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겨울~봄 철없이 초여름에 기승 … 한반도 머물며 ‘순환 감염’ 가능성

중앙일보

입력 2017.06.12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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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두 달 만에 재발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의 기세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제주도의 한 농가에서 처음 의심 신고가 들어온 지 일주일 만인 10일 신고 농가 수는 35곳으로 늘었다. 이 중 21곳은 H5N8형 AI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살처분된 닭과 오리 등 가금류 수만 18만4000마리다. 발생 지역도 초기의 제주와 전북에서 경남, 부산, 울산, 경기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12일부터 25일까지 2주간 전국 가축거래 상인들이 살아 있는 닭·오리 등 가금류를 유통하는 걸 금지하기로 했다.

시기·경로 달라진 가금류 전염병
2014년 이어 또 기온 높은데 확산
철새와 함께 사라지는 유형과 차이
살처분·이동금지로 잡힐지 불투명
전문가 “밀집사육 개선, 상시 방역”

자료:농림축산식품부

자료:농림축산식품부

이런 조치가 AI 확산세를 꺾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AI의 발생 시점과 감염 경로 등이 예전과 다르기 때문이다. AI는 국내에서 2003년 처음 발병한 이후 주로 기온이 낮은 겨울 또는 봄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날씨가 더워지면 고온과 습기에 약한 AI 바이러스의 기세가 꺾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발생해 올해 4월까지 유행하며 약 3800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했던 AI도 겨울과 봄에 유행했다. 농식품부도 이런 사실에 근거해 AI 특별방역대책 기간을 10월부터 이듬해 5월로 정했고, 6월부터 9월까지는 평시방역체제로 운영했다. 하지만 지난 3일 ‘초여름 AI’가 발생하면서 이 같은 통념이 깨졌다.

전문가들은 기온이 올라가면 AI가 줄어든다는 건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모인필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아열대기후인 동남아 국가들은 AI가 상시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보면 AI가 더워지면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AI가 여름에 유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AI는 겨울인 1월 16일 시작돼 한여름인 7월 29일까지 195일이나 지속됐다. 이후 2차(2014년 9월 24일~2015년 6월 10일), 3차(2015년 9월 14일~11월 15일) 유행으로 이어졌다. 2014년 확산했던 AI는 H5N8형 바이러스로 최근 퍼지고 있는 바이러스와 종류가 같다.

자료:농림축산식품부

자료:농림축산식품부

AI 바이러스가 여름에도 창궐하는 걸로 봐서 바이러스가 한반도에 항시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겨울철에 AI가 자주 발생한 건 유입경로 탓도 컸다. 중국 등에서 AI 바이러스를 가진 철새가 날아와 질병을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바이러스가 갈수록 강해지고 변이가 이뤄지면서 이제는 철새에 의해 들어온 바이러스가 닭이나 오리 몸에 장기간 머물며 살다 다른 가금류로 옮겨가는 ‘순환 감염’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바이러스는 숙주의 몸에서 살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숙주를 통해 지속적으로 옮겨 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AI의 발원지로 지목된 전북 군산 농장의 경우 지난 3월 중순 한 차례 AI 검사를 받았으나 음성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민연태 농식품부 축산정책국장은 “역학조사를 더 해야겠지만 군산 농가의 닭이 전통시장이나 소규모 농가의 닭에 남아 있던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전국으로 퍼진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살처분 위주인 현행 AI 방역대책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 등 AI 상시 발생 국가처럼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AI 백신은 바이러스 변이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AI 백신 접종 후 내성이 생긴 변종 바이러스가 나오면 바이러스의 상재화(연중 발생) 가능성이 더 커지고, 변종 발생에 따른 인체 감염 확률도 높아진다”며 백신 접종을 반대했다.

실제로 중국과 동남아 등에선 AI의 인체감염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영국·일본 등은 만일에 대비해 백신을 확보하곤 있지만 살처분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백신 도입 여부를 논의 중인 농식품부도 일본처럼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늦추기 위해 AI 위험·발생 지역 반경 3∼10㎞에만 접종하는 ‘링 백신’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상희 교수는 “숙주에 머무르는 바이러스도 철저히 조사해 방역만 잘하면 발생을 막을 수 있다”며 “상시 감독과 연중 방역체계 확립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장형관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대량 밀집 사육환경 때문에 AI가 빠른 속도로 퍼졌다”며 “AI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육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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