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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강경화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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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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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남짓 만에 경질된 김기정 국가안보실 2차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특급 외교안보 브레인이다. 5년 전 대선 때도 연정(연대 정외과) 라인 핵심축이어서 갑작스러운 낙마는 이례적이다. 그래선지 퇴진 배경으로 여권 내부 갈등설도 나왔다. 정권 초 자주파와 동맹파가 격하게 다퉜던 노무현 정부의 데자뷔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시중에 도는 구설 등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했다. 시중 구설엔 듣기 민망한 수준의 품행 관련 대목이 많다. 사실인진 모르나.

줄잇는 외교안보 인사참사 #코드 넘어야 드림팀 나온다

중요한 건 구설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란 점이다. 제보와 항의가 제법 있었는데 임명 과정에서 무시됐다는 것이다. 코드의 힘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진용은 모두가 김 차장과 무늬와 색깔이 같다. 문정인 특보와 서훈 국정원장 후보를 포함해 핵심 포스트가 하나같이 대북 대화론자다. 목소리 다른 외교안보 담당자가 셋(이종석·나종일·반기문)이나 있어 ‘골치 아파 못살겠다’던 노무현 정부와도 다르다. 그런 걸 보면 중도 하차가 노선 대립 때문은 아닌 듯하다. 도덕성 문제다.

강경화 외교장관 후보자도 도덕성에서 걸렸다. 위장전입으로 출발해 세금 탈루에 논문 표절 등으로 확산 일로다. 그래도 결론은 임명 강행이란다. ‘우리 편’인 김기정과 경로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편은 정의롭고 도덕적이지만 우리 편이 아닌 편은 부패하고 부정직하다는 코드 정신이 깔려 있다. 같은 구설과 위장전입이라도 같은 코드면 ‘그 정도는 괜찮다’거나 ‘치명적 악성은 아니다’는 궤변이 나온다. 그래서 문제가 깊어가는 외교안보팀인데 여기서 멈추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김기정 후임으론 또 다른 핵심 코드인 박선원 전 청와대 비서관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머지 거론되는 인사도 대부분 코드인 걸 보면 국방·통일장관 역시 자주의 대오를 유지할 게 분명하다. 새 정부가 ‘3철’로 대표되는 인의 장막을 걷어내겠다고 한 건 노무현 정부의 ‘편 가르기’ 실패를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대미 자주외교를 주장한 서주석 전 청와대 수석은 국방차관에 올랐고 2선 후퇴라던 박선원 전 비서관은 하마평에 오른다. ‘노무현 2기’로 급하게 달려가는 외교안보팀이다.

문제는 이런 코드팀이 이중 삼중의 대한민국 외교안보 위기를 돌파해낼 수 있겠느냐는 거다. 북한 핵은 노무현 정부 때와 달리 분초를 다투는 긴급 현안으로 발전했다. 연내에 8~10기의 핵무기가 실전 배치될 거라고 한다. 여기에다 미국과의 통상, 중국과의 사드,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란 그야말로 쉽지 않는 문제까지 겹쳤다. 오죽하면 문 대통령이 ‘외교 문제는 걱정’이라고 했겠나. 탕평의 드림팀으로도 탈출구를 찾기 힘든 마당에 코드와 색깔에 도덕성 문제로 꼬여버린 ‘낯가림 팀’이다.

당장 문 대통령은 트럼프 미 대통령과 담판에 나서야 한다. 어차피 궁합이 맞지 않는 두 정상이다. ‘사드는 긴급 사안이 아니다’란 청와대 인식에 박수 칠 트럼프가 아니다. 가뜩이나 문 대통령은 대선기간 중 전작권 조기 전환 등 ‘자주외교’의 부활을 예고했다. 공약이 정책으로 이어지면 노무현 정부보다 훨씬 심각한 한·미 갈등이 불 보듯 뻔하다. ‘반미면 어떠냐’던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부딪쳤지만 그래도 아웃 복서였던 부시가 조금은 접어줬다. 트럼프는 쉴 새 없이 파고드는 인파이터다.

게다가 그땐 미국과 통한다는 반기문 외교장관이 있었다. 어제 청문회를 보면 강 후보자는 제2의 반기문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사드 배치를 묻자 ‘상세한 파악을 못 했다’는 외교장관 후보자다. 한·일 위안부 합의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답했다. 이 정도라면 대한민국 얼굴은 새로 찾아야 한다. 찾되 ‘진짜 탕평’ 공약을 외교안보 인선에서 시작해 드림팀을 꾸려야 한다. 외교안보야말로 너와 내가 없는 나랏일 아닌가. 바꾸지 않는 건 오만이다. 하지만 바꾼다면 이번엔 진짜 자주파가 등장할 기세다. 그래서 걱정인 강경화 이후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