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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1947년 한국 첫 출간 … 금서이던 87년엔 가명으로 번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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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마르크스의 『자본』은 한국에서 다양한 판본으로 소비됐다. 해방 이후 현재까지 정식으로 5개 출판사에서 6가지 『자본』 판본을 출간했다.

첫 판본은 역자들 월북해 완간 못해 #89년엔 김수행 번역자 이름 첫 명시 #“잡아가려면 잡아가라 심정 책 내” #‘반체제책’ 인식 사라지며 다시 관심

① 1947년 6월 서울출판사가 출간한 『자본론』. ② 1987년 출판사 ‘이론과 실천’이 출간한 『자본』. ③ 1989년 백의출판사가 낸 국내 최초의 『자본론』 완역본. ④ 2008년 도서출판 길이 내놓은 강신준 교수의 『자본』. 국내 유일의 독일어 완역본이다. ⑤ 2015년 비봉출판사가 내놓은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 개정판.

① 1947년 6월 서울출판사가 출간한 『자본론』. ② 1987년 출판사 ‘이론과 실천’이 출간한 『자본』. ③ 1989년 백의출판사가 낸 국내 최초의 『자본론』 완역본. ④ 2008년 도서출판 길이 내놓은 강신준 교수의 『자본』. 국내 유일의 독일어 완역본이다. ⑤ 2015년 비봉출판사가 내놓은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 개정판.

『자본』이 국내 처음으로 정식 출간된 것은 1947년 6월이다. 당시 ‘서울출판사’가 최영철·전석담·허동의 공동번역으로 냈다. 『자본론』은 3권으로 이뤄져 있지만 서울출판사 판본은 47년 6월부터 48년 10월까지 1·2권만 번역 출간했다. 역자들이 월북하는 바람에 완역되지는 않았다. 블라디미르 레닌이 쓴 글과 『자본』에 관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고받은 편지 등도 들어가 있다. 이 책은 이후 국가보안법에 의해 금서가 됐다. 세로쓰기로 출판된 이 책은 2015년 부산 보수동 헌책방 블로그에 4만원에 매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후 87년 출판사 ‘이론과 실천’이 『자본』을 출간한다. 독재 체제라는 현실 때문에 번역자는 ‘김영민’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이론과 실천의 대표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전 남편인 고(故) 김태경씨였다. 이 책의 1권은 당시 운동권 학생들이 번역한 것을 김태경 대표의 친구인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의 감수와 보완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2권과 3권은 강 교수의 이름으로 출간돼 90년 7월에 완간됐다. 김태경 대표는 『자본』 출판을 이유로 90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투옥됐다. 몇 년 뒤 이론과 실천의 판본은 절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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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에는 북한에서 번역한 『자본』이 일본을 거쳐 국내에 소개됐다. 백의출판사는 89년 8월 『자본론』 1권을 출간하고, 이듬해 5월에 3권을 완간한다. 북한 조선노동당이 번역하고 일본 조총련계 등이 출판한 책을 백의출판사가 일부만 수정해 발행했다. 김공회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백의출판사 판본은 국내 최초의 자본론 완역본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89년 비봉출판사도 고(故) 김수행 당시 서울대 교수가 번역한 『자본론』을 출간했다. 비봉출판사 판은 『자본론』I(상)·(하), II, III(상)·(하) 총 5권으로 이뤄졌다. 김수행 교수는 ‘나의 대학생활과 유학생활 및 교수생활’이란 글에서 “서울 상대 5년 후배인 비봉출판사 박기봉 사장이 84년 어느 날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자본』도 멀지 않아 금서 목록에서 빠질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번역을 준비하자고 제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사실상 그 당시에도 자본론이 금서 목록에서 해제되지 않았지만 서울대 교수가 ‘잡아가려면 잡아가라’고 번역 출판해 버리니까 경찰과 검찰도 어찌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라고 회상했다. 김공회 교수는 비봉출판사 판 『자본』을 두고 “(영역판을 기본으로) 중역(重譯·한 번 번역한 것을 원본으로 삼아 다른 언어로 번역)했지만 번역자가 명시적으로 들어간 최초의 판본으로 책임성이 높고 자본론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서점 서 판매되는 『자본』 완역본은 강신준 교수와 고 김수행 교수의 책뿐이다. 강 교수 판의 경우 현재까지 3만 부가 판매됐다. 도서출판 길 관계자는 “출간 이후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판매량은 큰 등락 없이 꾸준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완역본보다 해설서가 더 잘 팔린다. 주류경제학이 짚어주지 못하는 부분을 읽기 쉬운 『자본』을 통해 해소하려는 심리가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2009년 출간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경우 꾸준히 판매되며 벌써 25쇄를 찍었다. 이 책을 쓴 임승수 작가는 “수저계급론,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적 불만이 마르크스에 대한 수요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 비해 관심이 높아졌음을 실감한다”며 “『자본』이 반체제 사상서라는 인식도 많이 사라져 대중들이 열린 시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국·김유경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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