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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절벽에 예식 양극화 … ‘강남 웨딩 메카’ 줄폐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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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본 건물의 임차인 강남 라루체 웨딩홀은 부도처리됐습니다’.

390곳 중 1년 새 32% 문 닫아 #작은 결혼·호텔식으로 양분 #어정쩡한 준고급형 직격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웨딩홀 ‘라루체’ 정문에는 6일 안내문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지하 2층, 지상 6층에 연건평 8264㎡(약 2500평) 규모인 이 예식장은 예식홀 두 곳과 네 곳의 연회장을 갖췄고 지하철 7호선 학동역 부근에 있어 인기를 끌었던 곳이다. 급작스러운 부도 통지에 계약금 50만원을 내고 결혼식 날을 잡아놓은 수십 명이 항의 전화를 걸었지만 업체 대표 고모씨는 “불황으로 자금 사정이 나빠진 상태에서 어음 사기까지 겹쳐 어쩔 수 없었다”는 설명으로 양해를 구했다.

인근 예식장의 사정도 좋지 않다. 200석의 대형 웨딩홀과 500석 규모의 연회장 두 곳을 갖춘 청담동의 한 웨딩홀에서는 이날 단 한 건의 결혼식도 열리지 않았다. 한 직원은 “현충일에는 원래 결혼식 예약이 많지 않아 이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음달 토·일요일에도 예약 시간대가 많이 비어 있는 상태라 걱정이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청담동에서 결혼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던 대표 A씨(40)가 자살을 시도했다. A씨 주변인들에 따르면 그는 사업 악화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유서를 남기고 약물을 과다 복용했다. 일찍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생명을 잃지 않았다. 한때 ‘웨딩의 메카’라 불려온 서울 강남의 웨딩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월 394곳이던 강남구의 예식장과 웨딩컨설팅 회사 등 예식 서비스 업체는 현재 268곳으로 줄었다. 1년 새 31.9%가 문을 닫았다. 비혼이나 만혼의 풍조가 짙어진 게 1차 원인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 2006년엔 33만 쌍이 결혼했지만 지난해엔 28만1600쌍으로 감소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집계에 따르면 남녀의 평균 결혼 연령도 각각 35.8세와 32.7세로 10년 전에 비해 2.4년 높아졌다.

이런 흐름 속에 결혼식 자체도 ‘작은 결혼식’ 또는 ‘호텔 결혼식’으로 양극화되면서 ‘준고급형’인 강남 웨딩홀 의 입지를 흔들었다.

대형 웨딩홀 대신 레스토랑이나 관공서, 공원 등에서 가까운 지인만 초대해 식을 올리는 ‘작은 결혼식’은 예물이나 예단,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라 불리는 결혼 부대 비용도 최소화한다.

웨딩홀 도산, 드레스·한복·사진 업체 도미노 타격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레스토랑에서 가까운 지인 70여 명만 초대해 결혼식을 올린 이항주(30)씨는 “하객 절반 이상이 모르는 사람인 웨딩홀 결혼식보다는 우리 부부를 잘 아는 친척이나 가까운 친구만 초대해 특별한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도 활발해 결혼식 장소로 개방된 공공시설은 2013년 132곳에서 현재 231곳으로 늘었다. 지난해엔 모두 1632쌍이 관공서에서 식을 올렸다.

동시에 한편에선 호텔 결혼식의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과소비’라는 지적도 있지만 한 번뿐인 결혼식을 화려하게 치르고 싶어 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지난 2월 서울 장충동의 그랜드 앰배서더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 회사원 정모(31)씨는 1년치 연봉을 고스란히 결혼 비용에 썼다. 그는 “이왕 한 번 하는 결혼식인데 배우자에게 최고의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특급 호텔인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의 웨딩 파트 관계자는 “불황으로 웨딩산업 전반이 어려움을 겪는 것과 별개로 호텔 수요는 꾸준하다. 야외수영장에서 열리는 결혼식은 상당히 비싸지만 고객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강남 웨딩홀의 인기가 사그라지면서 웨딩 업계 전반에도 여파가 크다. 대형 웨딩홀은 매달 임대료만 최소 수천만원을 내야 해 통상 드레스·한복 업체, 꽃 장식 업체 등 10여 곳이 공동출자해 운영한다. 웨딩홀에 손님이 줄면 다른 곳도 직격탄을 맞는 구조다. 청담동의 한 한복업체 대표는 “결혼식 때 한복을 입지 않는 부부가 급증했다. 5년 전 고객 수를 100이라고 할 때 3년 전은 30, 지금은 0에 가깝다”고 말했다. 강남구 논현동의 사진 스튜디오 대표 권모(45)씨는 “손님이 줄자 출혈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가게 문을 곧 닫아야 할 판이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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