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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규제에…미·일에 밀리는 한국 건강기능식품

중앙일보

입력

일본에선 토마토주스 포장지에 ‘혈중 HDL 콜레스테롤(좋은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기능이 있다’라는 표시를 할 수 있다. 한국에선 가능할까. 안 된다.
일반식품의 경우 비타민·칼슘 등 영양성분 외에 기능성 원료를 표시하거나 광고하는 게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농산물에 예외적으로 기능성 광고 문구를 붙일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 불법이 된다. 예를 들어 ‘민들레는 예부터 고혈압, 심장병, 간질환 등 성인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와 같은 문구는 안 된다. 건강기능식품은 아예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정한 기능성 원료 등급에 따라 표시 수준이 다르다.

일반식품엔 기능성 광고 못하는 한국 #세계 시장점유율 10년 넘게 1.5% #규제 풀고 경쟁력 높인 미·일과 달라 #자유롭게 팔되 처벌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이오코리아 국제컨벤션 및 바이오잡페어가 4월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했다. 견학온 학생들이 건강기능식품 원료제조 및 OEM제품 생산 업체인 (주)노바렉의 생산품을 살펴보고 있다. 강정현 기자

바이오코리아 국제컨벤션 및 바이오잡페어가 4월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했다. 견학온 학생들이 건강기능식품 원료제조 및 OEM제품 생산 업체인 (주)노바렉의 생산품을 살펴보고 있다. 강정현 기자

한국은 식품 관련 규제가 까다롭다. 먹거리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최근 규제 완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급성장 중인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 한국이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전 세계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2014년 1086억 달러로 2004년부터 10년간 연평균 5.8% 성장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34%에 달하는 미국이 최대 시장이다. 국내에서도 빠르게 시장이 확대되는 중이다. 2015년 건강기능식품 생산액은 1조8230억원으로 2011년에 비해 33.2% 증가했다. 그러나 세계 시장점유율은 1.5% 정도로 2002년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도입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은 1994년 ‘식이보충제 건강교육법(DSHEA)’을 도입한 이후 시장이 4배 이상 성장했다. 1994년 이전에 발매된 원료에 대해서는 안전하다고 간주하고, 기업들이 제조자 책임으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판매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대신 기업이 허위 광고를 하거나, 효과가 없는 제품을 팔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통해 막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권대영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미국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가령 ‘준건강인(건강한 사람과 환자 사이)’에 한해서만 인체적용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한국과 달리 환자를 대상으로도 인체적용시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전 규제보다는 사후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 다르다. 일단 정부가 제시한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사전 심의를 거쳐야 한다. 여기서 기능성이 입증된 제품만 출시할 수 있다. 심지어 2008년까지는 제형도 분말·환 등 6가지 내에서 해야 한다는 규정까지 있었다. 지금도 원료·생산·판매 전 단계에서 승인을 의무화하고, 기능성을 표현하는 표시·광고 문구 역시 승인받도록 하고 있다. 건강기능식품을 만드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입장에선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우식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진흥과장은 “애초 건강기능식품법을 설계할 때 식품보다는 의약품에 입각한 규제를 적용했다”며 “인증 과정이 워낙 복잡해 개별 업체들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기능성 원료를 개별적으로 인정받으려면 평균 5~7년이 걸리고, 비용도 4억원가량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33% 가량 성장했지만 제조업체는 5.9% 늘어나는데 그쳤다. 판매업자는 도리어 2.9% 줄어들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소비자도 주로 해외 제품을 이용한다. 2015년 건강기능식품 수입액은 5965억원으로 2011년에 비해 59.9%나 늘었다. 수출액은 904억원(2015년) 정도다.

 수출액과 수입액의 격차도 더욱 벌어지고 있다. 2011년엔 3173억원이었지만 2015년엔 5000억원을 넘어섰다. 건강기능식품의 해외 직구(직접 구입) 건수도 크게 늘고 있다. 관세청의 품목별 통관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은 1740만 건의 해외 직구 거래를 했다. 이 중 20%인 350만6000건이 건강기능식품이다. 2015년보다 35%나 증가했다. 화장품(14%)·기타식품(13%)·의류(12%) 등을 월등히 앞선다.

사후 규제는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과 비슷한 규제를 적용하던 일본은 2015년 4월 ‘기능성 표시식품’이라는 식품의 새 분류 기준을 만들었다. 일반식품 중에서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면 신고만 하고 기능성을 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핵심이다. 분류 기준을 개편한 지 1년 만에 294개 제품이 기능성표시식품으로 등록됐다. 권 연구원은 “의약품과 달리 식품의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있고, 그 알 권리를 충족시켜줄 의무가 있다”며 “신고만 하면 자유롭게 건강기능식품을 생산, 판매할 수 있도록 하되 위법이 적발되면 엄중하게 처벌하는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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