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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수학자의 만남, 새로운 재미 선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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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호 08면

미국 작가 버니 크라우스와 영국 스튜디오 UVA가 함께 제작한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2016). 야생 동물과 곤충들의 소리가 형광색 그래프로 84분간 구현된다.

미국 작가 버니 크라우스와 영국 스튜디오 UVA가 함께 제작한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2016). 야생 동물과 곤충들의 소리가 형광색 그래프로 84분간 구현된다.

전시장 입구. 왼쪽 그림은 프랑스 작가 장 미셸 알베롤라가 이번 전시를 위해 서울시립미술관 바람벽에 직접 그린 ‘빛의 군상’.

전시장 입구. 왼쪽 그림은 프랑스 작가 장 미셸 알베롤라가 이번 전시를 위해 서울시립미술관 바람벽에 직접 그린 ‘빛의 군상’.

중국 작가 차이 구어치앙이 화약으로 만든 작품 ‘화이트 톤’(2016).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전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졌다. 가로가 18m, 세로가 4m에 달한다.

중국 작가 차이 구어치앙이 화약으로 만든 작품 ‘화이트 톤’(2016). ‘위대한 동물 오케스트라’전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졌다. 가로가 18m, 세로가 4m에 달한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Cartier)가 현대미술을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한 것이 1984년 10월 20일. 그 후 33년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350명이 넘는 각국의 재주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이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면서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왔다. 사회를 반영하는 경제·환경·이민·수학 등에서 주제를 끌어내 이를 작가들의 디자인·사진·회화·비디오 아트·패션·퍼포먼스로 표현한 것이다.

소장품전 ‘하이라이트’로 내한한 #샹데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관장

그렇게 쌓인 1500점이 넘는 소장품 중에서 고르고 추린 작품 100여 점이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아시아 투어 전의 첫 번째 기착지가 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하이라이트’(5월 30일~8월 15일·월요일 휴관)전이다. 섬세하면서도 거대한 인체 묘사가 특기인 설치미술가 론 뮤익을 비롯해 사라져가는 원시 부족들의 목소리와 방언을 기록하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만든 레이몽 드파르동, 현대인의 불안한 성정을 유리 공예로 표현하는 장 미셸 오토니엘,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과 곤충의 소리를 녹음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버니 크라우스와 스튜디오 UVA(Universal Visual Artist)가 대표적이다. 또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는 드로잉을, 배우 기타노 다케시는 페인팅 도자기를, 만화가 뫼비우스는 애니메이션을 선보인다.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재단에서 개인전을 한 이불을 비롯해 영화감독 박찬욱·미디어 작가 박찬경 형제 듀오의 ‘파킹챈스(PARKing CHANce)’, 웹툰작가 선우훈의 이름도 전시장 한 켠을 장식하고 있다. 이 모든 작품은 무료로 볼 수 있다.

재단이 파리 라스파일 대로에 건축가 장 누벨로 하여금 유리와 철골로 근사한 미술관을 짓게 한 1994년부터 재단에서 관장직을 맡아오고 있는 에르베 샹데스(Hervé Chandès)는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결실로 만들어내는 전략가다. 그는 “창의적인 도시 서울에서 첫 순회전을 시작하게 되어 기쁘다”며 “한국을 새롭게 발견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달 30일 열린 기자 간담회와 31일 열린 최효준 서울시립미술관장과의 대담에서 밝힌 그의 생각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맨 앞은 일본 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 ‘동물과 꽃병들’(2010). 그 뒤로 파라과이 작가 훌리아 이시드레스의 ‘도자조각들’(2013)과 이탈리아 작가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얼굴 모양의 병’(2002), 브라질 작가 글라우디아 안두자르의 ‘정체성, 와카타 우’(1976) 연작 등이 보인다.

맨 앞은 일본 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의 작품 ‘동물과 꽃병들’(2010). 그 뒤로 파라과이 작가 훌리아 이시드레스의 ‘도자조각들’(2013)과 이탈리아 작가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얼굴 모양의 병’(2002), 브라질 작가 글라우디아 안두자르의 ‘정체성, 와카타 우’(1976) 연작 등이 보인다.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개인전을 한 이불의 ‘천지’(2007)와 ‘스턴바우 No. 16’(2008).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개인전을 한 이불의 ‘천지’(2007)와 ‘스턴바우 No. 16’(2008).

시계·보석 브랜드가 현대미술을 지원하게 된 계기가 뭔가.
“까르띠에는 창조를 하는 기업이다. 특히 장식미술 쪽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애착과 미학에 대한 열정을 이미 갖고 있었다. 그런 환경 아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구현한다는 입장에서 미술재단 설립을 추진했다. 아마 고전미술을 위한 재단을 만들었으면 쉬웠겠지. 현대미술은 감 잡기가 쉽지 않고 리스크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원했고 모험 정신이 충만했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어떻게 탄생했나.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현대미술은 대중들과 가깝지 않았다. 미술 전문가들이나 소수 애호가들의 영역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현대미술을 지원하려는 것은 획기적인 시도였다. 게다가 당시 프랑스는 문화예술 강국으로, 정부가 예술에 대한 지원을 주도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민간 기업, 그것도 명품 브랜드가 예술 재단을 설립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프랑스 문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화예술 후원법 제정에도 기여했다는데.
“재단 설립 후 2년쯤 지나 프랑스 문화부가 재단 설립자인 알랭 도미니크 페렝에게 기업의 예술 후원에 대한 보고서 초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이른바 ‘레오타르 법’의 기초가 됐다. 반향은 컸다. 당시 예술은 공공의 영역이었는데 민간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국가영역을 침범하는 듯한 느낌이 있을 정도였다. 이는 기업의 조세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산은 어떤가.
“메종 까르띠에 본사에서 100% 지원하는데, 운영권은 우리에게 있다. 그래서 복잡한 과정 거치지 않고 최대한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다. 전체 인원이 40~50명 가량 되는데 인건비 포함해 연간 운영 예산은 800만 유로(약 101억원) 가량 된다. 전시는 기획대로 거의 실행되는데, 비용이 추가로 많이 들어가게 되면 다음 전시의 규모를 좀 줄인다.”
그렇다면 메종 까르띠에와는 어떤 관계인가.
“재단은 메종과 다른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설립했다. 예를 들어 어떤 박물관도 수학전을 기획한 적이 없었다. 또 작가들은 메종이 하는 상업적 활동에 동참할 수 없다. 관련 제품 제작에 참여하는 것도 안 된다. 벽이 확실히 있다. 오해 소지가 없도록. 분명히 얘기해두면 분명해진다.”
재단의 운영 철학은 어떤 것인가.
“간단하다. 첫째로 작가들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 둘째, 예술의 영역을 확장한다는 것. 셋째, 국제적으로 활동한다는 것. 그리고 대중에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에르베 샹데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관장

에르베 샹데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관장

“메종은 재단에 지원만 할 뿐, 작가들과 관련성 배제”

작가들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자. 어떤 작가들과 일을 하나.
“동시대 현대미술 창작에 직접 참여한다는 생각에 생존 작가와 함께한다. 나이·국적 따지지 않고, 유명·신진 불문이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작품을 그냥 사지 않는다. 대신 전시의 주제를 정하고 이를 위해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지 작가들과 논의한다. 그렇게 만들어져 전시된 작품을 컬렉션 한다.”
어떻게 발굴하나.
“기준은 없다. 유일하게 아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다. 주제를 선정하고 조사하다 보면 어떤 작가가 있는지 알게 된다. 우리 전시연구팀은 어떤 뮤지엄에서 어떤 주제로 전시를 하는지 다 파악하고 있는데, 이들이 추천해주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유기적으로 정보를 얻는다. 버니 크라우스는 내가 책을 읽다가 발견한 작가다. 모리야마 다이도도 동경의 책방에서 찾아냈다.”
작가들에게 원하는 것은.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데 우리가 어떤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가?’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그것을 시각화하는 과정이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제거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프랑스 작가 장 미셸 오토니엘의 ‘그림자의 입; 소녀; 보이지 않는 하늘; 기피자; 저녁별’(1992) 중 부분.

프랑스 작가 장 미셸 오토니엘의 ‘그림자의 입; 소녀; 보이지 않는 하늘; 기피자; 저녁별’(1992) 중 부분.

여러 나라에서 참여하고 있다.
“84년부터 94년까지 작가 레지던시를 후원했다. 중국 작가 차이 구어치앙이나 콩고 작가 쉐리 삼바도 여기 출신이다. 지금 톱 큐레이터로 꼽히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도 지원했다. 쉐리 삼바의 경우 2000년대 초반에 개인전도 기획해주었다. 차이 구어치앙도 우리를 통해 유럽에 진출했다. 작가들을 해외 행사에 꾸준히 초대한다. 전세계를 다니며 많은 사람과 만나게 한다. 작가가 없으면 우리의 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제3세계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은 듯하다.
“아프리카뿐 아니라 소수지역 민족, 아마존 작가에게도 관심이 간다. 전통 세라믹 예술을 보전하려는 파라과이 작가의 노력은 놀라울 정도다. 그런데 그런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사실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타자성, 즉 다른 종류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다.”
작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면.
“연결된 실은 조심스럽게 돌돌 굴려야 한다. 작업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인연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주 만날수록 친해지고, 친해질수록 관계가 깊어지고, 그럴수록 작가에 대해 잘 알게 된다.”
작품 수집에 투자 목적은 없나.
“절대 없다. 우리는 시장과 거리를 두고 있다. 구입 당시 싼 작품이 지금은 아주 비싸진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팔지 않는다.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가격에는 관심이 없다. 작품 매각시 수익은 새 작품 구입 비용으로만 쓸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커다란 자유가 있다. 원하는 작가를 선택하고 그들과 맘껏 작업하는 것이다. 재단과 작가의 관계는 곧 관람객과의 관계를 결정한다.”  

미국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드로잉 ‘바인더 작업 #1, #2’(1970-2006)

미국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드로잉 ‘바인더 작업 #1, #2’(1970-2006)

프랑스 작가 레이몽 드파르동의 사진 ‘프랑스’(2004-2010) 부분.

프랑스 작가 레이몽 드파르동의 사진 ‘프랑스’(2004-2010) 부분.

일본 작가 모리야마 다이도의 ‘폴라로이드 폴라로이드’(1997) 부분.

일본 작가 모리야마 다이도의 ‘폴라로이드 폴라로이드’(1997) 부분.

영국 작가 론 뮤익의 ‘침대에서’(2005). 재단이 소장한 론 뮤익의 작품 3점이 한자리에 전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영국 작가 론 뮤익의 ‘침대에서’(2005). 재단이 소장한 론 뮤익의 작품 3점이 한자리에 전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대중에게 현실을 번역해주는 것이 예술”

사회적 이슈를 예술의 주제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문화와 예술은 세계를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보여주고 대화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예술의 공간에 현실을 끌어들이는 것, 대중을 위해 현실 세계를 번역해 주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학제적 접근 방식을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출구’의 경우 시작은 ‘어떻게 동시대의 영토, 조국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었다. 우리는 이어 생각했다. ‘영토를 어떻게 시각화할 수 있을까.’ 폴 비릴리오는 무차별 벌목 등의 이유로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을 20년 전부터 연구해온 도시학자다. ‘그의 연구를 어떻게 눈으로 보게 할 수 있을까’가 우리의 과제였고 그래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회사와 연락했다. 또 기후변화와 관련된 팀도 구성했다. 유능한 전문가들이 모이자 마치 작은 대학 같았다. 나는 한 가지만 부탁했다. ‘정말 예쁘게 해주세요! 아름답지 않으면 할 필요가 없어요. 심각하고 재미없으면 사람들의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요’라고 말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같이 얘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개념과 아아디어를 해석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이주 난민을 주제로 삼았을 때, 시사 전문가들은 미술을 몰랐다. 답은 오로지 대화였다. EU의 이민국 국장도 왔고 환경부 장관도 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수학’을 전시 주제로 삼았다는 것도 이채롭다.
“이 기획도 너무 재미있었다. 왜냐하면 전시가 어디로 갈 지 모르는 채 진행했기 때문이다. 직감을 갖고 시작하지만 어디에 도착할지 모른다. 결국 호기심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인데, 작가와 비평가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우리는 옆에서 도움을 준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공동 창작활동’이라고도 부른다. 미술과 거의 관계 없어 보이는 수학을 주제로 전시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수학자들과 준비를 한다. 형체를 만들고 내용을 집어넣는다. 몰랐던 사람들이 만나면서 새로운 것이 나온다. 이것이 재미있는 것이다.”
사진·디자인·패션·건축·만화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초기에 영화 작품을 보여주었다고 비판받은 적이 있다. 뫼비우스의 만화 세계를 선보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겐 신념이 있었다. 예술가들의 독특한 창조적 세계를 관람객들에게 새롭게 보여주고 싶다는. 사람들이 보러오고 싶어하는 전시를 만들어야 한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것을 여기서 보네’라는 놀라움을 주어야 한다. 우리는 미래를 위한 플랫폼이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가다 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전호성 객원기자·까르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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