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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15년전 미군 장갑차에 딸 효순양 잃은 신현수씨…"딸 떠난 건 너무 가슴 아프나 추모행사가 반미로 흐르는 건 반대"

중앙일보

입력

“딸이 세상을 떠난 건 너무나 가슴 아프죠. 많은 분이 기억에 주는 것도 고맙습니다. 하지만 반미운동에는 반대합니다. 국가안보를 위해 한·미 공조는 중요합니다. 추모행사가 반미 쪽으로 흐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 신효순양 아버지 신현수씨가 자난 13일 밤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집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고 신효순양 아버지 신현수씨가 자난 13일 밤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집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경기도 양주에서 2002년 6월 13일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신효순(당시 14세·중2)양의 아버지 신현수(62)씨의 말이다. 그는 앞서 지난 13일 오전 집 인근인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사고 현장에서 치러진 ‘효순·미선양 15주기 추모제’에 참석했다. 신씨가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추모제에 참석하기는 14년 만이다. 올해 딸을 위한 평화공원이 집 인근에 만들어 질 예정이고 양주시장을 비롯 주변에서도 참석을 강하게 권해 나갔다고 한다.

지난 13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서 열린 심미선ㆍ신효순양 15주기 추모제에서 추모객들이 영정과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서 열린 심미선ㆍ신효순양 15주기 추모제에서 추모객들이 영정과 현수막을들고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추모제는 마을 어귀∼사고현장 행진, 평화공원 부지에 솟대 세우기, 헌화, 정화수 올리기, 살풀이, 경과보고, 유족 인사, 추모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추모제에는 유가족과 시민 등 약 150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사드 가라’, ‘소파(SOFA·주한미군지위협정) 전면 개정’, ‘자주 평화’, ‘진상 규명’ 등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지난 13일 ‘효순ㆍ미선양 15주기 추모제’에 14년 만에 참여 #“추모제가 정치적으로 흐를 것 우려해 참석하지 않았다” #그동안 추모제 참석대신 집에서 가족과 조용히 추모 #효순양 잃은 후 괴로운 세월보내다 7년전 위암수술 #"효순이 기억해 주고 평화공원 만들어 주는 것은 감사" #“북한과 대결은 우리 힘만으론 힘들어 미국과 협력해야” #

이날 오후 10시쯤 집에서 기자와 만난 신씨는 “14년 동안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행사가 반미 등 정치적으로 흐를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학생 딸이 훈련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고사를 당한 것은 부모로서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며 “하지만 개인의 감정을 내세우기에 앞서 우리의 안위와 안보를 위해서는 한·미 간 공조가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늦은 밤 신씨의 집은 썰렁했다. 과거 효순양를 포함한 1남3녀 자녀에 부부가 함께 살던 집은 조용했다, 넓은 거실에는 신씨와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고 있는 막내 아들(23)만 있었다. 신씨는 기자가 사고 직후 만났던 15년 전보다 많이 야위고 수척해 보였다.

 그는 “효순이를 떠나보내고는 마음이 아파 괴로운 세월을 보내다 7년전 위암 수술을 받았다.요즘은 몸을 추슬러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했다.

 효순양의 어머니는 딸을 먼저 보낸 뒤 밥도 제대로 못먹고 잠도 제대로 못자는 날이 많아지면서 체력이 떨어져 잔병에 시달린다고 전했다. 이날 밤에도 효순양 어머니는 방에 몸져 누워있었다. 거실에 진열된 가족 사진에는 효순양이 보이지 않았다. 신씨는 “안그래도 효순이 생각이 떠나지 않는데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걸어 놓지 않았다”며 힘없이 말했다.

 그는 “효순이는 운동을 좋아해 군인이 되고 싶어했다"며"딸이 되고 싶어했던 비슷한 나이 또래의 군인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했다. 그는 특히 효순이 또래의 여학생들이 어느새 29살 어른이 돼 시집가서 아이들 낳고 사는 모습을 볼 때면 딸에 대한 그리움이 커진다고 했다. 효순양의 언니(32)는 3년전 시집갔고, 효순양의 여동생(27)은 미혼이다. 신씨 가족은 지난해까지는 효순양 기일에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고 가족끼리 집에서 조용히 추모해 왔다고 한다.

성탄전야인 2002년 12월 24일 서울 교보문고 앞에서 열렸던 효순ㆍ미선양 추모 촛불시위.모습. [중앙포토]

성탄전야인 2002년 12월 24일서울 교보문고 앞에서 열렸던효순ㆍ미선양추모 촛불시위.모습. [중앙포토]

 효순·미선양 사고 당시 미군 측은 “고의없이 공무 중에 발생한 사고”라며 초기에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재판 관할권까지 행사해 가해자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시민단체들이 모여 ‘범국민대책위’를 구성했다. 당시 “미군이 일부러 학생들을 깔아 죽였다”는 유언비어도 떠다녔다. 국민 감정에 불이 붙었고, 반미 시위로 이어졌다. 집회 때 장갑차에 치인 여중생들의 끔찍한 시신 사진이 뿌려지기도 했다. ‘불쌍한 미선이·효순이, 모이자 시청 앞으로, 미국놈들 몰아내자’ ‘월드컵 4강의 힘을 보여주자, 미국놈들 몰아내고 자주권 회복하자’는 구호도 나왔다.

 신씨는 “효순이·미선이를 위해 시민단체와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추모해 주고, 평화공원 조성에 나서 주는 점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과의 대결은 우리 힘만으로는 힘들다. 어차피 우리의 안보를 위해서는 한·미 공조가 중요한 만큼 추모행사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효순·미선양 사망사고 일지>
▶2002년 6월 13일=오전 10시45분쯤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에서 신효순·심미선양 미 2사단 장갑차에 치여 치여 현장에서 사망
▶6월 19일=한·미 합동 조사결과 발표
▶6월 26일=‘미군 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양 살인사건 범국민 대책위원회’ 결성
▶6월 27일=여중생 유가족, 사고 관련 미군 고소
▶7월 4일=리언 러포트 주한 미군사령관, 미군 사고 책임 첫 인정 발언
▶7월 10일=법무부, 미군측에 재판 관할권 포기 요청
▶7월 29일=사고 미군 2명(관제병·운전병) 서울지검 의정부지청 출석 조사
▶7월 30일=주한 미 대사, 한국 국방부장관에 사과
▶8월 2일=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한국 외교부장관에 사과
▶8월 7일=미군, 한국 정부의 재판권 이양요청 거부 통보
▶9월 13일=유족에게 배상금 지급
▶11월 18일=장갑차 운전병·관제병에 대한 미 군사법원 재판 시작
▶11월 20일=미 군사법원 배심원,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병장 무죄 평결
▶11월 22일=미 군사법원 배심원,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 무죄 평결
▶11월 27일=부시 미 대통령, 주한 미대사 통해 간접 사과
▶11월 28일=네티즌 ‘앙마’ 인터넷에 촛불시위 제안
▶11월 30일=광화문 대규모 촛불시위 시작
▶12월 2일=‘여중생 범대위’ 방미 투쟁단 미국으로 출국
▶2003년 3월 5일=광화문 100차 촛불시위
▶2003년 6월 13일=1주기 대규모 촛불시위

양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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