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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추적]"이러다 문 닫을라"…간호사 못 구해 응급구조사 쓰는 병원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일 전남 고흥군의 윤호21병원 5층 병동.
"오늘 몸은 좀 어떠세요?" 응급구조사 최모(24·여)씨가 간호사 황모(38·여)씨와 병실을 돌며 환자 상태를 확인했다. 두 사람은 직군이 서로 다르지만, 복장에 별 차이가 없었다. 두 사람이 병실을 도는 중에 "여기 좀 봐주세요"하며 환자 요청이 이어졌다. 이날 5층 입원 환자는 모두 58명. 이들을 맡는 인력은 이 둘이 전부였다.

지난 1일 전남 고흥군의 병원 5층 병동에서 응급구조사(왼쪽)와 간호사가 함께 환자 의료 차트를 확인하고 있다. 간호사와 응급구조사의 복장은 색깔만 다를 뿐 큰 차이가 없다. 고흥=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일 전남 고흥군의 병원 5층 병동에서 응급구조사(왼쪽)와 간호사가 함께 환자 의료 차트를 확인하고 있다. 간호사와 응급구조사의 복장은 색깔만 다를 뿐 큰 차이가 없다. 고흥=프리랜서 장정필

8층짜리 이 병원엔 간호사 15명, 간호조무사 15명 외에도 응급구조사 21명이 간호 업무를 맡고 있다. 응급구조사 허모(27)씨는 "우리 응급구조사가 없으면 간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원래는 3교대인데 사람이 적어 2교대 하는 날도 많다"고 했다. 황 간호사는 "전남에서도 간호사가 많이 배출되는데 모두 어디 갔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전남 고흥군의 병원에서 남성 응급구조사가 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이 병원은 간호사를 구하기 어려워 응급구조사를 대신 채용했다. 고흥=프리랜서 장정필

간호사나 간호조무사를 구하기 어려워 '고육지책'으로 응급구조사를 채용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응급처치가 본업인 응급구조사에게 환자를 보는 업무를 맡기는 것이다. 대부분 "간호 인력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는 농어촌·중소 병원이다. 간호사가 워낙 부족하다 보니 병원들이 법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셈이다. 응급구조사는 대개 소방공무원을 지망하고 병원에서 채용해도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많다. 이윤호 윤호21병원장은 "12년 전엔 우리 병원 간호사가 44명이었는데 현재 3분의 1로 줄었다. 임금을 매년 6~10%씩 올려도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가다간 병동이나 응급실을 폐쇄해야 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1일 전남 고흥군의 병원에서 간호사(왼쪽)와 응급구조사가 함께 약품을 확인하고 있다. 두 사람은 5층 병동에 입원한 환자 50여 명을 담당한다.[고흥=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일 전남 고흥군의 병원에서 간호사(왼쪽)와 응급구조사가 함께 약품을 확인하고 있다. 두 사람은 5층 병동에 입원한 환자 50여 명을 담당한다. 고흥=프리랜서 장정필

고흥과 인접한 완도군도 상황이 비슷하다. 완도에서 유일한 병원인 대성병원은 지난 2~3월 간호사·간호조무사 3명이 연달아 나가면서 응급구조사 3명을 급히 뽑았다. 물색 끝에 목사 부인, 대대장 부인 등 지역 내 간호사 출신을 어렵게 재취업시켰지만 야간 근무까지 맡기긴 어렵다. 이렇다 보니 20~30대 간호사는 거의 없고 젊은 인력은 응급구조사뿐이다.

지난 4월 을지대학교에서 간호대생들이 참석한 '나이팅게일 선서식'이 열렸다. 간호인들은 촛불 의식을 통해 미래의 간호인으로서 인간 생명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중앙포토]

지난 4월 을지대학교에서 간호대생들이 참석한 '나이팅게일 선서식'이 열렸다. 간호인들은 촛불 의식을 통해 미래의 간호인으로서 인간 생명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중앙포토]

2일 오전 이 병원에서 56세 간호부장이 병실을 돌며 환자 상처를 치료했다. 물에 빠진 응급환자 2명이 들어오자 간호부장은 황급히 응급실로 달려갔다. 이들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회복되지 못 했다. 그는 "나 아니면 심폐소생술을 할 사람이 없다. 농어촌은 환경이 열악한 데다 일은 고되니까 신규 간호사가 6개월만 일해줘도 감사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에서 2015년 기준으로 인구 1000명당 의사 2.3명(한의사 포함), 간호인력 6명(조무사 포함)이다. 실제 활동하는 인력 숫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의사 3.3명, 간호인력 9.5명에 비해 의사는 1명, 간호사는 3.5명이 적다. 국내에서 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 실제 간호사로 활동하는 비율은 70.7%다. 이 비율은 의사(88.9%)·한의사(90.5%)·약사(73.1%)보다 낮다.

전남 고흥선 응급구조사가 입원·응급실서 간호 보조 #간호사 15명, 조무사 15명인 병원에 응급구조사 21명 #농어촌·중소병원들 "간호사 구하기 하늘의 별 따기" #완도선 50대 후반 간호부장이 혼자 심폐소생술 맡아 # #간호사들 요양·간병 등에 쏠리며 열악한 지방 기피 #2030년에 15만명 부족, 간호대 정원 증가는 '찔끔'

더 큰 문제는 간호사 부족이 앞으로 더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보사연에 따르면 당장 3년 뒤엔 적정 수준보다 간호사 11만여 명이 모자라다. 현재 출산·육아 등으로 쉬고 있는 간호사 9만8000여 명이 모두 현직에 돌아와도 채울 수 없는 수치다. 2030년엔 15만8000여 명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 적정 수준에 비해 부족한 인력 규모가 의사(7646명), 약사(1만742명)과 비해 훨씬 크다.

농어촌·중소병원의 간호사 구인난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최근 몇 년새 노인 대상 요양병원이 꾸준히 늘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로 안전·감염 관리가 강화돼 이 분야의 간호사 수요가 급증했다. 이밖에도 간호사가 병원 대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공공기관이나 학교 보건교사를 택하는 경우도 늘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규 간호사들은 상대적으로 근무 여건이 열악한 농어촌 근무를 꺼린다. 병원의 낮은 처우와 교대 근무 때문에 아예 간호사직을 그만 두기도 한다.
간호사가 간호와 간병을 함께 맡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대도시의 대학병원까지 확대되고 여기에 간호사가 몰리는 것도 농어촌 등지의 간호사 인력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2013년 13곳(1423병상)에 불과하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참여 병원은 지난달 기준 338곳(2만2289병상)으로 20배 이상 증가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중소·지방 병원의 간호사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간호간병서비스로 대형 병원으로의 간호사 이직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지난해 내놓았다.

간호사 구인난은 수도권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수도권에서도 간호사를 못 구해 병실 수를 줄이는 병원이 나온다. 서울 양천구의 종합병원인 홍익병원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만 간호사 80명이 나갔다. 대부분 처우가 더 좋거나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하는 상급종합병원이나 대형 종합병원으로 옮겨갔다. 이 병원에서 새로 뽑은 인원은 절반인 40명에 그쳤다. 간호사 채용에 애를 먹자 2개인 중환자실을 하나로 줄였다. 이 병원 라기혁 원장은 "우리도 간호간병서비스를 하고 싶지만 인력 기준을 맞출 수 없어 '그림의 떡'이나 다름 없다. 병원끼리 간호 인력을 뺏기고 다시 뺏어오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 간호사 부족이 노인 환자 관리의 걸림돌이 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오영호 보사연 연구위원은 "일본은 간호사 숫자가 우리의 2.5배를 넘고 인구 1000명당 활동 간호인력(11명)도 우리의 두 배 가까이 된다. 그럼에도 고령화로 만성·복합 질환자들이 늘면서 간호 인력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력 공급의 필수 조건인 간호사 대입 정원은 '찔끔' 오르는 데 그친다. 2014년 500명, 2015년 900명 늘어난 데 이어 내년에 500명 추가되는 게 전부다.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변성미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사무관은 ”간호사 부족의 대안을 여러 방향에서 검토 중이다. 늦어도 올 연말까지 종합 대책을 마련하려고 노력 중인데 대학 정원 조정은 교육부나 유관 단체들과 협의가 필요해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간호 인력난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론 간호대 정원을 대폭 늘리면서도 단기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혜경 대한병원협회 기획정책본부장은 "중소·요양병원에 한해 인력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간호사 확보의 법적 기준을 완화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찬기 대한간호협회 홍보국장은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근무 형태를 다양화해 경력 단절을 막아야 한다. 의료 취약지역에선 남자 간호대생을 간호 요원으로 대체 복무시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연구위원은 "국가가 학비를 부담하는 국립 보건대학 신설, 쉬고 있는 간호 인력의 재취업 활성화 등이 종합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흥·완도=정종훈·여성국·하준호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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