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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도 비전도 없는 슈틸리케호, 예고된 도하 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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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질 여론에 휘말린 울리 슈틸리케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사진 대한축구협회]

경질 여론에 휘말린 울리 슈틸리케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사진 대한축구협회]

연습부터 실전까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카타르전은 단기적인 전술부터 중장기적인 전략까지 플랜과 비전이 부재한 한국축구대표팀의 민낯을 드러낸 경기였다.

카타르전 단조로운 전술과 선수 교체 되풀이 #이라크 평가전 스리백 사용, 수비진 혼란 자초 #최종예선 원정 4경기 무승...감독 경질론 대두

한국은 14일 카타르 도하의 자심 빈 함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8차전에서 충격적인 2-3 패배를 당했다. 기성용(스완지시티)과 황희찬(잘츠부르크)이 한 골씩 기록했지만 수비진이 무너지며 3실점해 치욕적인 패배를 경험했다. 우리나라가 카타르와의 A매치에서 패한 건 지난 1984년 12월 아시안컵 본선(0-1패) 이후 무려 33년 만이다.

울리 슈틸리케(독일) 축구대표팀 감독의 단조로운 전술은 카타르전에서도 반복됐다. 홈 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은 카타르는 전반 초반부터 수비라인을 끌어올리고 하프라인 부근에서부터 우리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압박했다. 초반 흐름을 장악해 전체적인 경기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슈틸리케호는 이에 대해 똑같이 압박하며 치열하게 맞붙거나, 또는 일단 웅크린 채 날카로운 역습으로 분위기를 바꿔나갔어야 했는데 이도저도 하지 못했다. 상대의 예상 밖 강공에 우왕좌왕하는 사이 카타르가 알 하이도스의 선제골(전반 25분)과 아피프(후반 6분)의 추가골을 묶어 두 골을 먼저 터뜨리며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카타르축구대표팀은 33년 만에 안방에서 한국을 잡고 환호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카타르축구대표팀은 33년 만에 안방에서 한국을 잡고 환호했다.[사진 대한축구협회]

후반에도 '맞춤형 전략'은 없었다. 후반 8분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을 빼고 황일수(제주)를 투입한 건 같은 포지션 내 선수 교체다. 2-2 동점이던 후반 30분 알 하이도스에게 한 골을 더 내주고서야 부랴부랴 미드필더 한국영을 빼고 공격수 남태희를 투입하며 변화를 줬지만, 침대축구를 시작한 시리아의 시간끌기 전략 탓에 이렇다 할 찬스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슈틸리케호의 좌충우돌은 카타르전을 앞둔 준비과정에서도 나왔다. 지난 8일 아랍에미리트에서 치른 이라크와의 A매치 평가전에 느닷없이 스리백 기반의 전술을 들고나와 선수들에게 혼란을 줬다. 당시 슈틸리케 감독은 "본선 일정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스리백 기반 포메이션도 필요할 것 같아 실험했다"고 변명했지만, 카타르전에 스리백은 사용되지 않았다.

이라크전 당시 슈틸리케 감독은 스리백으로 홍정호(장쑤 쑤닝)-기성용-장현수(광저우 푸리)를 내세웠고, 좌우 윙백에는 박주호(도르트문트)와 김창수(울산)를 기용했다. 이 선수들 중 카타르전 디펜스 라인에 다시 기용된 선수는 장현수 한 명 뿐이다. 수비조직력을 다질 좋은 기회인 A매치 평가전을 엉뚱한 실험으로 소모한 슈틸리케 감독은 정작 카타르전에서는 발 맞춰본 경험이 많지 않은 김진수(전북)-장현수-곽태휘(서울)-최철순(전북) 포백 조합을 가동했다. 카타르에게 허용한 세 번째 골은 우리 수비진의 실수가 결정적이었다. 곽태휘와 최철순이 함께 짠 오프사이드 트랩이 무너지면서 카타르 공격수 알 하이도스에게 골키퍼와 맞서는 찬스를 내줬다.

카타르전에서 득점포를 터뜨리며 고군분투한 한국축구대표팀 주장 기성용. [사진 대한축구협회]

카타르전에서 득점포를 터뜨리며 고군분투한 한국축구대표팀 주장 기성용. [사진 대한축구협회]

슈틸리케 감독의 판단 착오가 이어지는 동안 한국축구는 부끄러운 발자취를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원정 네 경기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1무3패에 그치고 있다. 이란과의 원정경기(0-1패)에서 단 한 개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한 채 참담한 패배를 당했고, 지난 3월 중국 창사에서 중국대표팀에 0-1로 패해 중국축구에 공한증(恐韓症) 탈출의 빌미를 줬다.

당장 월드컵 본선행에 빨간 불이 켜졌지만, 지금으로선 본선에 올라가도 문제다. 본선 조별리그에서 만날 월드클래스 강팀들을 상대로 지금의 단조로운 전술과 전략을 반복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자명하다. 많은 축구인들이 "지금이라도 슈틸리케호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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