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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무결점 인재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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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새 시대의 가슴 벅찬 논리를 좇아 천지사방으로 뛰어야 할 이 시점에 우리는 다시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 의혹과 비리 불순물을 걸러 내는 인사청문회.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천거한 숨은 공신을 패설(悖說)의 고로(高爐)에 욱여넣는 것도 흥미진진하지만 빛나는 사회적 명사가 치부를 드러내고 식은땀을 흘리는 풍경은 어떤 드라마보다 박진감이 있다. 명망과 위신의 가면이 벗겨지고 일그러진 민얼굴이 드러날 때 교차하는 쾌감과 낭패감이 인사청문회의 별미다. 정작 검증대에 오른 당사자들의 심정은 오죽하랴. 당장에라도 회군하고 싶지만 주군(主君)이 낙점한 직책에 오르려면 어쨌든 견뎌야 한다. 조각(組閣)은 아직 절반도 채우지 못했는데, 벌써 한 달이 흘렀다.

인격살인의 인사청문회 바꿔 #불법투기 15점, 위장전입은 5점 #세금 면탈은 10점으로 해 #위법 정도에 따라 점수 매겨보자 #품행 방정한 순도 100% 인재는 #예나 지금이나 찾기가 참 어렵다

한국의 고위 공직자 자격요건이 그리 유별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인물 검증 동의서는 20개 항목이 고작이다. 그걸 기반으로 청와대 인사수석실과 관계기관이 정밀 검토를 한다. 미국은 사전 검증만 233개 항목, 정부윤리청(OGE)이란 별도의 전담기관이 샅샅이 훑는다고 하니 말만 들어도 오금이 저린다. 민주주의를 발명한 나라, 청교도 나라이니 그럴 법도 하다. 유교국가 조선은 어떠한가?

미국만큼 철저하지는 않았지만 중앙에서는 당상관과 삼사(사간원·사헌부·홍문관)가 현능한 자를 두루 천거한 인재풀 망단자(望單子)를 만들었다. 현량하고 직언하는 선비를 골라 조정에 올리는 거현(擧賢)도 지방 수령이 마땅히 할 일이었다. 천거의 기준은 학식·재능·덕망 세 가지였는데, ‘몸가짐이 바른 사람’을 최고로 쳤다. 도덕정치의 요건, 요즘 식으로 ‘5대 원칙’이다. 그런 인재를 찾기란 조선시대에도 어려웠나 보다. 성종조 이조판서 강희맹이 사직상소를 올렸다. “사(私)를 따르면 국정을 그르치고, 천리(天理)를 따르면 인정(人情)을 뿌리쳐야 합니다. 인정과 천리를 아울러 행하는 자를 구하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망단자에 올린 인물도 삼사의 검증을 거의 통과하지 못했다. 망단자는 거듭 수정됐고, 공석이 늘었다.

‘품행이 방정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그런 인물이 왜 드문가? 유년 시절, 저 그리운 문구가 적힌 상장을 누구나 받아 봤을 텐데, 왜 그렇게 성장하지 못했는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한 개발·경쟁·저항시대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발탁 대상자들은 베이비부머와 운동권세대에 걸쳐 있다. 베이비부머는 이촌향도한 부모를 따라 주거지를 자주 옮겼고 산업화의 한복판에서 상전벽해를 겪었던 세대다. 부정부패·정경유착이 만연된 현실과 타협하거나 비판하면서 사회인이 됐다. 아우세대는 혁명이념에 종군해 저항시대를 구가했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해 기반을 구축할 때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덮쳤다. 학군이 차별화되고 집값이 치솟았다. 법과 제도가 수시로 바뀌었다. 자신을 건사하기도 벅찼는데, 부모 봉양과 가족 부양이란 인류학적 숙제를 감당해야 했다. 이런 와류에서 불법·비리의 경계를 일일이 따져 온 ‘몸가짐 반듯한’ 사람이 몇일까? 부모세대보다는 덜 하지만 누구든지 눈물의 오점을 간직한 굴곡진 시대였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가 야멸차게 내세운 ‘5대 원칙’은 결국 발목 잡기다. 공직자는 청렴해야 하지만 스스로 친 정의의 덫에 걸렸다. 강희맹이 사직상소를 올린 심정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성종이 강희맹을 위로했다. “어찌 다 유능하고 현량한 자라야 등용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약간의 얼룩을 확대해 인격을 말살하는 풍경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국정 공백이 더 화급한 시기에 조금 물러선다고 나라가 결딴나는 것은 아니다. 야당도 인수위 없이 출발한 정부의 사정을 헤아려 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안한다. 차제에 청문회 평가방식을 바꾸면 어떨까 한다. 점수제나 등급제 말이다. 하나의 오점을 내세워 천하의 불량자로 낙인찍는 비정한 방식을 바꿔야 인재를 구할 수 있다. 가령 5대 원칙 중 불법투기는 15점, 위장전입은 5점, 세금 면탈은 10점 급간을 주고 위법 정도에 따라 세부 등급 점수를 매긴다. 그렇게 구한 불법점수를 100점에서 빼면 도덕성 점수를 구할 수 있다. 대략 80점 이상이면 통과시키는 방식이다. 상식을 넘는 불법은 제외다. ‘도덕성’과 함께 ‘사회기여도’ ‘정책역량’도 점수화해 적부를 가늠할 수 있다. 세 범주 평가점수를 종합해 여야 협상에 나서면 인격살인 없는 합의점 도출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도덕성이 완벽한 인물이 국정 수행능력이 최고라는 보장은 없다. 정책 식견이 뛰어난 자가 도덕적으로 훌륭하다는 보장도 없다. 굴곡진 시대, 민주주의 30년에 무결점 인재를 못 박는 것이 자승자박은 아닐까 해서다. 세월이 지나면서 상식적 합격선을 차츰 올리면 된다. 나랏일을 맡을 미래세대에게도 실수를 줄여 나갈 기회를 줘야 한다. 순도 100% 인재 발탁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