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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치는 인권위'라는 지적 가장 뼈 아파"…'위상 강화' 숙제 안은 인권위원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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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는 늘 뒷북 친다'는 지적이 가장 뼈 아팠다."
7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만난 이성호(60) 국가인권위원장이 말했다. 임기를 1년여 앞둔 이 위원장은위기와 기회라는 '양날의 칼'을 쥐고 기로에 섰다.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쥐어준 '위상 강화'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위기를 먼저 수습해야 한다. '정권 눈치보기식 뒷북 결정' '인권위원 밀실 선임' '인권 전문성과 신뢰성 약화' 등 외부에서 제기되는 인권위를 향한 비판들에 대해 이 위원장은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현직 인권위원장의 '반성문'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이 7일 서울 중구 인권위 집무실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이 7일 서울 중구 인권위 집무실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인권위의 '뒷북 결정'이 이어져 온 이유는 뭔가.

"솔직히 정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주저하거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다소 소극적으로 결정을 내려온 경우가 과거부터 쭉 있었다. 또 인권위 내부 프로세스 자체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에 결정을 내리려면 실태 조사를 해야 하고, 기획재정부의 예산을 받아야 해 늘 늦어지는 면도 있다. 요즘 직원들에게 인권 업무의 적시성과 실효성을 높이자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등이 있었을 때는 위원장 차원에서 성명을 냈는데 이런 형태의 '위원장 성명'도 활발히 낼 계획이다."

인권위원 선임 절차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계속 있었다.

"인권위원 선임 과정의 투명성 확보는 대단히 중요하다. 인권위원 선출기관인 정부·국회·대법원에 '인권위원 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한 인권위원 선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인권위원 인사가 있을 때마다 협조 요청을 하는데 다들 '끄덕끄덕' 하다가도 막판에는 '상황이 안 될 것 같다'며 난색을 표한다. 지난 정부에서는 유일하게 야당(더불어민주당)만이 나름대로 추천위원회 절차를 거쳐 위원을 선임했다. 현재 각 기관에 후보 추천위를 통해 인권위원을 선임하도록 법제화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권위의 위상이 보수 정권을 거치며 약화된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집권한 이후 인권위의 2개국 11개과를 폐지하고 정원을 대폭 감축했다. 법률 개정으로 대통령 직속기구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2011년에는 인권위 계약직 조사관의 계약 연장을 거부한 데 대해 1인 시위를 벌인 직원 11명을 징계한 일도 있었다. 그 사이 이미 인권·시민단체들과의 관계는 멀어졌다. 2015년 8월 취임 직후 문제의 심각성이 눈에 들어왔다. '소통협력팀'을 신설해 인권단체들과 관계 개선에 힘썼고 과거 1인 시위 등으로 징계를 받은 직원을 승진시키는 등 내부 화합에 나섰다. 여전히 부족한 점은 많지만 천천히 개선되는 중이다."

◇"나름의 노력도 있었다는 건 알아줬으면" 

'반성' 속에서도 이 위원장은 "'그동안 인권위가 한 게 뭐 있느냐'는 지적은 솔직히 좀 억울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전임 위원장인 현병철 전 위원장과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대부분의 여론이 현 전 위원장 시절을 떠올리며 '보수 정부에선 인권위의 역할이 엉망이었다'고 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2001년 창립 이후 지난해 인권위의 정책권고 및 의견표명(72건)이 제일 많았다"며 '2016 국가인권위원회 연간보고서'를 펼쳐 보여주기도 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그만큼 말을 아낀 것 아닌가.

"그건 절대 아니다. 지난해 3월에는 '청와대 인근 집회에 대한 일괄적 금지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의 권고를 내렸다. 이 권고가 지난해 말 촛불집회 때도 그렇고 최근 경찰의 완화된 집회 허용 방침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8월에는 고용노동부의 '공공인사지침 및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에 대해 '근로기준법 취지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뜻을 내기도 했다. 정권에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해본 적 없다. 오히려 현 전 위원장 때 떨어진 인권위의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등급을 상향시키는 게 내 관심사였고 실제로 1년 만에 '등급보류'에서 A등급으로 복구시켰다."

'이성호 위원장호' 인권위는 정권의 휘둘림으로부터 자유로웠다는 건가.

"인권단체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활동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권위 나름대로도 그동안 고민이 많았고 다양한 인권 현황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문재인 정부도 아무 능력 없는 기관에게 힘을 실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회의록 등 인권위 결정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인권위 결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회의록 공개도 검토 중이지만 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인권위원들 입장에서는 자기가 발언하는 모든 게 공개된다고 하면 목소리를 제대로 못낸다. 일례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결정을 냈을 때 회의 과정에서 난 찬성 쪽에 있었지만 일부 위원들은 반대했다. 결국 합의를 거쳐 찬성 쪽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만약 이 회의록이 공개됐다면 일부 위원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릴 수 있었다."

일부 인권위원들에 대한 자질 논란이 있는데.

"두 분 정도의 전·현직 위원들이 특별히 많이 지적받는 것 같다. 인권위원회의 회의 결정 과정은 기본적으로 다수결이다. 이분들이 소수 의견을 낼 순 있어도 결론이 뒤바뀌진 않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와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 권고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결정들도 이 인권위원들이 포함된 위원들과 치열한 토론을 통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물론 이런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인권위원 선임 과정의 투명성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남은 1년, 내부 쇄신 먼저 하고 간다 

7일 서울 중구 인권위 집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 최정동 기자

7일 서울 중구 인권위 집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 최정동 기자

인권위는 최근 안석모 사무총장을 단장으로 한 '위원회 업무혁신 TF'를 꾸렸다. 인권위 내·외부에서 나오는 여러 지적들을 다시 한 번 제대로 검토해 보겠다는 취지다. 이전 정부들을 거치며 떨어질대로 떨어졌던 인권위의 위상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일종의 '통과 의례'기도 하다.

TF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게되는 건가.

"수행 과제는 크게 ▶조직 재설계 ▶신속한 현안 대응력 제고 방안 ▶위원회 업무 수행 과정의 투명성 확보 ▶사무처 인력 구성의 다양화 및 전문성 강화 ▶공공기관의 권고수용지수 개발 등으로 나뉜다. 9일쯤 조직 구성이 확정되는데 인원은 15명 내외가 될 것이고 활동 기간은 2주다."

남은 임기 동안은 어떤 활동을 주로 할 계획인가.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던 건데 정권이나 정치적 상황의 변화와 관계 없이 모든 기관에 대한 감시·조언·견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권위가 헌법기관이 돼야 한다. 인권위원장이 입법·사법·행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권위를 지녀야 인권위가 정권에 휘둘리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이 같이 시행된다는 데 이때 인권위의 헌법기구화 문제를 관철시키는 게 가장 큰 목표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이성호 위원장은….

1957년 충북 영동 출신으로 신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남부지법원장·서울중앙지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5년 7월 청와대는 그를 인권위원장으로 내정하며 "약 30년 간 판사로 재직하면서 인권을 보장하고 법과 정의, 원칙에 출실한 다수의 판결을 선고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당시 인권단체들은 "이 위원장은 판사 경력 외에는 별다른 인권 관련 이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인권위원장 자리는 인권변호사나 대학 교수들이 차지하는 일이 많았다. 한 기관을 안정적으로 경영한 경험이 있는 위원장은 나밖에 없다. 그 점을 강점으로 삼아 인권위의 제도적 기틀을 완성한 인권위원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의 임기는 내년 8월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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