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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공부] 거실에 2개 방엔 4개 … 6개 책상 옮겨다니며 공부, 지루할 틈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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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공부의 신 한마디

이번 ‘전교 1등의 책상’ 주인공은 서울고 2학년 이민행군입니다. 이군은 집에 있는 6개의 책상을 옮겨 다니며 공부합니다. 중학교 때 자기 방 대신 거실에 있는 책상에서 공부했더니 훨씬 집중이 잘됐던 경험을 살린 겁니다. 이군은 교육학과에 진학해 한국의 교육 정책을 개선하겠다는 꿈을 세웠습니다. 고1 때 학교의 교육 토론회에 참여한 게 계기랍니다. 주말에는 교육도서를 읽거나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습니다.

서울고 2학년 이민행군이 선 채로 학습하는 ‘스탠드 책상’에서 경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집에 있는 6개 책상을 옮겨 다니며 공부한다. [임현동 기자]

서울고 2학년 이민행군이 선 채로 학습하는 ‘스탠드 책상’에서 경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집에있는 6개 책상을 옮겨 다니며 공부한다. [임현동 기자]

서울고 2학년 문과 1등 이민행(17)군은 보통의 전교 1등과 다르다. 대부분 전교 1등은 ‘엉덩이 힘’이 좋아 한자리에서 4~5시간을 버틴다. 이와 달리 이군은 집에서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공부한다. 시험 기간을 제외하곤 주말에 따로 공부하지도 않는다. 방과 후에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낮잠이다. 대체로 우등생이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는 것과 달리 이군은 툭하면 교과서를 벗어난 내용까지 찾아 익힌다.

전교 1등 민행이의 공부방 #자리 바꾸면 기분전환돼 집중 쉬워 #계획량 마칠 때까진 한자리 지켜 #교과서 소리 내 읽으면 머리에 쏙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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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는 중학교부터 최상위권이었다고 한다. 중1 첫 시험에서 전교 3등을 했고 전교 1등으로 졸업했다. 고교에 올라와선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그는 “자유롭게 공부한 게 좋은 성적의 비결 같다”고 했다.

한자리에서만 공부하는 것은 못 견딘다

거실에 있는 또 다른 책상들 모습. [임현동 기자]

거실에 있는 또 다른 책상들 모습. [임현동 기자]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아파트에 있는 이군 집에 가봤다. 아파트가 아니라 오피스텔에 온 것 같았다. 거실엔 소파가 없고 대신에 책상이 두 개 놓여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에 킹사이즈 침대가 하나 있었다. 이군은 거실의 책상 중 하나에 앉아 공부 중이었다. 그런데 다른 하나도 이군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군 방은 더 특이했다. 방에만 책상이 4개나 됐다. 그중 하나는 선 채 공부하는 ‘스탠드 책상’이었다. 이군은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거실 혹은 자기 방의 책상 중에서 골라 이용한다. 인터넷 검색을 많이 해야 할 땐 방에 있는, 컴퓨터가 놓인 책상을 주로 쓴다. 졸리다 싶으면 스탠드 책상 앞에 선다.

대신 이군 방엔 침대가 없다. 거실에 있는 침대가 이군의 것이다. 엄마 김선아(45)씨가 “아들이 올해 고2가 된 기념으로 큰 침대를 사줬다. 집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지치면 언제든 편히 쉬라는 의미로 거실에 놓아줬다”고 설명했다.

거실에 있는 또 다른 책상들 모습. [임현동 기자]

거실에 있는 또 다른 책상들 모습. [임현동 기자]

이군이 어릴 때부터 집에 책상이 많았다. 엄마 직업과 연관이 있다. 엄마는 영어 전문 과외 강사다. 이군이 초등 3학년 때까진 학생들을 불러 집에서 가르쳤다. 이를 위해 ‘수업용’으로 장만한 책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군은 쌍둥이 형이다. 동생(이근행군)은 용인 외대부고를 다녀 기숙사 생활을 한다. 쌍둥이는 같은 초등학교·중학교를 나왔다. 동생은 이군의 경쟁자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이며 협력자다. 가끔 주말에 동생이 오면 수학 문제를 같이 풀고, 다양한 주제로 토론한다. 평일엔 동생 책상도 이군 차지다.

이군이 책상을 옮겨 다니며 공부한 것은 중1 때부터다. 집중이 안 되기에 방에서 나와 거실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더니 막 시작한 것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이군은 “한자리에서 진득이 공부하기 힘들 때 책상을 바꿔보면 기분 전환이 돼 집중력이 생긴다. 책상 위치와 모양, 그리고 의자가 달라 자리를 바꾸는 것만으로 자세가 달라진다. 그래서 환기되는 효과가 크다”고 했다.

그래도 책상을 옮길 때 원칙은 있다. 일단 한 과목이 끝날 때까진 움직이지 않는다. 엄마가 식탁을 차리고 “밥 먹어라” 불러도 사전에 계획한 분량이 끝나지 않으면 일어서지 않는다.

눈으로만 읽는 것은 못 견딘다

이군은 교과서 등을 공부할 때 크게 소리 내 읽는다. 이군은 “소리 내서 읽으면 지루하지 않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확실히 아는 내용은 책을 보지 않고도 머릿속에 줄줄 떠오르더라”고 했다.

이런 습관에는 엄마표 조기교육이 영향을 줬다. 엄마는 쌍둥이가 갓난아기일 때 하루 3시간 이상 책을 읽어줬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만큼 좋은 교육이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독학으로 영어 공부를 해 통·번역사 자격증을 땄다. 엄마 역시 영어 공부를 하며 눈으로 읽기보다는 소리를 내 읽었다. 엄마는 쌍둥이가 초등학생이 되자 영어책을 소리 내 읽는 연습을 시켰다. 짧은 책은 통째로 암기하게 했다. 3~4개월 정도 지나자 초급 수준의 영어 원서는 아이들 혼자 힘으로도 읽어냈다. 엄마가 쌍둥이에게 직접 영어 과외를 한 것은 초등 4학년 여름방학 때 두 달이 전부라고 한다. 쌍둥이와 친구 3명 등 다섯 명에게 영문법을 정리해줬다.

이군은 지식을 아는 것 자체를 즐긴다. 시험 때도 마찬가지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시험에 나올 가능성이 없어도 깊이 파고든다. 제대로 모르는 단어가 교과서에 나오면 반드시 찾아본 후 교과서 옆에 상세히 적어 놓는다. 시험 기간에는 이런 내용을 모아 A4 4분의 1 크기의 포스트잇에 적어 책상 앞, 화장실, 냉장고 등 곳곳에 붙여 놓는다. 밥을 먹으며, 이를 닦으며 메모를 들여다본다.

이군은 주말에는 영어학원 한 곳에 가는 것 외엔 교과 공부를 하지 않는다. 대신에 TED 강연이나 교육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다. 이군은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고 의아해하는 친구가 많다. 그런데 교과 공부도 결국 우리 삶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경제학자나 물리학자의 강연을 들은 덕분에 학교 수업 내용이 쉽게 이해된 경험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군은 지난 4월부터 매주 토요일 정독도서관에서 하는 독서논술에 나가고 있다.

『일리아드』 『오디세이』 같은 서양 고전을 읽고 다른 학교 학생들과 토론하고 글을 쓴다.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시험 기간에도 참석한다. 이런 활동은 학교 외부 활동이라 학생부에 기록되지 않는다. 이군은 “대학 입시에 도움이 안 돼도 이런 공부가 언젠가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수업 중 하나라도 놓치는 것은 못 견딘다

공부와 생활

공부와 생활

이군은 학교에선 교사 설명 중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한다. 학교 수업에 모든 시험 문제의 답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수업이 끝나면 이군은 녹초가 된다. 집에 돌아와서 한 시간 낮잠을 자는 이유다. 이군은 “휴식이 공부만큼 중요하다. 뇌를 쉬게 해줘야 지식을 더 잘 쌓을 수 있다”고 했다.

이군은 학교 내신과 동아리·봉사·독서 등 비교과 활동을 두루 평가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다. 수학동아리에 참여 중이고 융합동아리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이 관심 받는 이유’에 대한 소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즐기는 것은 학교 연례행사인 ‘교육대토론회’다. 1학년 때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교육정책에 관심이 생겨 교육학과 진학을 꿈꾸고 있다. 대치동에서 자라면서 사교육 폐해를 본 친구를 많이 겪었고 이런 경험 때문에 공교육을 살리는 데 앞장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부모는 이군의 선택을 지지하고 존중한다. 이군이 지난 겨울방학 때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하자 그날로 실용음악학원을 수소문해 등록해줬다고 한다. 전교 1등인 이군과 그의 부모는 ‘명문대 진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고 여기고 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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