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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모스다] ⑭ 시뮬레이터로 코너링 '밥' 만들기…시뮬레이터 대중화, 모터스포츠 붐 이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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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⑫ 코너링이 뭐길래 (상) 달리고 싶다면 멈추는 것부터>를 통해 브레이킹의 중요성과 트랙션 서클(Traction Circle)의 정의에 대해서 알아봤다. 트랙션 서클은 전후좌우 타이어가 활용할 수 있는 마찰력의 임계치를 가상으로 그린 원이다. 차량은, 보다 정확히 말해서 타이어는 이 원 안에서 움직인다. 좋은 코너링은 이 원의 둘레를 활용하는, 즉 종방향 그립과 횡방향 그립의 사용을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트랙션 서클은 완벽한 원이 아니다. 그보다는 밥이 가득 담긴 공기밥에 더 비슷하다. [중앙포토]

실제 트랙션 서클은 완벽한 원이 아니다. 그보다는 밥이 가득 담긴 공기밥에 더 비슷하다. [중앙포토]

실제 트랙션 서클 또는 마찰원(Friction Circle)의 모습은 완벽한 원의 모양이라기 보다 공기밥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도 정 없는 공기밥 말고, 애정이 듬뿍 담긴 '고봉' 공기밥 말이다. 물론, 이 경계를 벗어나면 자동차는 정도 애정도 없는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대부분의 차량은 횡방향 그립에 있어 좌우의 한계가 동일하다. 하지만 가속보다 감속의 폭이 더 큰 만큼 그래프는 완벽한 원의 모양을 만들지 못한다.

오늘의 모터스포츠 다이어리는 이러한 코너링을 '밥'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의 이야기다. 물론, 수년째 이 밥을 제대로 만들지도 먹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이 과정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코너에 접어들기 전, 풀브레이킹은 타이어가 지닌 마찰력을 최대로 활용해 감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종방향의 그립을 최대한 사용할 때, 타이어는 좌우로 움직이기 위한 횡방향의 그립을 갖고 있지 않다. 때문에 차를 선회시키기 위해선 그만큼 브레이크를 풀어줘야만 한다.

포르쉐 928s와 도요타 셀리카의 트랙션 서클. [사진 템포럴 닷컴]

포르쉐 928s와 도요타 셀리카의 트랙션 서클. [사진 템포럴 닷컴]

서클의 크기는 차종에 따라, 또는 타이어의 종류에 따라 상이하다. 차종마다 무게나 서스펜션의 특성이 다르고, 타이어에 따라 땅을 움켜쥐는 그립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위의 트랙션 서클 그래프는 80~09년대를 풍미했던 스포츠카 두 대의 접지력을 보여주는 그래프다. 포르쉐 928s와 도요타 셀리카가 그 주인공인데, 기본적인 형상은 비슷해도 그래프의 크기는 차이가 크다. 928s가 가속과 감속, 선회성능 모두에 있어 셀리카를 압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마진 없는' 주행을 위해서는 트레일 브레이킹이 필수적이다. 트레일 브레이킹을 쉽게 표현하자면 '감속→선회→가속'으로 구성된 코너링의 3단계를 구분동작이 아닌, 서로 중첩되는 연속동작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트레일 브레이킹

A라는 차량이 있다. 이 차의 한계 횡그립은 정해져 있다. 당신의 눈 앞에 코너가 놓여있다. 아무런 뱅크나 경사가 없는 이 코너에서 당신의 차는 60km/h의 속도 이상으로는 돌아나갈 수 없다. 코너를 앞두고 풀 브레이킹을 한다. 스티어링휠을 돌리는 만큼 조금씩 브레이크 페달을 풀어준다. '무리해서 들어온 것 아닌가' 겁이 나지만 어느순간 코너 한 가운데에서 속도계는 60km/h를 가리키고 있다. 코너를 돌아나갈수록 스티어링휠을 다시 풀어준다. 또 그만큼 액셀레이터 페달을 조금씩 밟는다.

트레일 브레이킹을 활용한 코너링의 예. [사진 모터트렌드 유튜브 캡처]

트레일 브레이킹을 활용한 코너링의 예. [사진 모터트렌드 유튜브 캡처]

#단순 'ON/OFF식 브레이킹'

스티어링휠을 돌리기 전, 브레이킹을 통해 속도를 60km/h까지 늦춘다. 스티어링휠을 돌린다. 코너를 지나 직선 구간이 나오면 액셀레이터를 밟는다.

단순한 ON/OFF 방식의 브레이킹에는 다음과 같은 맹점이 있다. 코너를 돌아나가기 전, 다시 말해 '턴인(Turn-In)'을 하기 전 이미 당신은 60km/h라는 제한속도에 맞춰 감속한 상태다.

스티어링휠을 꺾고 코너를 돌아나가는 와중에 당신은 브레이크와 액셀레이터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밟고 있지 않다. 속도는 60km/h에 유지되고 있을까? 아니다. 동력을 가하지 않는데다 선회를 하며 마찰력이 가해져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 코너를 다 돌아나가고 액셀레이터에 발을 가져가기 직전, 차의 속도는 50km/h까지 떨어져 있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선 선회 중간,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액셀레이터를 지속적으로 조절해줘야 한다.

차량의 하중이동. 가속시엔 뒤로, 감속시엔 앞으로 하중이 이동한다. &#39;하중이 가는 곳에 그립이 있다&#39;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진 Mercedes AMG DTM]

차량의 하중이동. 가속시엔 뒤로, 감속시엔 앞으로 하중이 이동한다. &#39;하중이 가는 곳에 그립이 있다&#39;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진 Mercedes AMG DTM]

그뿐만이 아니다. 브레이크 페달과 액셀레이터 페달 중 아무 것도 밟고 있지 않고 있으면 차량의 전후 하중도 상대적으로 뉴트럴한 상태다. 또, 속도 유지를 위해 스로틀을 여닫는 과정에서 차의 하중은 앞뒤로 요동치게 된다.

이는, 앞바퀴가 활용할 수 있는 그립을 오롯이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다음의 그림을 통해 트레일 브레이킹과 ON/OFF식 브레이킹의 직접적인 차이점을 비교할 수 있다.

트레일 브레이킹의 경우, 코너에 진입한 이후에도 일정량의 감속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풀브레이킹 시점이 더 늦다. 반면, 가속하는 시점은 ON/OFF식 브레이킹보다 소폭 빠르다. 트레일 브레이킹이 빠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트레일 브레이킹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설명한 그래프다. 접지력을 감속하는 데에 집중하다 감속을 줄이는 만큼 스티어링하며 접지력의 활용을 최대화한다. 에이팩스를 찍고 스티어링을 점차 풀어줌과 동시에 그로인해 남는 접지력을 가속하는 데에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적정 수준을 넘어서는 가속을 하면 스티어링에 활용하는 접지력과 가속에 활용하는 접지력의 합이 한계점을 넘게 된다. 오버스티어다.

예로부터 드라이버들이 이러한 페달과 스티어링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연습하기 위해 전해져 내려오는 연습 방법이 있다. 스티어링의 끝과 발끝을 실로 연결하는 것이다.

풀스로틀 또는 풀브레이킹 상황에선 스티어링휠이 돌아갈 여분의 실이 없다. 스티어링휠을 돌리려면 발끝은 들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눈으로만 보던 트랙션 서클 그래프를 몸소 느끼는 순간이다.

이를 연습하기 위해선 수없는 반복이 필요하다. 과진입 또는 지나친 브레이킹으로 타이어의 횡방향 그립을 허락하지 않는 한계점을 정확히 깨닫기까지 수차례의 언더스티어(스티어링휠을 돌린 각도보다 차가 덜 돌아나가는 현상)를 겪어야 한다. 간혹 급작스러운 하중이동으로 오버스티어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유류비나 타이어, 브레이크 패드 등 각종 소모품에 들어가는 비용뿐 아니라 오랜 시간까지 필요한 일이다. 이제 그간 '오락기'로 치부되던 레이싱 시뮬레이터가 빛을 발할 때가 됐다.

위의 파란 그래프는 지난해 8월 인제스피디움을 주행한 결과 얻은 트랙션 서클 그래프다. 풀브레이킹에선 약 0.9G에 가까운 중력 가속도가 나오고, 선회시 1.2G 가량의 중력 가속도가 기록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점들의 움직임을 보면, 공기밥 보단 마름모에 가깝다. 풀브레이킹에 이은 선회 과정에서 횡그립의 활용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점의 파악이 이뤄졌다면 그 해결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대중적인 레이싱 시뮬레이터 프로그램들은 모두 나름의 정교한 물리 엔진을 통해 차량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각 프로그램은 생김새는 달라도 주행과 관련된 많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시각화해 보여준다. 덕분에 가속 또는 브레이크 페달의 입력량과 스티어링휠의 조타각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GranTurismo 6 홈페이지]

[사진 iRacing 홈페이지]
[사진 Assetto Corsa 홈페이지]
[사진 F1 2016 홈페이지]

이를 통해 코너링 과정에서 하중 이동을 수월하게 하고 있는지, 트레일 브레이킹과 같은 이론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연습으로 많은 부분들을 배울 수 있다. 사진 박상욱 기자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연습으로 많은 부분들을 배울 수 있다. 사진 박상욱 기자

가장 먼저 와닿았던 부분은 브레이킹이다. 이론만 공부했을 때와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페달의 전체 깊이를 100이라고 했을 때, 100에서 0까지 균일하게 발을 떼는 것이 트레일 브레이킹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브레이크 페달의 답력과 실제 캘리퍼의 움직임이 100% 일치했을 때 가능한 얘기다. 대부분의 양산차에선 어떨까. 이해를 돕기 위해 과장을 하자면, 100%에서 50%로 페달을 밟은 양을 줄일 경우 실제 캘리퍼는 100%에서 20% 수준으로 디스크를 움켜쥐는 힘을 줄인다. 50%만 줄이겠다는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 브레이크를 거의 놓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브레이크 페달 어셈블리의 구성. 양산차 대부분은 페달의 유격(파란색)이 존재한다. 이후 조작구간 초반(빨간색), 유압 등을 이용해 실제 페달이 밟히는 것보다 더 많이 브레이크 캘리퍼를 작동시킨다.

브레이크 페달 어셈블리의 구성. 양산차 대부분은 페달의 유격(파란색)이 존재한다. 이후 조작구간 초반(빨간색), 유압 등을 이용해 실제 페달이 밟히는 것보다 더 많이 브레이크 캘리퍼를 작동시킨다.

브레이크 페달은 기본적인 '유격(파란색)'이 존재한다. 또, 초기 제동성능의 확보를 위해 페달 움직임의 초반(빨간색)에 유압을 이용해 캘리퍼의 움직임을 더욱 크게 만든다. 페달과 캘리퍼의 움직임을 100% 일치시킬 경우,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브레이크가 엄청 밀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풀브레이킹 상황에서 선회를 하기 위한 횡그립을 확보하는 데에는 '발가락을 살짝 들어올릴 정도(노란색)'의 움직임이면 충분하다.

시뮬레이터 프로그램들은 실시간으로 차량에 입력되는 각종 Input을 시각화해 보여준다. [사진 : 각 제조사 홈페이지]

시뮬레이터 프로그램들은 실시간으로 차량에 입력되는 각종 Input을 시각화해 보여준다. [사진 : 각 제조사 홈페이지]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횡그립을 확보함과 동시에 하중을 여전히 조향하는 바퀴에 실어줄 수 있게 된다. '트레일 브레이킹'이 비로서 구현되는 것이다. 시뮬레이터를 통해 주행 도중 브레이크 페달의 움직임과 브레이크 작동 정도를 보여주는 그래프의 움직임을 비교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부분이다.

그렇다면, 시뮬레이터를 통한 연습이 실제 주행에서 어떤 효과를 불러왔을까. 동일한 차량으로 다시 인제스피디움을 찾았다. 그리고, 이날의 결과(빨간색 그래프)를 이전 주행과 비교해봤다.

제동 과정에서 0.9G를 기록했던 지난 주행과 달리 이번엔 1.0G를 기록했다. 동일한 차량으로 주행한 만큼, 브레이크 성능의 변화는 없었다. 때문에 이전보다 효율적인 브레이킹을 했다고 보는 편이 옳겠다. 선회 과정에서도 1.2G를 기록했던 지난 주행보다 0.1G 높은 1.3G라는 기록이 남겨졌다.

단순히 횡G와 종G의 최고치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래프의 점들이 찍힌 양상도 달라졌다. 마름모꼴에 가까웠던 이전 그래프의 아랫부분과 달리 더 둥근 모습이다. 종전보다 감속과 선회 과정에서 그립의 활용 폭을 넓혔다는 뜻이다. 또, 공기밥의 그릇이 널찍해진 것뿐 아니라 밥의 양도 늘었다. 감속과 선회에서의 효율성 증대가 곧 재가속의 효율성 증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물론, 시뮬레이터가 만능은 아니다. 실제 몸으로 중력가속도를 느끼는 데에 제약이 있는데다 실제 환경과 100% 일치하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또, 모니터를 통해 주행 모습을 지켜보면 속도감 역시 실제보다 훨씬 못하다. 꽉막힌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교외로 향하는 기분도, 주행을 마치고 함께 땀을 식히며 이야기할 사람도, 코끝을 자극하는 타이어 타는 냄새도 없다. 하지만 효율적인 연습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시뮬레이터가 만능은 아니다. 이를 설치하는 것도 간단치만은 않다. 사진 박상욱 기자

시뮬레이터가 만능은 아니다. 이를 설치하는 것도 간단치만은 않다. 사진 박상욱 기자

이처럼 시뮬레이터를 통한 주행 연습의 효과를 보고 나니, 왜 이제서야 이걸 깨달았을까 아쉬워졌다. 또, 이러한 시뮬레이터를 통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다면 얼마나 더 큰 개선이 이뤄질지 기대됐다. 어떤 방향이 옳고, 어떤 방법이 더 좋은지 전문가의 조언이 더해진다면 차와 운전에 대해 더욱 빨리, 그리고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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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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