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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속 할머니 구한 불법체류자, 의인으로 첫 선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스리랑카 국적의 불법체류자 니말 시리 반다라(38·사진)가 화재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한 공로를 인정받아 의인으로 선정됐다. 외국인 의인은 지금까지 여러 명 있었으나 불법체류자 의인은 니말이 처음이다.

어머니 병원비 벌려고 한국 왔던 #스리랑카 국적 38세 청년 니말 #“고향 엄마 생각나 구하려 뛰어들어” #기도에 화상, 폐경화 후유증 앓는데 #1045만원 보상금은 벌금으로 낼 판

보건복지부는 12일 제3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어 니말을 비롯해 두 명을 의상자(義傷者)로 선정했다. 니말에게는 1045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된다. 의상자는 의료비 혜택(의료급여)과 교육비 지원 등의 혜택을 받으나 니말은 불법체류자 신분이어서 이런 것을 받지 못한다.

니말은 지난 2월 10일 오후 1시10분쯤 경북 군위군 고로면 과수원에서 일하던 중 인근 주택에서 불이 난 것을 발견했다. 그 집으로 달려갔더니 독거노인 할머니(90)가 불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니말은 바로 불속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구조했다. 할머니는 크게 다친 데가 없었으나 그는 목·손목·머리 등에 2도 화상을 입고 1개월 입원 치료를 받았다.

니말은 “어머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한국에 일하러 왔는데 화재 당시 고향의 엄마 생각이 나서 불속으로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상희 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자원과장은 “불법체류자 여부를 떠나 니말은 국적을 초월해 의로운 행위를 했다. 그런 행위를 정부가 인정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보고 의상자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날 심사위원회에서는 참석 위원 15명이 불법체류자를 의상자로 선정하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복지부는 외부 법률 자문을 거쳐 불법체류자를 선정해도 문제가 없다는 법률 해석을 받고 그를 선정했다.

니말은 2013년 9월 일반기술비자(E-9)로 입국해 군위군 일대에서 낮에는 과수원에서, 밤에는 공장에서 일했다. 매달 180만원가량을 벌어서 150만원을 스리랑카에 있는 부모에게 송금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비자가 만료되면서 불법체류자 신분이 됐다. 본국으로 돌아가 봤자 월 50만원도 벌기 힘들어 불법체류를 선택한 것이다. 화상을 입은 뒤 외상 치료는 거의 끝났지만 구조 과정에서 기도 손상을 입어 호흡에 문제가 생겼고 지금은 폐가 딱딱해지는 경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산재처리 안 돼 치료비 본인이 부담

니말을 돕고 있는 대구시 김도현 변호사 사무실의 이동녕 사무장은 “그는 산업 현장에서 근무하다 다친 게 아니어서 산재 처리가 안 된다. 본인이 치료비를 냈으나 건강보험으로 처리된 비용을 환수당하고 불법체류 벌금 1000만원가량을 물어야 한다. 앞으로 폐 치료를 받을 동안만이라도 한국에 체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사무장은 “산재 처리가 되면 치료비를 안 내도 되고 벌금도 안 내며 치료비자(G-1)를 받을 수 있다. 산재 처리가 안 되니 이런 혜택은커녕 정부 보상금을 벌금으로 내야 해서 매우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니말의 딱한 사정이 알려지면서 지난 3월 LG복지재단이 ‘LG의인상’과 상금 3000만원을 수여했다. 이 상을 받은 첫 번째 외국인이다.

◆의상자

직무와 상관없이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다가 숨지면 의사자, 다치면 의상자가 된다. 부상 정도에 따라 1~9등급으로 나뉜다. 의상자는 보상금과 의료급여, 교육 보호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이날 니말과 함께 의상자로 선정된 대학생 김소정(22)씨는 지난 3월 광주 충장로 부근 한 건물에서 여성의 비명을 듣고 건물 안으로 올라가 성추행 현장에서 도주하던 남성을 붙잡고 함께 떨어져 인대가 부분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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