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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아픈 데는 없는데 축 처지고 입맛도 없다면 … 폐렴 검사 해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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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러스트=심수휘]

[일러스트=심수휘]

조해성(79·서울 관악구)씨는 지난달 초부터 심한 기침과 피로감에 시달렸다. 단순 감기로 여겨 약을 먹고 동네 의원에서 수액을 맞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혈압이 20㎜Hg이나 떨어져 집 근처의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됐다. 정밀진단 결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과 폐렴이 함께 발견됐다. 조씨는 “4년 전 보건소에서 폐렴구균 예방 주사를 맞았다. 설마 폐렴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이 들면 증세 잘 안 나타나 더 위험 #최근 10년간 폐렴 사망 증가율 240% #기도로 음식 넘어가는 흡인성 많아 #씹어 넘기기 쉽게 속도·양 조절해야 #폐렴구균 접종해도 안심할 수 없어 #백신 두 종류 다 맞아야 예방효과 커

폐렴은 한국인의 노후 건강을 가장 ‘빠르게’ 위협하는 병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60세 이상 폐렴 환자는 2011년보다 2015년 6만8719명이 늘었다. 이 기간에 인구 대비 평균 환자 수(10만 명당 진료 인원)가 다른 연령대에선 모두 줄었는데 60대 이상만 증가했다.

나이가 들면 폐렴에 쉽게 걸리고 낫기도 어렵다. 폐렴 사망자의 90% 이상이 60세 이상이다. 이 역시 2011년 인구 10만 명당 17.2명에서 2015년 28.9명으로 크게 늘었다. 최근 10년(2005~2015년)간 폐렴으로 인한 사망 증가율은 240.4%나 된다. 2위인 심혈관 질환(41.6%)의 약 6배나 되고 3위인 폐암(21.1%)의 11배가량이다.

폐렴은 이름처럼 폐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세균·바이러스·곰팡이 감염, 흡연, 화학물질 등 원인은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전문가들은 최근 고령층 폐렴이 증가하는 주요 원인으로 ‘흡인성 폐렴’을 꼽는다. 흡인성 폐렴은 식도로 넘어가야 할 음식물이나 침이 기도로 넘어가면서 발생한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나이가 들면 음식을 씹어 넘기기가 어렵다. 기도로 잘못 넘어갔을 때 기침으로 이를 뱉어내는 능력도 떨어져 흡인성 폐렴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뇌졸중·치매를 앓는 환자는 삼킴 능력이 떨어져 더욱 주의해야 한다. 심모(65·서울 구로구)씨는 3년 전 뇌경색을 앓은 뒤 신체 오른쪽에 마비가 왔다. 평소에 음식을 잘 씹어 넘기지 못했고 사레에 자주 걸렸다고 한다. 결국 오른쪽 폐에 음식이 넘어가 흡인성 폐렴으로 발전했고 10일간 항생제 치료를 받았다. 서유빈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움직임이 적고 침대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수록 더 주의해야 한다. 식습관을 바꾸거나 음식을 씹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폐렴을 치료해도 쉽게 재발한다”고 말했다.

흡인성 폐렴을 예방·관리하려면 음식 종류와 먹는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다. 김양기 순천향대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흡인성 폐렴 환자는 밥 대신 목 줄이나 코 줄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호전된다”고 말했다. 되도록 ▶부서지기 쉬운 과자나 튀김류를 멀리하고 ▶물을 마실 때 숟가락으로 떠 마시거나 빨대를 쓰고 ▶한번에 씹어 넘기기 쉽도록 음식 먹는 속도와 양을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이가 들면 고열·기침·가래·호흡곤란·가슴통증 등의 증상이 없는 ‘무증상 폐렴’도 잘 생긴다. 이로 인해 뒤늦게 폐렴을 발견하는 환자가 전체의 20~30%나 된다. 지난 4월 폐렴 진단을 받은 김모(78·서울 구로구)씨는 쓰레기를 버리려 현관문을 열다가 갑자기 심한 두통을 느끼며 쓰러졌다. 119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뒤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폐렴이었다. 김씨는 “전날까지 열이 심하지 않았고 기침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폐렴을 일으키는 폐렴구균. [사진 질병관리본부]

폐렴을 일으키는 폐렴구균. [사진 질병관리본부]

고열·기침·가래 같은 증상은 체내 면역세포가 세균·바이러스와 싸운다는 ‘증거’다. 나이가 들면 면역세포가 줄어 이런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김우주 교수는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몸 상태가 좋아지면 그제야 폐렴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도 많다”고 전했다. 만일 특별한 이유 없이 ▶몸이 축 늘어지거나 ▶식욕이 줄고 ▶갑자기 헛소리를 한다면 기침이나 열이 없어도 폐렴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면역력이 약한 고령층은 세균과 바이러스로 인한 폐렴 위험도 젊은 층보다 크다. 세균 중에서는 폐렴구균·폐렴막대균·포도알균·녹농균 등이 폐렴을 일으킨다. 이 가운데 폐렴구균은 백신이 개발돼 있다. 정부는 2013년 5월 이후로 만 65세 이상에게 무료로 폐렴구균 백신을 맞도록 안내하고 있다. 지난 4월까지 접종 대상자 10명 중 6명(61.1%)이 폐렴구균 백신을 맞았다.

그러나 백신을 맞았다고 무조건 안심해서는 안 된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임모(79·여)씨는 2012년 폐렴구균 예방주사를 맞았다. 지난해 4월 고열과 심한 기침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가래에서 폐렴구균이 검출됐다. 예방접종을 했는데 폐렴에 걸리고 폐렴구균이 발견된 것이다.

5일 서울 강북의 한 보건소에서 60대 여성이 폐렴구균 예방주사를 맞고 있다. 폐렴을 예방하려면 백신을 맞는 것 외에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김경록 기자]

5일 서울 강북의 한 보건소에서 60대 여성이 폐렴구균 예방주사를 맞고 있다. 폐렴을 예방하려면 백신을 맞는 것 외에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김경록 기자]

폐렴구균의 종류는 90가지가 넘는다. 현재 보건소에서 무료로 맞을 수 있는 백신은 이 중에서 23가지 종류의 폐렴구균을 막는 ‘23가 백신’이다. 이 백신은 나머지 70여 가지의 폐렴구균은 방어하지 못한다.

나아가 23가지 폐렴구균이 일으키는 폐렴을 얼마나 예방할 수 있는지도 학계의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고려대 김우주 교수는 “23가 백신이 폐렴을 예방한다는 내용은 아직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일부는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거꾸로 효과가 없다는 연구도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도 ‘폐렴구균 예방접종사업 관리 지침’에서 “폐렴에 대한 예방효과는 일관되지 않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무료로 폐렴구균 백신 접종 사업을 벌이는 건 폐렴 일부와 함께 폐렴구균이 일으키는 다른 위협적인 질환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폐렴구균은 폐렴뿐 아니라 뇌수막염(뇌를 감싼 막에 염증이 생기는 병), 균혈증(세균이 혈액을 타고 온몸에 퍼지는 병)도 일으킨다. 고령층에서 이로 인한 사망률은 뇌수막염이 80%, 균혈증이 60%에 달한다. 폐렴구균 백신은 이 두 질환을 50~80% 확률로 예방한다.

만일 폐렴 예방효과를 높이고 싶다면 추가로 폐렴구균 백신을 맞는 방법이 있다. 현재 폐렴구균 백신은 23가 백신 외에도 병의원에서 13만~15만원을 내고 맞을 수 있는 ‘13가 백신’이 있다. 13가 백신은 23가 백신에 비해 예방 범위는 좁지만 면역효과가 더 오래 지속된다. 폐렴 예방효과도 충분히 입증됐다. 대한감염학회는 만 65세 이상이면서 ▶심혈관질환 ▶만성 폐질환 ▶당뇨병 ▶만성 간질환 ▶알코올 중독을 앓는 경우 이 두 가지 백신을 모두 맞으라고 권고한다. 김우주 교수는 “두 가지 백신을 맞으면 폐렴 예방효과가 더 커진다”고 말했다.

●폐렴구균 백신 접종 어떻게

대한감염학회는 만 65세 이상인 만성질환자에게 폐렴구균 백신을 두 가지 다 맞을 것을 권고한다. 이 연령대라면 보건소에서 무료로 맞을 수 있는 23가 백신, 그리고 병원에서 돈을 내고 맞는 13가 백신이다. 이들 백신을 언제, 어떻게 맞는 게 좋을까.

아직 하나도 안 맞았다면 13가 백신을 먼저 맞는 게 효과가 크다. 이후 1년 이상 간격을 두고 23가 백신을 맞는다.

이미 23가 백신을 맞았다면 1년 이상 지난 후 13가 백신을 맞는다. 만약 23가 백신을 맞은 시점이 65세 이전이라면 1년 이상 지나서 13가 백신을 맞고 이로부터 4년 이상 뒤에 23가 백신을 한 번 더 맞는다.

김진구·박정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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