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리에 모인 '왕년의 조폭'들..."남들은 깡패라고 해도"

중앙일보

입력 2017.06.15 21:09

업데이트 2017.06.21 18:19

14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1층 연회장에 백발의 노인들이 모여들었다. "형님 잘 지내셨어요?", "언제 퇴원했어?" 서로의 안부를 묻는 평범한 인사가 30~40여명에 이르는 노인들 사이에서 오갔다.

[사진 중앙일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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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50대 이하는 초대하지 않았어"

한때 동대문 일대에서 폭력조직 종진이파를 이끈 이종진씨가 연회장을 두리번거리는 기자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한때 일본 조폭 야쿠자 등과 결탁해 호텔 나이트클럽 운영권 다툼 등을 벌여온 인물이다. '애들은 부르지 않았다'는 이날 그의 모친 구순잔치가 시작됐다. 이종진씨와 알고 지냈던 '왕년의 조폭'들이 곧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남들은 뭐 건달 깡패라고 하지만 우리들은 다 좋은 일 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려운 사람들 돕고."

연회에서 이씨는 기자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연회장 가장 뒷줄은 한눈에 봐도 분위기가 달랐다. 다른 테이블과 달리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자리에 앉거나 선 이들의 시선은 모두 한 사람을 주목하고 있었다.

[사진 중앙일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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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양복 상·하의를 입은 백발의 노인. 신상현씨. 김두한, 이정재 등과 한 시대를 살았다는 '왕년의 보스'도 이씨 모친의 잔치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의 별명은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신상사파의 보스 '신상사'다.

신상사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영화 등을 통해 잔인한 폭력조직의 이미지가 대중에 각인돼 있지만, 40~50년대 명동의 주먹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신씨의 증언이다.

2013년 월간중앙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1950년대 명동에는 건달과 공권력 간에 긴장이나 갈등이 없었습니다. 피를 부르는 싸움이 드물었고, 일단 매를 맞은 사람이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경찰서에서 방면됐습니다. 당시 주먹세계에 '낭만'이 있었다는 건 간달 간의 싸움에도 금도가 있었다는 겁니다"라며 당시를 화상했다.

신씨는 1932년 서울 관수동에서 태어났다. 1949년 군에 입대해 1953년 군을 나왔다. 당시 그의 계급은 특무대 1등 상사. 그가 신상사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다. 이후 그는 대구를 떠나 서울 명동으로 올라왔다. 50~60년대 초 그의 무대는 명동이었다.

극장 우미관을 중심으로 한 김두한, 동대문의 이정재, 명동의 이화룡·이정팔이 당시 그와 함께 서울에서 활동했던 싸움꾼들이었다. 그러나 신씨는 1957년 '장충단공원 야당 집회 방해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2002년의 SBS 드라마 '야인시대'는 그를 '오상사'로 묘사했다. 장충단 사건이나 황금마차 습격사건, 충정로 도끼사건 등 그가 등장했던 서울의 그림자, 서울의 뒷편이 공권력의 조서에서, 혹은 드라마에서 그려졌다.

조폭 전문가인 안흥진 서울지방경찰청 범죄수사연구관은 "원로 조폭들은 실제 사업권 개입 분쟁과 같은 일에 뛰어든다기 보다는 서로 집안 경조사를 챙기면서 세력을 과시하는 수준"이라며 "과거 행적에 대한 나름의 소회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중고차 매매 시장이나 지역 군소언론, 장애인 인권단체 등을 위장막으로 삼아 부당한 수익을 노리고 있는 조폭들이 아직 많다"고 설명했다.

이날 연회에서 가까이 다가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신씨는 "에이, 나이 먹은 사람한테 뭘..."이라고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신씨는 연회가 시작하고 조금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종문화회관 뒷뜰로 통하는 문으로 나갔다. 그가 일어서자 십여명의 '아우'들이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이날 기자의 영상 촬영도 그의 뒷모습으로 마무리됐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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