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표적 난사범은 트럼프 시대 견디지 못한 외골수 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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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반(反)트럼프ㆍ반(反)공화당 분노가 총기 난사라는 끔찍한 범죄로 튀어나왔다. 그간 백인우월주의자의 흑인교회 총격이나 외로운 늑대 식의 자생적 테러가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지만 이번엔 진보를 자처하는 반트럼프 성향의 외로운 늑대가 범행을 저질렀다. 미국 사회의 또 다른 그늘이다.
 미국 언론 보도와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총격범 제임스 호지킨슨(66)은 공화당을 겨냥해 ‘표적 난사’에 나섰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범행 현장인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야구연습장에 있었던 공화당의 제프 던컨 하원의원은 기자들에게 “용의자와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공화당팀인지 민주당팀인지 물어 공화당이라고 답했다”며 “이 사람(호지킨슨)은 ‘오케이. 고맙다’며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일리노이주 벨빌의 집을 떠나 버지니아로 온 호지킨슨은 야구연습장 인근의 YMCA 체육관에 거의 매일 모습을 드러냈다. 차 안에서 생활하면서 사실상 부랑자 생활을 해온 그는 범행 당일도 오전 7시께 야구연습장으로 향했다. 한 지역 주민은 그가 “외톨이로 보였다”고 말했다.
 호지킨슨은 겉에서 보기엔 특이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었다. 1994년부터 일리노이주 일대에서 주택 점검업자로 일해 왔다. 주택 점검은 주택을 매매할 때 매수자나 매입자에게 집안 상태를 확인해 주는 직업이다.
 그러나 호지킨슨의 형제인 마이클 호지킨슨은 뉴욕타임스에 “호지킨슨은 대선 결과와 내용, 요즘 돌아가는 (정치) 상황에 탐탁해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호지킨슨의 페이스북엔 트럼프 대통령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글들이 여러 개 올라 있다. “트럼프는 반역자. 트럼프가 우리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트럼프와 일당들을 파괴해야 할 때”라는 주장은 물론 “당신은 미국 대통령 중 제일 멍청이(Ass XXXX)”라는 욕설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 동참을 요구하는 글도 올렸다. 페이스북에선 ‘공화당을 끝장내자’는 모임의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호지킨슨은 고향 멜빌에선 현지 신문에 공화당을 비판하는 글을 꾸준히 보냈다. 공화당은 ‘수퍼 부자’를 챙긴다는 내용의 공격도 있었다. 그는 지역구의 마이크 보스트 공화당 하원의원 사무실로 14차례나 전화, e메일을 해 반공화당 정서를 드러냈다. 보스트 의원은 “그는 위협이나 분노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우리가 하는 현안마다 지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민주당의 아이오와주 경선 때 함께 선거운동을 했던 찰스 오리어는 워싱턴포스트(WP)에 “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호지킨슨은 이같은 평가와는 달리 폭행, 총기 위협 등으로 체포된 경력이 있었다. 2006년 4월 이웃집에 강제로 들어가 자신의 딸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내고, 자신을 피해 자동차 안으로 숨은 딸이 매고 있던 안전벨트를 칼로 잘라 버렸다. 이를 막던 이웃집 여성의 얼굴을 때리기까지 했다. 항의하는 이 여성의 남자친구를 향해선 총을 들이댔다. 벨빌이 집을 떠나기 직전인 지난 3월 24일엔 총 50여 발을 쏴 신고를 받은 보안관이 출동하기도 했다.
 호지킨슨이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운 열성적 지지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불똥은 샌더스 의원으로도 튀었다. 호지킨슨은 페이스북에 “수퍼대의원들은 버니로 바꿔야 한다. 힐러리 클린턴은 아마도 감옥에 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호지킨슨이 지난해 선거운동 당시 자원봉사했던 아이오와주의 샌더스측 책임자는 “100명의 유급 직원이 있지만 호지킨슨은 명단에 없었다”며 “이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고 주장했다. 샌더스 의원은 이날 “이런 비열한 행위가 역겹다”고 총기 난사를 비판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범행 앞서 공화당팀 여부 물어봐 #"대선 결과에 기뻐하지 않았다" #고향선 수퍼부자 챙긴다 공화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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