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정책의 불완전판매는 괜찮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허태균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허태균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유학 시절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는 한국에서 즐겼던 갖가지 음식 배달 서비스였다. 그중 최고는 역시 비 오는 날에 시켜 먹는 짬뽕이었다. 미국에 비하면 한국은 배달의 천국이었고, 그것은 현재도 여전하다. 많은 음식점이 갖가지 음식을 배달해 주고, 심지어 배달을 거부하는 맛집들의 음식까지 대신 구매해 식탁까지 가져다주는 음식 모바일 배달 서비스의 시장 규모는 13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동네 마트뿐만 아니라 대형마트 체인들도 별로 높지 않은 금액 이상의 물건만 사면 당연히 공짜로 배달해 주는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국민이 누리는 일상의 혜택 #그동안 낮은 인건비에 가능 #최저임금 인상은 전반적인 #국민 삶의 모습 변화 가져와 #정부는 변화의 방향과 득실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이런 배달의 천국이 가능했던 근본은 기본적으로 싼 인건비와 배달 비용을 인식하지 못하는 국민 의식이었다. 아직도 많은 식당은 배달비를 따로 받지 않는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배달비를 따로 내야 한다는 생각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것을 당연히 식당에서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한때 음식 모바일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배달 음식의 양과 질이 직접 가서 살 때에 비해 떨어진다고 난리가 났었다. 배달 비용을 누군가는 감당해야 했기에, 어찌 보면 배달비가 상식적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음식의 양과 질이 떨어지는 게 당연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배달의 천국은 옛날 얘기가 될지도 모른다. 정부는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리는 논의를 시작했다. 사실 대선 중에 모든 주요 후보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다. 단지 그 달성 시한이 2020년과 2022년으로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논의는 인상된 최저시급을 받을 노동자와 인상된 최저시급을 지급해야 할 사업자 간의 갈등에 집중되었다. 당연히 임금을 주고받을 당사자들이니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소규모 기업과 자영업에 대한 지원방안들도 공약 내용으로 포함되었다. 하지만 과연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당사자가 그들뿐일까?

대선 공약과 현재 정부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보면, 소규모 기업들에 대해서는 가능만 하면 좀 더 사정이 나은 큰 규모 기업들에 그 임금 인상분을 떠안기는 방안을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떠넘길 관련 기업이 없는 자영업자들은 세제 혜택과 각종 정부 지원을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정책에는 노동자와 사용자 이외에 수많은 국민이 관여되어 있다. 다른 수많은 국민의 수입이 줄거나 세금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본질적으로 누군가가 시켜 먹는 짬뽕의 배달비를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해 주는 꼴이 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리 정부 지원을 해도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임금이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이는 국민의 소득이 평균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일상에서의 모든 비용이 상승하는 것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최저임금이 높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배달 서비스는 비싸고, 대부분의 시민은 포장이사는 꿈도 못 꾸고, 웬만한 가구 조립과 자동차 수리는 스스로 한다. 전자제품이 고장 나면 방문 서비스를 며칠씩 기다리고 출장비도 비싸며, 종업원의 서빙을 받는 식당에서의 외식은 부담스럽다. 그래서 우리보다 소득이 높은 선진국의 많은 국민은 때로는 우리보다 훨씬 더 궁상맞게 살기도 한다.

바로 그런 모습이 모든 국민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사는 사회이고, 노동의 대가는 비싸기에 함부로 그 노동을 쉽게 쓸 수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결코 이런 삶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보다 더 행복한 많은 국가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기에, 우리의 삶이 그렇게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정책방향은 근본적으로 우리 삶의 모습을 그렇게 바꾸게 될 거라는 얘기를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동에 대한 소득이 늘어난다는 얘기만 하지, 우리 스스로가 일상에서 그 노동을 쓸 때 무엇이 바뀌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다. 마치 비싼 노동을 계속 싸게 쓸 수 있다는 듯이….

만약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한 모든 대선후보와 그것을 지금 추진하는 정부가 이런 국민 삶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철학 없이 그것을 주장했다면 심각한 문제다. 만약 그 변화를 예상하면서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책의 불완전판매’다. 불완전판매는 일반적으로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상품에 대한 주요 내용과 특히 위험성에 대한 안내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경우를 일컫는다. 정책의 소비자이자 대상인 국민은 그 정책이 그들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를 알 권리가 있고, 정부는 그것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 최저임금이 높은 나라는 그로 인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모두 있다. 국민은 그 득실에 대한 설명을 모두 듣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