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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생 “묵묵히 일한 어머님들” … 미화원 쉼터 리모델링 보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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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학교 환경미화원들의 휴게실을 직접 리모델링한 홍익대 은화과 프로젝트 소속 대학생과 환경미화원들이 새 단장을 한 휴게실에서 하트 표시를 하며 웃고 있다. [사진 은화과 프로젝트]

대학교 환경미화원들의 휴게실을 직접 리모델링한 홍익대 ‘은화과 프로젝트’ 소속 대학생과 환경미화원들이 새 단장을 한 휴게실에서 하트 표시를 하며 웃고 있다.[사진 은화과 프로젝트]

최근 홍익대 건물 두 곳에서 학생 수십 명이 참여한 작은 공사가 진행됐다. 일명 ‘은화과 프로젝트’.

대학 미화원 “유령처럼 지내”에 충격 #좁고 퀴퀴한 냄새 나는 지하 휴게실 #해비타트 동아리생들이 직접 고치고 #성금 모아 온돌매트·에어컨도 설치 #미화원들 “공부도 바쁠 텐데 … 감사”

대학에서 근무하는 130여 명의 환경미화원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이들의 휴게실을 리모델링해 주는 작업이었다. 프로젝트의 이름 ‘은화과’의 ‘은’은 숨을 ‘은(隱)’자다. 이름을 지은 김지선(20)씨는 “무화과(無花果)는 꽃이 없는 과일이라고 해서 이름이 지어졌대요. 그런데 사실 꽃이 없는 게 아니라 열매 안에 숨어 있는 거거든요. 학교 환경미화원분들이 학교의 무화과 꽃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프로젝트는 지난 4월 홍익대 총학생회와 해비타트 동아리, 그리고 자원봉사자 학생들이 출범했다. 공사에 드는 비용은 재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으로 충당했다. 이수환(25) 홍익대 부총학생회장은 “어머님(학생들은 환경미화원들을 ‘어머님’이라고 부른다)들이 너무 기뻐하시고 재학생들 반응도 좋아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가자는 취지에서 ‘은화과 프로젝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의 발단은 1년 전 학교 축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총학생회에서 당시 교내 환경미화원들을 위한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여기에 참석한 학생들은 ‘어머님’들의 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환경미화원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모습을 전했다.

“학생이 많이 지나다니는 시간은 일부러 피해 다녀요. 잠시 쉴 때는 대걸레 등 청소 도구를 넣어놓는 화장실 내 작은 공간에 허리도 펴지 못한 채 앉아 있죠. 그야말로 ‘유령’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에요.”

리모델링하기 전(왼쪽)과 후의 휴게실 모습. [사진 은화과 프로젝트]

리모델링하기 전(왼쪽)과 후의 휴게실 모습. [사진 은화과 프로젝트]

스스로를 ‘유령’에 비유하는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은 직접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학교의 각 건물에는 환경미화원들을 위한 휴게실이 1~2개씩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어떤 휴게실은 높이가 165㎝도 채 되지 않아 허리 한 번 펴고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또 다른 휴게실은 지하 깊숙한 곳에 있어 어둡고 늘 퀴퀴한 냄새가 났다. 대학에 직접 고용된 게 아니라 청소 대행업체에 간접 고용돼 있어서 환경미화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못했다.

지난해 학생들은 시범적으로 전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두 곳의 휴게실에 대한 리모델링 작업을 했다. 환경미화원들은 물론 학생들의 반응도 좋아 올해부턴 아예 프로젝트화하게 됐다. 이번 공사는 일부러 축제 기간(지난달 17~19일) 일주일 뒤로 잡았다. 이 부총학생회장은 “축제 때는 학교가 많이 더러워져 더 바쁘시기 때문에 쉴 공간을 닫을 수 없었다”며 “축제 때 사흘간 ‘어머님들을 생각하며 좀 더 깨끗하게 시설을 쓰자’는 교내 캠페인도 벌였다”고 말했다. ‘은화과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캠페인도 병행했다.

휴게실 리모델링에 참여한 학생들은 당장 벌레가 뚝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회색빛 높은 천장에는 짙은 브라운 계열의 페인트를 칠했다. 천장이 낮아 보이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전기장판 대신 온돌매트를 설치하고 좀 더 많은 사람이 쉴 수 있게 평상도 넓혔다.

해비타트 동아리 채종한(24) 회장은 “사실 전문업자가 공사를 했다면 더 잘했을 텐데 저희가 하나하나 맡아서 하다 보니 어설픈 부분도 많다”고 아쉬워했다. 공사 기간 동안 ‘어머님’들은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학교식당 식권을 사서 학생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재학생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공기청정기와 냉장고, 벽걸이 에어컨도 샀다. ‘특별한 선물’을 받은 환경미화원 김모(49)씨는 “학교가 못해주는 걸 공부할 시간도 모자랄 학생들이 대신 해줘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지금도 학생들이 종종 휴게실에 들러 필요한 거 없으시냐고 묻는데 이제 정말 우리 자식들 같다”며 웃었다.

은화과 프로젝트 멤버들은 다음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단발성이 아닌 장기 프로젝트로 확장하고 싶어서다. 민동인(24)씨는 “프로젝트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화장실에서 어머님들을 마주치면 괜히 민망해 피해 다녔다. 이제 그런 거리감이 사라져서 먼저 인사도 드린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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