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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시드니서 가장 ‘힙’한 명소? 오페라하우스 아닌 이곳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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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옛날 맥주공장 노동자들이 살던 치펀데일 지역의 주택들은 커피·디저트·신발 등을 파는 상점이 됐다.

옛날 맥주공장 노동자들이 살던 치펀데일 지역의주택들은 커피·디저트·신발 등을 파는 상점이 됐다.

호주 시드니는 익숙한 여행지다. 호주의 랜드마크 오페라하우스와 달링 하버, 그리고 하버 브리지까지. 하지만 이런 곳은 철저히 관광객용이다. 시드니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인 곳은 따로 있다. 센트럴 기차역 근처 치펀데일(Chippendale) 지역이다.

호주 젊은이들이 찾는 치펀데일 #200년 된 맥주공장이 호텔로 변신 #노동자 주택은 레스토랑·카페로 #크고 작은 갤러리 20여 곳 옹기종기 #아시아 음식골목엔 한국 김밥집도

아무 볼 것 없는 낡은 벽돌 건물만 즐비하던 이곳이 요즘은 시드니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가장 ‘힙’한 곳이 됐다. 대체 무슨 매력이 있는 걸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치펀데일을 찾아갔다.

치펀데일은 시드니공과대학(UTS) 길 건너편 센트럴파크 애비뉴 쇼핑센터를 시작점으로 뒤편 10여 개의 작은 블록으로 이뤄진 작은 동네다. 과거엔 커다란 맥주 브루어리(공장)와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못사는 동네였지만 지금은 감각적인 레스토랑과 카페, 갤러리까지 갖춘 명소가 됐다. 공장지대에서 가장 트렌디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서울 성수동을 떠올리면 된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 관광청 로라 켈리 홍보매니저는 “호주 젊은 층은 오래된 건물을 활용한 장소를 가장 트렌디하다고 생각한다”며 “오래된 공장과 주택가였던 치펀데일에 들어서는 작은 가게들이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 준다”고 말했다.

치펀데일이 시드니 도시재생의 대표 동네로 떠오른 데는 이곳에 속속 모여든 감각적인 젊은 예술가들은 물론 지역사회의 노력도 한몫했다.

빛바랜 붉은 벽돌, 군데군데 허물어진 벽

치펀데일 지역이 시작되는 켄싱턴 스트리트 초입에 낡은 붉은 벽돌 건물 ‘올드 클레어 호텔’이 있다. 1810년부터 맥주 브루어리(공장)로 쓰이던 건물을 호텔로 만들었다.

치펀데일 지역이 시작되는 켄싱턴 스트리트 초입에 낡은 붉은 벽돌 건물 ‘올드클레어 호텔’이 있다. 1810년부터 맥주 브루어리(공장)로쓰이던 건물을 호텔로 만들었다.

치펀데일 여행은 럭셔리 부티크 호텔인 ‘올드 클레어 호텔’에서 시작한다. 과거 이 지역 경제를 담당했던 맥주 공장 ‘더 켄트 브루어리’ 건물을 호텔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큰길인 브로드웨이 스트리트에서 치펀데일 지역으로 들어가는 켄싱턴 스트리트 초입에 다다르자 군데군데 색이 바랜 붉은 벽돌 건물의 호텔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옆의 수십 층짜리 센트럴파크 애비뉴 쇼핑센터나 길 건너편 UTS의 현대적인 건축 디자인과 비교하면 4층짜리 호텔은 작고 낡았다. 하지만 잘 꾸민 집에 바랜 낡은 사진 한 장 붙여 놓은 것 같은 풍경이 오히려 더 멋스럽게 보였다.

이 호텔은 1810년 호주 이민자 숙소로 처음 지어졌다가 1830년대 중반 맥주 브루어리가 됐다. 이후 100년 넘게 맥주를 생산해 오다 경영 악화로 공장이 문을 닫은 뒤 호텔이 됐다. 원래 공장 건물과 공장 맞은편에 있던 호텔 건물을 이어 지금은 한 채의 호텔로 쓴다.

외관은 오래된 맥주 공장 그대로다. 내부엔 호텔이 들어섰지만 빛바랜 붉은 벽돌로 지어진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 외벽은 그대로 살렸다. 내부 역시 말끔하게 뜯어고친 게 아니라 군데군데 허물어진 벽은 물론 의자나 장식장 등 옛것을 그대로 둬 오래된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다만 거기에 금속 소재를 활용한 간결한 디자인을 가미해 전체적으로는 세련된 느낌을 준다.

건물 자체도 유명하지만 특히 옛 호텔 1층에 있던 펍(pub)은 맥주 공장의 일꾼들이 드다들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아 마치 무성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낡아서 더 좋다

올드 클레어 호텔을 뒤로하고 켄싱턴 스트리트를 따라 5분쯤 걸어가다 보면 공장 노동자들이 살았던 조그마한 주택가가 나온다. 지금은 레스토랑과 카페 등으로 변신한 동네다. 가난한 공장 노동자들의 집이었던 탓에 건물은 작고 다 똑같이 생겼지만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직접 만든 수제 초콜릿이나 디저트용 케이크, 직접 디자인한 구두를 파는 등 작고 특색 있는 물건이 가득 차 있다.

켄싱턴 스트리트 뒤쪽엔 주택 여러 채를 개조해 아시아 음식 거리로 만든 ‘스파이스 앨리’가 있다.

켄싱턴 스트리트 뒤쪽엔 주택 여러 채를 개조해아시아 음식 거리로 만든 ‘스파이스 앨리’가 있다.

이 상점 뒤편으로는 아시아 음식 골목 ‘스파이스 앨리’가 있다. 이곳 역시 노동자들이 살던 작은 주택단지를 개조해 만든 곳으로, 좁은 골목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한국식 김밥집을 포함해 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일본 등 아시아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장소가 좁아 음식은 모두 골목에 있는 테이블에서 먹어야 한다. 밤이 되면 오래된 건물과 얼기설기 드리워진 조명의 독특한 분위기를 즐기려는 시드니 젊은이들이 모여든다.

최근 시드니에서 가장 인기라는 치펀데일의 디저트 가게 ‘코이’의 코코넛 케이크.

최근 시드니에서 가장 인기라는 치펀데일의 디저트 가게 ‘코이’의 코코넛 케이크.

스파이스 앨리 끝자락에 있는 디저트 카페 ‘코이’는 특히 최근 시드니에서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카페다. 2016년 초 TV 요리 경연 프로그램 ‘2015 마스터 셰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톱4까지 올랐던 20대의 셰프 레이놀드 포에노모가 차린 가게로, 매일 문을 닫는 오후 10시까지 그의 디저트를 먹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젠 주택가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갤러리를 찾을 차례다. 치펀데일에는 크고 작은 갤러리 20여 개가 있다.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상대적으로 집세가 싼 덕분에 인근 UTS 학생을 비롯한 20대 가난한 예술가들의 주거지가 됐다. 치펀데일에서 아트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에밀리아 콜리버 컬처 스카우트 대표는 “이곳에 사는 예술가가 늘면서 자연스레 갤러리가 생겨났다”며 “2010년부터는 지역 사회가 이곳을 치펀데일창조구역(CCP)이라 이름 붙이고 예술·문화 프로그램 운영을 장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갤러리 역시 대부분 주택이나 오래된 상가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2012년 처음 이 지역에 자리를 잡은 ‘갤러리 폼폼’은 상가 1층의 조그만 매장을, 혁신적인 예술 전시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한 ‘화이트 래빗 갤러리’는 몇 개의 주택을 합쳐 사용한다.

갤러리를 거쳐 다시 켄싱턴 스트리트로 돌아와 올드 클레어 호텔 1층 카페에 앉았다. 200년의 시간이 녹아 있는 곳에서 마시는 달콤쌉싸름한 호주식 커피 플랫화이트 한 잔만으로도 이날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시드니=글·사진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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