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전격 지시하면서 가야사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대통령이 특정 시대와 국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연구를 독려한 것이 이례적인데다 가야(伽倻)라는 국가가 ‘삼국시대’로 대표되는 고대사 연구에서 변방에 속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경남이 금관가야 등 옛 가야의 중심지가 속했던 지역이라는 점에서 '애향심'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문재인, '영호남 통합' 앞세워 가야사 복원 #박정희, 영남 출신에 신라와 화랑에 관심 #전두환, 고대사 확장 재야사학계에 길 터줘 #김영삼, 일제강점기 흔적 지우기 강조
일단 학계의 반응은 조심스럽다.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야사 연구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느닷없는 (가야사)발언에 다소 놀란 상태다. 이번 발언을 계기로 가야사 연구에 정치논리가 개입될까봐 학계는 우려한다”고 전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ㆍ호남의 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야사라는 ‘열쇠’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가야사 복원은 아마 영호남이 공동사업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다.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으로 생각한다”며 정치ㆍ사회적 목적이 배경으로 작용했음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 뿐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정치ㆍ사회적 목적으로 역사를 활용한 사례가 적지 않다.
①‘화랑’에 꽂힌 박정희=박정희 전 대통령은 신라사에 애착이 많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경주 토함산에 황폐하게 버려지다시피 했던 불국사와 석굴암을 재건립하는가 하면 1975년 경주 보문단지를 국내 관광단지 1호로 지정하기도 했다. 경주 천마총 등이 발굴되며 신라와 관련된 각종 발굴 및 연구 작업도 활발히 진행됐다.
역사학계에서는 박 대통령이 신라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드러낸 이유로 두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고 본다. 일단 출신 지역이 경북 구미로 신라 영역이라는 점이다. 또, 생전에 화랑(花浪)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는 점도 꼽힌다. 김태식 홍익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당시 시대 흐름상 신라시대의 청년 엘리트 단체인 화랑과 역시 청년 엘리트 장교 육성기관인 육군사관학교의 이미지를 연결지어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육군사관학교의 별칭은 화랑대다.
또, 박 전 대통령은 1973년 청소년들이 화랑의 얼을 계승해 투철한 국가관을 확립하고 바른 품성을 수양해야 한다며 경주에 화랑교육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고려 시대의 삼별초와 무신정권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평가가 진행됐다.
②재야 사학에 힘 실어준 전두환 시대=1980년대는 재야 사학계의 전성기로 불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2ㆍ12 사태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국내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소위 ‘3S’(SportsㆍSexㆍScreen, 스포츠ㆍ성 문화ㆍ영화)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국풍 81’ 같은 민족문화 장려 행사도 적극 후원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숨죽여 왔던 재야 사학계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특히 1981년에는 안호상 전 문교부장관 등의 청원으로 국회에서 국사 교과서 공청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재야 사학자들은 그동안 위서(僞書)로 취급됐던 『환단고기』와 『단군세기』 등의 서적을 실제 역사서로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한사군이 중국에 있었다거나, 통일신라의 국경이 베이징(北京)에 접했다는 등 기존 학계와 배치되는 주장을 펼쳤다. 더 나아가 『삼국사기』를 존중하는 기존 학계의 연구 성과를 '식민사관'으로 규정하며 부정했다. 일부 정치인들도 재야 사학계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들의 주장이 군대 정훈자료에 그대로 반영되기도 했다.
반면 재야 사학계의 주장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됐다"며 반발하는 분위기도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국뽕(재야사학계가 주장하는 고대사 학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명칭)’, ‘환빠(『환단고기』 지지자들을 비하하는 명칭)’ 등의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③일제강점기 지우기에 나선 YS=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내걸고 역사 청산 작업에 나섰다. 특히 일본강점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 붙였다.
경복궁 앞에 있었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던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에 대해 학계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치욕적 흔적”이라며 철거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우세했지만, “역사의 흔적”이라며 존치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의 지시로 1995년 8월 15일 철거가 시작돼 이듬해 완료됐다.
이 외에도 김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일본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1995년 11월 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자 당시 중국 장쩌민 주석과 한ㆍ중 정상회담 중이던 김 전 대통령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강경 발언을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