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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人流]이들은 왜 ‘화이트’ 로 몰려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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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다. 그런데 입은 사람은 의외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제대로 차려입지 않으면 어딘가 촌스러운, 다시 말해 소화하기 어려운 옷이라서다. 바로 화이트 패션 이야기다. 정장 속 와이셔츠를 비롯해 성별 불문 누구나 흰 셔츠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만큼 화이트 패션은 우리에게 가깝다. 그런데도 잘 차려 입자고 들면 이만큼 부담스러운 옷이 또 없다. 화이트가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남녀노소 모두 화이트 앞에서 이토록 작아지는가. 화이트 패션을 잘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준비했다. 화이트를 정복할 해법을. 이 여름, 당신은 그저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백성원 포토그래퍼, 화이트디너코리아, 각 브랜드

지난 5월 27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아레나 광장에서 디네 앙 블랑 행사가 열렸다. 석촌호수 등 인근 3곳에 우선 모인 참석자들이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화이트디너코리아]

지난 5월 27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아레나 광장에서 디네 앙 블랑 행사가 열렸다. 석촌호수 등 인근 3곳에 우선 모인 참석자들이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화이트디너코리아]

지난 5월 27일 오후 6시 서울 잠실 롯데월드 인근 광장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흰색으로만 차려 입은 1500여 명의 사람들이 한 데 모인 것. 보기 드문 화이트 물결엔 이유가 있었다. 오로지 흰 옷만 있고 모여서 밥을 먹는 ‘디네 앙 블랑(Diner en Blanc)’ 행사가 열렸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로 ‘순백의 만찬’이란 뜻의 이 행사는 1988년 창립자인 프랑수아 파스키에가 친구들과 파리 인근에 있는 공원에서 파티를 열면서 시작됐다. 파스키에는 파티의 참석자가 누구인지 서로 잘 알아보기 위해 드레스 코드를 눈에 잘 띄는 ‘화이트’로 정했다.

지난 5월 27일 잠실 롯데월드 아레나광장에서 열린 ‘디네 앙 블랑’ 행사 현장. ‘모든 것을 화이트로 준비할 것’ 이라는 행사 규칙에 따라 머리 장식부터 옷, 신발을 모두 흰색으로 갖춰 입었다. 참가비는 1인당 5만5000원으로, 테이블·의자·접시 등 식사에 필요한 집기와 음식은 모두 참가자가 직접 준비해야 한다. 의자와 접시, 테이블 장식이 모두 다른 이유다.

지난 5월 27일 잠실 롯데월드 아레나광장에서 열린‘디네 앙 블랑’ 행사 현장. ‘모든 것을 화이트로 준비할 것’ 이라는 행사 규칙에 따라 머리 장식부터 옷, 신발을모두 흰색으로 갖춰 입었다. 참가비는 1인당 5만5000원으로, 테이블·의자·접시 등 식사에 필요한 집기와 음식은 모두 참가자가 직접 준비해야 한다. 의자와 접시,테이블 장식이 모두 다른 이유다.

30년 동안 행사를 이어오면서 지금은 파리를 비롯해 뉴욕·런던·시드니·싱가포르 등 전세계 75개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행사가 됐다. 한 해에만 12만 명 이상이 참석하는데 신청자 수는 5배에 달하는 무려 60만 명이란다. 행사 참석자는 신청자 중에서 바로 지난 해 행사 참석자와 그가 추천한 사람을 우선으로 뽑는다. 국내에는 우연한 기회에 뉴욕 행사에 참석했던 박주영 대표가 지난해 처음 들여왔다. 올해는 서울과 오는 8월 부산에서 두 번에 걸쳐 열리는데, 서울 행사의 참석자만해도 지난해 대비 500명이 늘었다.

쉽고도 어려운 ‘올 화이트 룩’ #때론 화려하게, 때론 평범하게 소화하기

평범한데 어렵다

디네 앙 블랑 인터내셔날의 에머픽 파스키에 대표가 냅킨 웨이브(냅킨을 흔드는 것)로 이날 행사 시작을 알리고 있다.

디네 앙 블랑 인터내셔날의 에머픽 파스키에 대표가 냅킨 웨이브(냅킨을 흔드는 것)로 이날 행사 시작을 알리고 있다.

최근 야외 페스티발이 인기라 하지만 디네 앙 블랑이 이렇게 인기를 끈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드레스 코드인 화이트가 주는 강한 매력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입고 싶은 옷이지만 막상 입으려면 정작 기회는 또 없다. 혹여 특별한 자리가 있다 해도 어지간한 멋쟁이가 아니고서는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게 바로 화이트 패션이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실장은 “화이트 룩이 모두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 디네 앙 블랑은 그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참석자들은 이날 흰 옷을 한껏 즐겼다. 평소에 흔히 입는 흰 셔츠에 흰 바지차림에서부터 레이스로 된 하얀 원피스, 흰 재킷과 바지를 매치한 매니시룩, 웨딩드레스와 중세 유럽을 연상시키는 드레스 차림까지 등장했다. 게스트로 초대된 개그맨 박나래는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여주인공이 떠오르는 1920년대풍 화이트 레이스 드레스를, 스타일리스트 신우식 대표(나피스타일)는 동그란 모자에 어깨에 망토가 달린 해군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게스트로 참석한 개그맨 박나래·김영희·홍현희·김지민(왼쪽부터).

게스트로 참석한 개그맨 박나래·김영희·홍현희·김지민(왼쪽부터).

패션 스타일리스트 조대호(왼쪽)씨와 해군 복장을 한 신우식(맨 오른쪽)씨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가운데는 신씨의 일본인 친구.

패션 스타일리스트 조대호(왼쪽)씨와 해군 복장을 한 신우식(맨 오른쪽)씨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가운데는 신씨의 일본인 친구.

허리를 잘록하게 강조한 1950년대 풍 드레스를 입고 행사에 참석한 재키김(56)씨는 “결혼식 말고는흰 옷을 이렇게 차려 입을 일이 없는데 기회가 생겨 즐거운 마음으로 나왔다”고 했다. 친구와 함께 참석한 신지혜(35)씨는 “영화제 여배우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며 “평소 이렇게 입고 싶어도 이상해 보일까봐 엄두를 못 냈는데 여기는 모두 하얗게 차려 입고오니 마음 편하게 입었다”고 말했다. 설립자 프랑수아 파스키에의 아들 에머릭 파스키에 디네 앙 블랑 인터내셔날 대표는 “누구나 흰 옷에 대한 열망이 있다”며 “처음엔 어색해 하지만 한 번만 흰 옷을 제대로 입고 디네 앙 블랑에 참석하면 다음 행사를 기다릴 뿐더러 또 점점 더 화려하고 과감한 의상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뭘 입어도 돋보인다

이름이 똑같은 패션 파워블로거 유진·유진 부부.

이름이 똑같은 패션 파워블로거 유진·유진 부부.

많은 사람들이 화이트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 색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 때문이다. 순수하고 깔끔한 그리고 단정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가 하면 관능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느낌을 풍기기도 한다. ‘화이트 셔츠’를 자신의 시그니처로 삼을 만큼 흰 색을 좋아하는 진태옥 디자이너는 “화이트는 럭셔리하고 시크하면서 귀족적인 색”이라고 정의했다. 그 어떤 색보다 품위가 있으면서 세련된 색이란 의미다. 한혜연 실장은 “순수한 동시에 럭셔리한 느낌이 있다. 특히 아래·위를 모두 화이트로 입는 스타일은 고급스럽고 부유한 느낌을 준다”며 “화이트로 스타일링 할 때만 느껴지는 쾌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입는 사람을 가장 돋보이게 만든다. 김은혜 디자이너(로켓런치)는 “옷 자체 보다 그걸 입는 사람에게 더 주목하게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화이트 원피스를 입은 참가자. 뒤로 지난 4월 개장한 제2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화이트 원피스를 입은 참가자. 뒤로 지난 4월 개장한 제2롯데월드타워가보인다.

대표적인 게 신부의 웨딩드레스다. 결혼식에서 가장 주목 받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신부이고, 신부가 순백의 드레스를 입었을 때 그런 목적을 가장 극대화한다. 지난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정숙 여사가 입은 흰 옷 역시 이런 역할을 톡톡히했다. 김 여사는 흰색의 무릎길이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무늬가 새겨진 흰 재킷을 겹쳐입었다. 민율미 한국패션심리연구소 소장은 “김 여사 옷은 화사하고 밝은 이미지를 만든 동시에 자신을 드러내는 메시지가 있었다”고 분석했다.취임식 전 공식석상에서는 문대통령과 비슷한 색의 옷을 입다가 취임식에서 흰 옷을 입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얘기다.

누구나 있지만 누구나 못 입는 옷

3곳의 집결지 중 하나였던 잠실 석촌호수에서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디네 앙 블랑 참가자들. 여자는 흰 원피스와 슈트, 남자는 셔츠와 바지를 주로 입었다. 간혹 흰 모자로 멋을 낸 사람도 눈에 띈다.

3곳의 집결지 중 하나였던 잠실 석촌호수에서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디네 앙 블랑 참가자들. 여자는 흰 원피스와 슈트, 남자는 셔츠와 바지를 주로 입었다.간혹 흰 모자로 멋을 낸 사람도 눈에 띈다.


화이트에 대한 대한 열망은 분명 누구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입으려고 하면 난감해진다. 평소 흰 옷을 잘 입지 않다보니 상·하의까지 다 맞춰 입을 수 있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드물다.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디네 앙 블랑이 행사에 참석했다는 신은경(34·일산)씨는 “(흰 옷은) 평소 잘 입지 않는 옷이다보니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신씨와 함께 온 허진우(33·흑석동)씨 역시 “옷장에 제대로 갖춰 입을 수 있는 흰색 옷이 아예 없어 셔츠며 바지를 전부 새로 샀다”고 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 굉장히 익숙한 옷인데 막상 입으려면 낯설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김민주 실장은 “한국인들은 화이트를 좋아하면서도 입기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중년 남성들이 어두운 정장을 벗고 신발까지 전부 흰색으로 갖춰 입었다.

중년 남성들이 어두운 정장을 벗고 신발까지 전부 흰색으로 갖춰 입었다.

평소 화이트 셔츠를 늘 슈트 속에 입고 다니는 남성도 어지간한 멋쟁이가 아니고서는 바지·재킷 등 다른 화이트 아이템에는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셔츠·티셔츠 외에는 흰 옷을 선택할 때 망설이게 된다. 패션 스타일스트 신우식 대표는 디네 앙 블랑 행사장에서 “관심이 많으면서도 위 아래를 전부 화이트로 입어야 한다는 드레스 코드가 부담스러워 이날 행사에 오지않은 사람이 많았다”며 “만약 블랙으로 위 아래를 전부 갖춰 입으라 했으면 쉽게 생각해 올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이트 패션이 어려운 이유가 뭘까. 뚱뚱해 보인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 소장은 “화이트는 어두운색에 비해 부피가 커 보이는 팽창색”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막상 입으면 뚱뚱해 보이기 쉬운 데다 색 자체가 밝다보니 다른 사람들 눈에 쉽게 띄어 더 부담스럽다. 또 다른 이유는 관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 번만 입어도 쉽게 더러워지니 세탁할 생각에 입고 싶어도 선뜻 손이 안 간다.

화이트 스타일링?

에르메스

에르메스

세련되게 소화하려면 색 자체가 다양한 이미지를 품고 있다보니 화이트 패션은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이미지까지 확확 바꿔놓는다. 진태옥 디자이너는 “흰색은 변주가 가능한 색”이라며 “스타일링에 따라 변화가 무궁무진해 자유자재로 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패션 전문가들은 화이트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상의와 하의를 모두 흰색으로 맞춰 입는 것을 제안한다. 여름이면 ‘화이트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늘 흰 옷이 쏟아져 나오지만 올해는 유독 옷 전체를 모두 화이트로 통일한 옷들이 쏟아진다. 에르메스·겐조·끌로에 등 해외 럭셔리 브랜드부터 국내 디자이너 진태옥·정욱준까지 많은 패션쇼에 올 화이트 룩이 등장했다.

셀린느

셀린느

겐조

겐조

올 화이트 룩을 할 때는 소재가 중요하다. 단정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내려면 면·린넨처럼 뻣뻣하고 두께가 있는 원단을, 섹시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내고 싶다면 부드럽고 후들거리는 실크나 저지 소재를 선택해야 한다. 민율미 소장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이트스타일링을 하기 위해선 매치법 보다 소재가 더 중요하다”며 “만약 몸매에 자신이 없다면 뻣뻣한 소재로 된 옷을 선택해 체형을 살짝 가리는 게 날씬해 보인다”고 귀띔했다.
상·하의를 모두 흰색으로 입을 때는 소재와 디자인을 다양하게 믹스매치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희재 옷입기’라는 해시태그로 자신의 패션 일기를 게시하고 있는 강희재 대표(쇼핑몰 업타운걸)는 상·하의를 모두 하얗게 입을 때는 각각 다른 소재로 믹스매치할 것을 권유한다. 흰색 쉬폰 스커트 위에 성글게 짠 흰 니트를 입거나 상의를 면 소재로 입는다면 하의는 리넨 팬츠나 스커트를 입고 가죽으로 만든 액세서리나 가방을 드는 식이다. 그는 “소재와 디자인을 다양하게 사용해 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을 피하라”고 조언했다.

패셔니스타로 손꼽히는 배우 배정남. 흰 턱시도 재킷과 함께 티셔츠와 면바지, 스니커즈를 매치해 격식 있으면서도 경쾌한 스타일을 연출했다.

패셔니스타로 손꼽히는 배우 배정남. 흰 턱시도 재킷과 함께 티셔츠와 면바지, 스니커즈를 매치해 격식 있으면서도 경쾌한 스타일을 연출했다.

옷 잘 입기로 소문난 배우 배정남 역시 화이트로 상·하의를 맞춰 입을 땐 소재를 섞는다. 예를 들어 격식을 갖춘 턱시도 스타일의 재킷을 입는다면 그 안엔 캐주얼한 느낌의 라운드 네크라인 티셔츠를 입어 ‘너무 차려입었다’는 느낌을 없앤다. 드레시한 디자인의 흰 셔츠를 입으면 반대로 신발은 스포티한 화이트 스니커즈를 신는다. 연한 회색, 베이지색 등의 벨트나 구두를 매치하면 화이트의 분위기를 죽이지 않으면서도 조금 더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 반대로 선명한 노랑·빨강·오렌지 색의 구두를 신거나 가방을 들면 세련되고 강렬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준지

준지

옷 전체를 화이트로 입는 게 부담스럽다면 다른 색 옷과 섞어 입으면 된다. 어떤 색과 함께 입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지니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춰 함께 입는 옷의 색을 정해야 한다. 가령 레드와 화이트의 조합은 가장 관능적인 매력을 풍긴다. 빨간 스커트나 원피스에 흰 재킷을 매치하는 식이다. 강진주 소장은 “빨간색 면적이 클수록 더 섹시하다”고 설명했다. 여성스러움을 부각시키고 싶을 때는 화이트 재킷에 핑크 원피스를 입으면 좋다. 세련된 이미지를 내기엔 화이트와 블루의 조합이 제격이다. 화이트 재킷이나 셔츠에 연한 하늘색이거나 반대로 짙고 선명한 파란색 스커트나 팬츠를 입으면 차가우면서도 이지적인 이미지를 준다. 그래도 화이트 패션이 어렵다고? 김은혜 디자이너의 조언을 한번 들어보자. “깨끗한 화이트도 좋지만 조금 바래고 더러워진 화이트도 그 자체로 매력이 있다. 그러니 좀 더 편하게 입으면 좋겠다. 전엔 느껴보지 못한 매력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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