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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갈등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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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신홍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박신홍중앙SUNDAY 차장

박신홍중앙SUNDAY 차장

갈등은 칡 갈(葛)자와 등나무 등(藤)자의 조합이다.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감고 올라가는 속성상 둘이 얽히면 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줄기도 뿌리도 워낙 질겨 자르기조차 힘들다. 개인이나 집단 간의 마찰과 반목을 상징하는 단어로 흔히 쓰여 온 이유다. 그렇다고 갈등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치부할 일도 아니다. 인간 세상에 얽힘과 부딪힘은 늘 있는 법.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내느냐다.

정치도 본질적으로 갈등을 기반으로 한다. 정당 간에 이견과 다툼이 있다 보면 이를 조율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그 과정에서 정치의 영역이 자리 잡게 된다. 바꿔 말하면 생각이 다른 자들끼리 싸우는 게 정치다. 다만 민주주의 체제인 만큼 주먹 대신 말로 다투라는 거고 엄격한 규칙하에 공정하게 경쟁하라는 거다. 여기에 갈등의 수위를 조절하면서 생산적인 결과물까지 도출해 내면 금상첨화다.

학문적으로도 갈등은 제거돼야 할 사회악에서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개념으로, 더 나아가 적절한 관리의 대상으로 바뀌어 왔다. 그리고 그 관리의 최종 목표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바로 정의(justice)였다. 20세기 영국의 사상가 스튜어트 햄프셔가 “정의는 갈등이다”는 화두를 던진 게 대표적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를 “민주주의에서 정의로운 것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여러 의견과 이익들이 갈등하고 경쟁하면서 형성된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새 정부 들어 협치나 통합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국민도 언론도 이젠 좀 싸우지만 말고 잘 협조해서 국정을 이끌어 달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싸움 자체를 죄악시할 필요는 없다. 그럴수록 물밑 검은 거래만 늘어날 뿐이다. 갈등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할 필요도 없다. 그럴수록 적대적 공생 관계만 강화되고 기득권만 공고해질 뿐이다. 우리가 그동안 이런 경우를 얼마나 숱하게 겪어 왔는가.

정치인들에게 싸우지 말고 친하게만 지내라는 기대는 허상일 뿐이다. 축구선수에게 태클도 하지 말고 신사답게 웃으며 공만 돌리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추첨이나 인기투표로 우승팀을 가릴 순 없지 않은가. 오히려 “싸우지 말라” 대신 “제대로 멋지게 좀 싸워 보라”며 등을 떠밀어야 한다. 그러곤 눈과 귀를 열어 놓고 링 위에 오른 선수들이 반칙을 하진 않는지, 국가는 뒷전이고 자기 잇속만 챙기진 않는지, 실력은 안 되는데 입만 살아 있진 않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도 심판 무서운 줄 안다.

정의는 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부탁한다고 누가 기꺼이 건네주는 것도 아니다. 유권자가 심판 역할을 잊고 관중석에 파묻혀 야유만 퍼부어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오히려 휘슬을 손에서 놓지 않아야 공정성이 담보되고 정당성이 확보되며 그 위에 정의가 자리 잡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속 좁은 협치(狹治)나 윽박지르기만 하는 협치(脅治)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한 협치(協治)로 나아가는 길이다.

박신홍 중앙SUNDAY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