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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정위 ‘완장 찬 점령군 안 되겠다’는 초심 잊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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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새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완장 찬 점령군은 안 되겠다”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거듭 ‘불통’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그제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는 통신비 인하대책과 관련해 “앞으로 미래창조과학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래부가 통신료 인하 여지가 있는데도 ‘월 1만1000원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 공약을 이행할 대안을 제대로 마련해 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국정위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대화의 문을 닫은 것인데 미래부 공무원들은 대안 마련이 어려워 전전긍긍하고 있다.

국정위가 이렇게 강하게 압박하는 데는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다. 통신비는 이동통신 3사의 과점구조여서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대표적 분야다. 이들 3사가 지난해 3조6976억원의 영업이익을 얻었지만 가계는 통신비 부담에 허리가 휘고 있다. 통신사는 시설투자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민단체는 기존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는 수준이라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입장이 엇갈리니 정부 개입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묻지마 공약 이행’은 무리수를 낳을 수 있다. 이미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기업마다 여건이 다른데도 드라이브가 걸리면서 신규 채용 감소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탈(脫)원자력발전 공약을 위해 신고리 5, 6호기의 공사부터 중단하라는 것도 극심한 혼란을 낳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역시 자영업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래서는 J노믹스(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가 멀리 가기 어렵다. 점령군의 위세에 눌려 알아서 기는 분위기에선 부실한 정책이 양산되기 때문이다. 국정위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부처든 기업이든 호통치지 말고 설득해야 한다.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이 어제 “미래부와 비공개 끝장 토론을 제안하겠다”고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토론은 토론다워야 한다. 부처와 기업을 압박하기보다 경청하고 설득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그래야 201개에 달하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탄탄하고 성공적인 정책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