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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브라질의 비극] 호세프 탄핵 주도한 테메르 탄핵 위기

중앙일보

입력

브라질 최대 육류가공 업체 뇌물 스캔들로 타격... 세계 8위 경제대국 위상 흔들

브라질에선 연일 테메르 퇴진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브라질에선 연일 테메르 퇴진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한때 세계 7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던 브라질이 한없이 무너지고 있다.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은 2015년 마이너스 3.8%, 지난해에는 마이너스 3.6%로 역성장했다. 세계경제가 풀리고 있다고 해도 브라질은 예외다. 브라질 올림픽 특수로 인한 경제성장 효과도 거의 누리지 못했다. 올해 겨우 플러스 성장을 회복해 0.5% 성장을 이룰 전망이다. 경제 규모도 세계 8위로 회복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1만 달러대로 복구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서민들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얼어붙었다는 게 현지 언론의 보도다.

경제 수준이나 경기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터져 나오는 사회적 불만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49로 세계 최하 수준이다. 심각한 빈부격차가 있다는 이야기다. 빈곤선 이하에서 허덕이는 극빈층은 전체 인구의 15.2%에 이른다. 실업률은 2017년 3월 통계로 13.7%나 된다. 사업하기 쉬운 국가 순위에선 123위로 바닥권이다. 부패와 비상식적인 규제가 만연하다는 이야기다. 경제 규모가 부끄러울 정도다. 2억 명이나 되는 인구, 광활한 국토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자원대국답지 않다.

그 배경에는 정치적 불안정이 도사리고 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미셰우 테메르(77) 브라질 대통령은 현재 비리 의혹으로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연정에 참여했던 전당들도 줄줄이 이탈하고 있다. 야당은 사퇴를 요구하고 있으며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테메르는 2011년 1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연정 파트너이자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취임했지만 지난해 호세프의 탄핵을 주도했다. 지난해 8월 호세프가 예산 사용과 관련한 불법행위로 탄핵 당하자 테메르가 자리를 승계해 잔여임기를 채우고 있다. 만일 메테르가 탄핵을 당하면 ‘탄핵 당한 대통령을 승계한 대통령이 또 탄핵 당하는’ 첫 사례가 된다.

테메르는 브라질 최대 육류가공 업체 JBS가 정치인 1829명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관계자의 법원 증언 기록이 공개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JBS 측이 뇌물을 제공했다고 밝힌 정치인 중에 테메르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탄핵을 당한 지우마 호세프와 국민의 존경을 받아온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정치 혐오를 부르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물론 이들은 JBS로부터 뇌물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법원 증언 기록이 공개되면서 상황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미 테메르의 측근들도 줄줄이 체포되고 있다.

극에 달한 브라질 국민의 분노

뇌물 수수 혐의로 탄핵 위기에 빠진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

뇌물 수수 혐의로 탄핵 위기에 빠진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

JBS 사건은 브라질 최대의 식품 스캔들에 이어 터진 것이어서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브라질 연방경찰은 지난 3월 17일 세계 최대 쇠고기 수출회사인 JBS와 닭고기 수출업체인 BRF를 포함한 대형 육가공회사들이 농업부의 위생검역 관리들을 매수해 유통기한이 지난 상한 고기를 유통시켰다고 밝혔다. 소시지를 비롯한 일부 가공육류 제품에 들어가면 안되는 돼지 머리와 같은 다른 부위가 혼입됐으며 일부 제품에는 골판지도 검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상한 쇠고기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산성용액에 육류를 담그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 문제는 상한 육류의 대부분이 해외에 수출됐다는 점이다. 브라질은 세계 최고의 쇠고기 수출국이다. 특히 중국과 홍콩이 소비하는 쇠고기의 35%, 닭고기의 17%가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남미산이어서 이번 스캔들은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이 사건은 브라질의 국가 이미지와 신용도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리는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브라질 경제의 5.5%, 고용의 13.3%를 차지하는 농축산업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브라질을 휘청거리게 한 대형 식품 비리의 몸통인 JBS가 테메르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에게 뇌물을 준 혐의는 그야말로 ‘국기문란급’이다.

테메르는 지난달 29일 연방대법원이 그에 대한 부패 의혹 조사 요청을 승인하자 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브라질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났으며 나는 진군을 멈추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브라질이 긴 경기침체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경제지표가 곧 발표될 것”이라며 “브라질의 미래를 위해 연금과 노동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테메르의 회견 하루 전에 엔리케 메이렐리스 재무장관은 1분기 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7~0.8%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사태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꼼수’가 엿보인다는 평이다.

정면돌파 시도하는 테메르 대통령

탄핵 당한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도 JBS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탄핵 당한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도 JBS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테메르는 이날 회견에서 내년 연말까지로 예정된 임기를 채우겠다고 밝혔다. 정치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은 테메르의 탄핵 가능성이 70% 정도라고 전망하고 테메르는 의회에서 다른 정당에 당근을 제공하면서 지지파를 확보하려고 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치적 술수에 강한 테메르의 성향으로 볼 때 지지 세력을 모아 위기를 돌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이력을 볼 때 손잡기를 꺼리는 정파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도 우파인 브라질민주운동당 소속인 그는 중도 좌파인 노동자당과 연정을 구성해 호세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2010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했다. 하지만 나중에 탄핵을 주도하면서 ‘호세프의 등에 칼을 꽂은 정치적 암살자’나 ‘배신자’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테메르는 상파울루대 법학과를 마치고 상파울루 가톨릭주교대에서 법학 박사를 받은 변호사 출신이다. 독특한 것은 그가 중동계라는 점이다. 부모가 1925년에 레바논에서 브라질로 이주했다. 레바논은 현재도 인구의 절반 정도가 기독교도이며 중동국가 중 가장 기독교도가 많은 나라로 통한다. 레바논에는 다양한 종파의 기독교가 존재하는데 테메르는 마론 전례 가톨릭교도 집안 출신이다.

테메르는 2016년 5월 12일 호세프가 브라질 상원이 탄핵 심판에 착수하면서 직무가 정지되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그해 8월 5일에 열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개회 선언을 했다. 당시 브라질을 찾았던 북한의 최용해를 만나기도 했다.

브라질은 사실 온갖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뚝심의 나라다. 1500년 포르투갈인이 들어오면서 시작된 이 나라의 근·현대사는 기네스북에 오르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의 온갖 기묘한 사건으로 가득하다. 가장 놀라운 것이 식민지 중 유일하게 본국 수도를 유치했다는 점이다. 1808년 영국의 동맹이던 포르투갈 왕국은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가 침공해오자 수도를 리스본에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임시 이전했다. 당시 군주는 정신질환을 앓던 마리아 1세(1734~1816, 재위 1777~1816) 여왕이었는데 아들 주앙(1767~1826)이 1799년부터 섭정 왕자로서 통치하고 있었다. 주앙은 영국이 나폴레옹을 물리치자 귀환했지만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하자 또다시 대서양을 건넜다. 1815년 아예 나라 이름을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베스 연합왕국’으로 바꾸고 리우데자네이루를 정식 수도로 삼았다(알가르베스는 포르투갈 남부지방). 브라질은 식민지가 아닌 연합왕국의 중심지가 됐다. 주앙은 1816년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브라질에서 주앙 6세로 즉위했다.

주앙 6세는 1820년 본국에서 자유주의자 혁명이 일어나자 돌아가서 이를 진압했다. 뒤에 남아 브라질 섭정을 맡은 아들 페드루는 1822년 독립을 선언하고 브라질 제국을 세워 초대 황제에 올랐다. 부왕과 달리 자유주의를 옹호했던 그는 의회를 만들고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였으며 1824년 헌법도 반포했다. 브라질은 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군주국으로 독립한 것은 물론 ‘제국’이라는 이름을 붙인 유일한 나라가 됐다. 1825년 주앙 6세도 독립을 승인했다. 브라질 제국은 2대 69년간 유지되다 1889년 군사쿠데타로 무너져 ‘브라질 합중공화국(Republic of the United States of Brazil)’으로 바뀌었다. 1967년부터는 브라질 연방공화국(Federative Republic of Brazil)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에 이른다.

문제는 브라질 공화국의 시작이 남미를 괴롭힌 쿠데타와 군부 독재로 시작됐다는 점이다. 193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제툴리우 바르가스(1882~1954)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1930~45년 대통령을 지내면서 경제 성장을 이뤄 인기가 높았으며 축구로 국민 통합을 시도했다. 1935년 공산 쿠데타, 1938년 파시스트 쿠데타 기도를 물리쳤다. 좌우 모두 그에 맞선 셈이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말처럼 1945년 또 다른 쿠데타로 밀려났다. 쿠데타로 일어선 자, 쿠데타로 망한 셈이다. 바르가스는 정치적인 오뚝이였다. 1950년 최초로 치러진 민주 선거에서 민선 1호 대통령에 당선한 것이다. 쿠데타 주역이 쿠데타로 쫓겨났다가 민주선거로 민선 1호 대통령이 된 것은 브라질 정치의 불가사의다. 더욱 극적인 것은 풍운아 바르가스의 운영이다. 바르가스는 1954년 경제난과 측근 비리로 사임 압박을 받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브라질 경제발전을 이끌어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얻었지만 경제난 속에서 인기도 함께 잃은 대통령이다. 브라질 역사만큼 바르가스의 삶도 극적이다.

1964년에는 카스텔로 브랑코 장군이 쿠데타로 집권해 다시 군사독재가 시작됐다. 정권의 성격은 친미반공, 외국자본 환영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무능하고 비도적적이며 국민의 뜻을 외면한 군부독재는 지지를 잃고 스스로 무너졌다. 군사정권은 1985년 끝나고 정권이 민정으로 이양돼 현재에 이른다. 2003년에는 노동자 출신의 노동운동가 룰라가 첫 좌파 대통령으로 대통령에 당선했다. 룰라는 이전의 우파 정권이 마련한 경제개발정책을 계승한 뒤 이를 잘 이끌어 브라질을 세계적인 고도성장 국가의 반열에 올려놨다. 좌파 대통령이 경제 부흥과 서장을 주도한 것이다. 성장을 통해 빈민을 줄이는 정책을 펼쳤다. 민주주의를 되찾은 뒤 나라가 안정적인 발전을 하게 됐다는 평가다. 브라질이 세계 7위의 경제 대국이 된 것은 이 당시의 활력에 힘입은 것으로 평가된다. 브라질을 포함해 고도경제성장을 하는 유망 경제국가를 말하는 브릭스(BRICs)라는 용어도 이때 등장했다. 브라질에 러시아, 인도, 중국의 머리글자를 합친 단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합치기도 한다.

온갖 시련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브라질

2011년부터는 후계자인 호세프가 이끌다가 탄핵을 당했다. 탄핵을 주도한 테메르는 지금 비리 스캔들에 휘말려 자신이 탄핵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브라질 역사는 언제나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국민은 항상 이를 극복했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하느냐다. 주목할 점은 브라질이 대표적인 다문화 국가라는 점이다. 브랑쿠라고 불리는 백인이 47.7%로 가장 많지만 파르두라고 불리는 혼혈인, 또는 갈색인종도 43.1%로 비슷한 비율이다. 네그루라고 불리는 흑인이 7.6%이고, 노랗다 또는 황인종이라는 뜻의 아마렐루라고 불리는 동아시아계도 0.4%가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이민을 많이 간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의 프로레슬러로 1976년 프로권투 챔피언 무함마드 알리와 대결해서 유명해진 안토니오 이노키도 브라질 이민 출신이다. 한국 이민자를 포함해 다양한 인종이 서로 공존하며 화합의 문화를 만들어온 브라질이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부흥을 이룰 수 있을지 전 세계가 눈여겨보고 있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의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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