 권씨에겐 독특한 이력이 있다. 바로 지폐에 등장한 한국 최초의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62년 5월에 발행된 100환(현시세 10원)짜리 지폐에 아들과 함께 모델로 등장했다. 비록 3차 화폐개혁 조치로 25일 만에 유통이 끝났지만 한국 화폐 역사에 족적을 남겼다. 결혼 전 화국조폐공사에서 일했던 권씨는 어느 날 동료의 "아들과 함께 사진 찍어줄테니 덕수궁으로 나오라"는 전화에 사진 찍으러 갔다 모델이 됐다. 당시 정부가 저축운동을 전개하며 저축 홍보를 하기 위해 모자 모델을 찾았는데 권씨가 선정된 것이다. 한 살배기 아들과 사진 수십 장을 찍었고 그중 하나가 100환짜리 지폐에 실려 발행됐다. 당시 화폐에 함께 등장한 권씨 아들 윤재순(56)씨는 아내 원귀연(54)씨와 함께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간재미무침 올린 회냉면

고구마 전분만으로 반죽해 면을 뽑는다. 사진은 면을 뽑아내는 모습. 김경록 기자

고구마 전분만으로 반죽해 면을 뽑는다. 사진은 면을뽑아내는 모습. 김경록 기자

오장동흥남집은 예전 맛을 내기 위해 요즘도 매일 면을 직접 뽑는다. 함흥냉면은 밀을 쓰는 평양냉면과 달리 고구마·감자 전분으로 면을 뽑는데 오장동흥남집은 고구마 전분만으로 면을 뽑아 면이 더 쫄깃하다. 면은 대량으로 만들어 놓지 않고 면이 떨어질 때마다 새로 반죽해 면을 뽑는다. 참기름도 직접 짜서 쓰고 육수는 사골을 푹 우려내 사용한다. 꾸미(고명을 뜻하는 북한말)로 올리는 간재미(가오리)는 식초에 하루 동안 절여 놨다 양념에 버무려 사용한다. 원래 홍어를 올렸지만 2000년대 후반 홍어 어획량이 줄면서 수급이 어려워져 간재미로 바꿨다.

시장서 돼지고기 함께 먹기도

60여년의 세월을 지켜온 만큼 오랜 단골이 많다. 나이 지긋한 실향민뿐 아니라 이들의 자녀까지 대를 이어 찾아온다. 오랜 단골들 사이에선 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건너편 시장에서 돼지고기 삶은 걸 사와 비빔냉면과 함께 먹는 것이다. 지금은 냉면 중에서도 간재미(가오리)를 무쳐 함께 비벼 먹는 회국수가 대표 메뉴지만 처음엔 돼지고기 삶은 것을 함께 냈다. 전쟁 직후 구할 수 있는 게 돼지고기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맛을 잊지 못해 시장에서 돼지고기 삶은 걸 사와 비빔냉면과 함께 먹는 거다. 3년 전부터 손님들의 건강을 생각해 냉면 육수 간을 약하게 한다. 단골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건 역시 오래된 직원들이다. 직원 중에는 30~40년씩 함께 일한 직원들이 절반에 가깝다. 올 때마다 봐 온 직원들을 사장으로 착각하는 일도 있다.

창업주 고(故) 노용언 할머니가 그려진 간판. 김경록 기자

창업주 고(故) 노용언 할머니가 그려진 간판. 김경록 기자

오장동흥남집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비슷하게 흉내낸 냉면집도 많다. 그러나 원조 오장동흥남집은 오장동과 신림동 단 두 곳뿐이다. 신림동은 권씨 작은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 만약 오장동흥남집인지 헷갈린다면 간판을 보면 된다. 노용언 할머니가 그려져 있다면 제대로 찾은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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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메뉴: 회냉면·비빔냉면·섞임냉면·물냉면·온면 각 1만원씩·개점: 1953년 ·주소: 중구 마른내로 114(오장동 101-7) ·전화번호: 02-2260-0735 ·좌석수: 220석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30분(둘째·넷째 수요일 휴무) ·주차: 주변 묵정공원주차장(2인 이상 식사시 30분 주차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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