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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대중 동원력 포기하는 순간, 박근혜 권력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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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권력과 대중

대통령의 성취는 리더십의 성공이다. 지도력의 핵심 요소는 대중과의 관계 설정이다. 그것이 권력 경영의 기량이다. 권력의 성패는 민심 관리에 달렸다. 정권은 대중과의 관계를 정교하게 구성해야 한다. 성공한 정권들은 대중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관리했는가. 그 7대 원칙과 전략, 사례를 추적·분석한다.

르봉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권력 경영술” #개혁은 혁명보다 힘들다 #마키아벨리 “대중은 변덕, #이해관계에는 열정적이다” #권력과 여론의 적절한 긴장이 #정권의 탈선·침체를 막는다 #대통령은 ‘언어전선’에 서야 #문재인 감성 언어, 공감대 확산

정권의 우선 과제는 상징성 확보다. 집권 초 대통령은 개혁 조치로 상징성을 확보한다. 상징 이슈는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한다. 상징은 브랜드다. 그것으로 권력에 대한 대중 인식은 정돈된다. 상징은 단순·선명해야 한다. 그 롤 모델이 김영삼(YS) 정권이다. YS의 구호는 문민정부다. 그의 상징성 구축은 전광석화였다. 취임 11일 만에 군부의 사조직 하나회 척결에 나섰다. 대중은 전격성과 파괴력에 열광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국민은 상징을 통해 새 시대의 개막을 실감했다. 데이비드 거건 하버드대(케네디 스쿨) 교수는 대통령 리더십 전문가다. 그가 내놓은 지도력의 요소는 ‘강력한 정치목표’의 제시다. 상징 효과는 그것을 만족하게 한다.

권력의 성공과 인간성의 본질을 해부한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 작은 사진은 프랑스 군중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 [중앙포토]

권력의 성공과 인간성의 본질을 해부한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 작은 사진은 프랑스 군중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 [중앙포토]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정치 철학자다. 그의 저서 『군주론(Il Principe)』은 권력 경영학의 고전이다. 그 책은 권력과 인간의 본성을 탐구했다. 통치자와 대중의 관계를 해부했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평판을 중시했다. 그는 평판을 지도력의 핵심 요소로 삼았다. 평판은 상징적 조치로 획득된다. YS의 상징 효과는 개혁의 동력을 강화했다.

김대중 정권은 IMF 외환위기 극복에 성공했다. 그는 위기 극복 리더십의 평판을 확보했다. 문재인 정권의 구호는 ‘나라다운 나라, 적폐 청산’이다. 적폐의 상징적 척결이 검찰 개혁이다. 문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을 경질했다. 그 속도감은 YS의 하나회 몰아내기를 떠올린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이다. 그의 탈(脫)권위와 소통 행보는 대중의 갈증을 해소한다. ‘준비된 대통령’의 평판은 기대심리를 높인다. 그는 권력 재수생이다. 그의 핵심 참모들은 86세대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 그들의 보좌는 거칠고 어설펐다. 그 후 10년간 그들의 언행은 단련됐다.

권력 경영의 핵심 요소는 설득력이다. 그 바탕은 소통이다. “대통령은 으뜸가는 홍보맨이 돼야 한다.”(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별명은 ‘위대한 소통자’다. 대통령 시절 레이건의 발언은 낙관적 미래를 생산했다. 문 대통령은 “주요 사안은 직접 브리핑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실천으로 국가 홍보맨의 면모를 과시했다.

권력의 운영 수단은 말이다. 대통령은 자기만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 “실업 대란을 방치하면 국가 재난 위기”는 문재인의 수사(修辭)다. 결정적인 상황은 결정적인 언어로 평정된다. 버락 오바마의 인기는 쇠락하지 않는다. 그의 언어가 비밀 병기로 작동해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무기는 트위터다. 노무현은 서민의 어휘로 기존 질서를 깼다. 하지만 그것의 과도함은 권력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권력의 절제는 언어의 정제다.

감성의 시대다. 프랑스 군중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의 말은 강렬하다. “사람을 다스리는 기량은 언어 구사력으로 이루어진다. 군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술이 통치술을 아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혁명의 산물이다. 그의 참모들은 인터넷 공간의 대중 심리에 익숙하다. 문재인의 연설은 감성을 담는다.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애국·통합·경제민주주의, ‘한 세대 청년 인생 잃어’의 구절과 용어는 대중의 감수성을 파고든다.

대통령은 ‘언어의 전선(戰線)’에 서 있어야 한다. 2006년 박근혜의 말은 ‘대전은요’였다. 그 압축은 지지층을 결집했다. 대전시장 선거에서 역전승했다. 하지만 대통령 박근혜는 언어 전선에서 철수했다. 그 자발적인 포기는 결정적 실책이었다. 대통령은 대중과 격리됐다. 그 전선을 반대편이 장악해갔다. 정권 기반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개혁 어젠다는 실천하기 힘들다. 대중 심리는 이중적이다. 마키아벨리는 설파한다. “신질서를 만드는 것은 어렵고 성공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구질서의 이득을 본 사람들은 개혁자에게 적대적이다. 반면에 신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릴 사람들의 지지는 미온적이다. 인간 속성은 확고한 결과를 보기 전에는 개혁을 신뢰하지 않는다.”(군주론)

대통령 퇴임 후 김영삼은 “개혁은 혁명보다 힘들다”고 실토했다. 김대중 정권은 의약 분업 개혁에 나섰다. 그 혁신적 정책은 혼선을 겪었다. 옛 질서의 사람들은 반발했다. 신질서의 잠재적 수혜자들의 지지는 강력하지 않았다.

문재인의 목표는 ‘일자리 대통령’이다. 그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그 대책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만들기다. 그것은 세금으로 공무원을 늘리는 것이다. 공공기관은 신이 내린 직장이다. 기존 공직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미묘하다. 사람 증원은 권한 배분과 혜택 나누기를 요구한다. 정규직 전환 정책은 노·노(勞·勞)갈등을 예고한다. 정규직 귀족 노조는 구질서에서 이득을 봤다. 정책 변화로 비정규직과의 임금·복지 격차가 줄어든다. 정규직 노조는 개혁에 부정적·소극적이 되기 쉽다. 경제 분야 개혁의 설계는 정밀해야 한다. “인간이란 가식적인 위선자이며, 이익에는 열정적이다.”(군주론)

조세정책은 예민하다. 보수·진보 이념은 상관없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 냉혹한 직설은 지금 시대엔 세금 문제로 표출된다. 박근혜 정권의 세법 개정안은 혼란스러웠다. ‘거위 깃털’ 징수 논란 때문이다. 그 발언(조원동 경제수석)은 여론 불만을 샀다. 노무현 정부는 세금 폭탄 논란에 시달렸다.

마키아벨리는 권력 파탄을 대중 관계에서 탐색한다.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은 파멸당했다. 인간의 본성은 변덕스럽다. 대중에게 무언가를 설득하기 쉬우나 그들을 설득한 상태로 유지하기는 어렵다.”(군주론)

민주화 시대에 리더십의 전략적 무장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중 동원력이다. 박근혜의 대중 동원력은 정치 자산이었다. 그것은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과 노무현만이 가진 역량이었다. 하지만 집권 후 그의 대중 동원력은 창고에 처박혔다. 그는 핵심 지지자들과도 교류하지 않았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졌다. 대중은 배신감으로 반응했다. 대통령은 민심 이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었다. 그의 대중 동원력은 녹슬었다. 무장하지 않은 집권자는 취약하다.

“군주는 대중에게 사랑보다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게 훨씬 안전하다. 하지만 미움은 피해야 한다.”(군주론) 미움은 통치자에게 치명적이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이 폭로됐다. 젊은 세대의 미움이 폭발했다.

문재인 정권의 대중 동원력은 촛불로 단련돼 있다. 인사청문회는 여당에 피곤하다. 열성 옹호자들은 디지털 훌리건으로 나선다. 문자 폭탄과 댓글로 야당을 압박한다. 문자 테러 논란이 이어진다. 김대중 정권 시절도 여소야대였다. 당시 청와대는 시민단체 지원으로 국회를 역(逆)포위하려 했다. 역효과를 낳았다. 홍위병 소동으로 민심은 쪼개졌다.

국정 위기는 지도력의 시험대다. “군주는 경멸을 피해야 한다. 경멸받는 것은 변덕스럽고, 가볍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생각되는 경우다.”(군주론) 이명박 정권의 임기 초 광우병 촛불시위 때다. 그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갔다. 촛불 시위대의 ‘아침이슬’ 노래를 들었다. 그 장면으로 그는 얕잡아 보였다. 지지층도 나약한 장면에 실망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마키아벨리의 500년 전 고향 집이 남아 있다. 나는 그곳에서 마키아벨리의 세계를 추적한 적이 있다. 그 집에 놓인 안내 책자에 ‘비르투(virtù)와 포르투나(fortuna)’가 써 있다. 그 용어는 군주론을 관통한다. 국정 목표의 달성은 포르투나의 운명적 필연이 아니다. 그것은 비르투의 의지와 결단으로 이뤄진다. 지도자는 여론에 추종만 해선 안 된다. 대통령들의 성취는 비르투의 산물이다. “지도력은 여론의 욕을 먹으면서 일을 해결하는 경륜과 기량, 의지다.”(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9단론) 건국(이승만)·산업화(박정희)·민주화(김영삼·김대중)는 비르투의 서사시적 승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해군기지는 노무현의 역설적 업적이다. 그 유산은 지지 세력의 반대 속에 이루어졌다.

인사는 메시지다. 그것은 대중과 연결되는 평판의 고리다. 대통령들의 성공은 용인술의 성공이다. 대중은 용인술의 대담함에 환호한다. 문 대통령은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三顧草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통합·탕평(蕩平) 인사는 쉽지 않다. 코드 발탁, 시민단체 정부, 논공행상 논란이 따른다.

권력의 속성은 독선과 편견이다. 그것은 대통령의 초심이 약해질 무렵 생긴다. 그때쯤 이너서클·친인척·비선(秘線)의 존재감이 퍼진다.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표출된다. 과거 정권들의 낯익은 풍광들이다. 그것의 제어장치가 절실하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파르헤시아(parrhesia)가 있었다. 파르헤시아는 권력자에게 진실을 말하는 담대한 용기다. 역대 대통령들은 직언과 진실에 불편해했다. 직언의 외면은 권력의 침체와 탈선을 초래한다. 권력은 대중과 건강한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국정의 성공은 ‘진실의 순간’을 낚아채는 것이다. 그 순간은 투우사의 결행 시점이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 포착과 결단의 시기는 권력과 대중의 관계에서 설정된다. 그것이 권력 경영의 종합적인 역량이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